색소폰을 가진 남자
가쁜 숨을 쉬며 도착한 공원 입구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고 다시 거기서부터는 조금 느린 걸음으로 호수를 끼고 천천히 돌기로 했다.
계절이 전하는 빛깔들에 취해 걷노라면 '애수교(愛水橋)'라는 고운 이름의 다리 하나를 만나게 된다. 그저 나무를 단순하게 잇대어 만든 소박한 다리지만 밤이 되면 그 난간 끝에선 가느다란 네온 불빛이 돋아 호수의 야경(夜景)을 따뜻하고 화사하게 수놓는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 다리의 흥취가 아닌, 호수를 한 바퀴 빙 돌고서야 마주치는 어떤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곳에서 가끔씩 만나게 되는 어느 한 사람에 관하여.
커다란 구름다리 아래 널찍한 평상(平床)의 한 귀퉁이는 언제나 그의 고정석이다. 뛰놀던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잦아들어 마침내 날이 저물면 한 남자의 색소폰 연주가 마음 속 회한을 불러내듯 애절한 소리로 울려 퍼진다.
어느 날은 클래식한 선율로, 또 어느 날엔 빗소리라도 묻은 듯 구성진 토롯토의 가락으로 그리고 아주 가끔씩은 아이들을 위한 만화 주제가로도 흘러나온다. 불다가는 소리가 튕그러지기도 하니 썩 잘 부는 것도 아니요 동전 한 닢을 모으는 행위는 더욱 아닌, 다만 그는 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색소폰을 불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것인지 보이지 않는 날이면 괜히 궁금해지기까지 하는 사람.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면서 무슨 일이 생겼나, 혹 병이 난 건 아닐까 슬그머니 걱정마저 되는 사람. 한번쯤은 몰래 뒤따라가 그의 안위(安慰)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 어느 새 그의 연주가 근처를 서성이는 내 마음에 소리로 길을 낸 것일까.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는 구부정한 그의 모습이 때로는 쓸쓸한 실루엣처럼 희미한 윤곽만으로 다가오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왠지 산다는 게 허무해지며 한 순간 내 안의 욕망과 욕심들을 미련 없이 버리고 싶어진다. 무욕과 무심으로 그저 무릎꿇고 싶어진다. 이제 그를 만나는 일은 습관처럼 되어 다른 시간대로 나가는 산책길을 자꾸 주춤하게도 한다.
그에게 색소폰은 무엇일까. 살기 위한 수단일까. 세월의 고단함을 견디는 도구일까. 그도 아니면 추억을 불러내는 애끓는 주문(呪文)일까. 어느 것으로도 해석해 낼 수 없는 아니, 굳이 해석하고 싶지 않은 그의 모습을 그저 가까운 자리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어떤 이유인들 무슨 상관 있으랴. 불안한 듯 흔들리듯 가쁜 숨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는 그가 삶에 지친 우리네 모습 같아서 자꾸 한 걸음 다가서게 만드는 것을.
그의 마음 속을 흐르는 고독과 인간적인 욕망까지 모두 저 악기를 통해 흘려보내면 좋겠다. 어쩌면 그는 바로 나의 남편이며 우리의 아버지며 그리운 형제와 친구의 모습이려니.
사랑하는 이들 앞에서 애써 견뎌내야 하는 삶의 아픈 표정과 한숨들을 거기에 와 한 자락 풀어낼 수만 있다면 그 이상 무얼 더 바랄까. 저 차가운 금속성의 악기 하나 만져보는 일만으로도 그에게 위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 새 멀리 있던 별들도 가까이 내려와 귀 기울이는 밤이다. 달빛 일렁이는 호수 공원 안에서는 나를 이끄는 소리 하나 낮게 울려 퍼지며 오늘도 작은 연주가 시작될 것이다. /
<월간에세이.2004.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