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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소중함/<렌트>    
글쓴이 : 신성순    12-05-25 23:19    조회 : 3,625
 
 
'오늘'의 소중함
ㅡ 뮤지컬 《렌트》를 보다. ㅡ
 

축제와 다양한 삶의 애환을 그려낸 대작
 

푸치니의 《라 보엠》을 새롭게 각색한 뮤지컬 《렌트》.
작곡가 조나단 라슨(Jonathan Larson)은 1960년 뉴욕 교외 화이트 플레인에서 태어났다. 명문 예일 드라마 스쿨에 근간을 둔 아델피 대학에 특기생으로 선발,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으며 졸업 후 뉴욕으로 가 작사, 작곡, 각본가로 활동했다.
 
 
그는 1940년 말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오는 극의 구태의연함의 틀을 깨고 싶어 했고 마침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극작가 빌리 아론슨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새롭게 각색한 오페라 《라 보엠》은 파리의 집시들이 결핵에 걸려 고통 받는 내용을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에이즈에 걸려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으로 바꿔서 《렌트》의 테마로 삼아 재탄생시킨다.
 
 
브로드웨이에서 초연이 결정되기까지 7년이 걸렸다. 1992년에 '초안'이 완성 되었으며 1994년 마이클 그리프라는 고집 세고 냉철한 연출가를 만나 11월로 잡아놓은 워크샵을 위해 수정하기 시작했고, 조나단의 희망과 따뜻한 마음, 관대함과 마이클의 날카로움과 현실감, 복합성이 잘 조화 되어 마침내 11월의 워크샵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된다.
 
 
이 때 상품성이 인정 되어 또 한 번의 수정작업에 들어갔으며 1막은 축제 분위기로 고조시키고, 2막은 여러 갈래로 나눠서 다양한 삶의 애환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본이 완성되는데 3년이 걸렸다.
각본, 가사, 음악을 담당하여 젊음을 바쳤던 조나단 라슨. 1996년 1월 브로드웨이에서 초연을 앞둔 바로 전날 갑작스러운 대동맥혈전으로 숨을 거둔다. 36세 조나단의 죽음은 배우들이 극을 이해하는데 증폭제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
 
 
〈그대의 찬손〉, 〈내 이름은 미미〉 등의 아리아로 유명한 《라 보엠》이 정통 고전이라면 뮤지컬 《렌트》는 대중음악으로 현대화하여 틀을 깬 파격적인 퓨전이다. 주인공들의 직업도 시인, 화가, 여자재봉사에서 록 뮤지션(로저), 영화제작자(마크), 댄서(미미)로 바꾸었다.
 
 
오페라의 전체적인 내용보다는 몇몇 개의 아리아에만 익숙했던 내게 뮤지컬 《렌트》에서 취한 대중음악의 다양한 장르가 내 호기심을 바짝 잡아 당겼다. 록, 탱고, 발라드, 리듬 엔 블루스(R&B), 가스펠 등으로 다루어진다니 말이다.
 

삶과 죽음 앞에 비친 강렬한 사랑의 메시지
 

4막으로 이루어진 《라 보엠》과는 달리 《렌트》는 2막이다.
 
 제 1막은 뉴욕 이스트 빌리지 공업지역에 위치한 허름한 아파트에 가난한 예술가인 마크(영화제작자), 로저(작곡가)가 집세도 못 내고 전기마저 끊어져 난방도 되지 않아 추위를 이기기 위해 영화 시나리오와 록큰롤 포스터를 태우며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이한다.
 
설상가상으로 컴퓨터 천제인 콜린이 거리에서 강도에게 뭇매를 맞았다는 연락과 집 주인인 베니가 집세를 받으러 오겠다는 전화를 받는다. 콜린은 거리의 드러머인 여장 남자 엔젤의 도움을 받는다.
 
 
방에 홀로 남아 자살한 옛 애인을 생각하며 곡을 구상하고 있는 로저에게 아래층에 사는 댄서 미미가 불을 빌리러 초를 들고 찾아온다. 첫눈에 반해 서로 이름과 직업을 소개하며 인사를 나누지만 자신의 처지 때문에 차마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다.
 
미미는 마약 중독자이자 에이즈 보균자고 로저 역시 에이즈 보균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로저와는 달리 망설이긴 하나 과감하게 대쉬한다. 이 때 극의 강렬한 메시지인 과거나 미래보다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에게 피력한다.
 
 
한편 베니는 마린이 준비하는 건물 철거 반대 시위 공연을 막아준다면 집세를 봐주겠다고 마크와 로저에게 말하지만 그들은 거절한다. 무명의 음악가 마린은 집 없는 부랑자들을 대상으로 한 라이브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친다. 베니가 경찰을 불러 그들을 해산시키려 했지만, 모두들 꼼짝도 하지 않고 '음매~' 소리만 내고 있다. (배우는 객석을 향하여 같이 하기를 유도한다.)
 
 
가진 자의 횡포에도 굴하지 않고 비록 없지만 삶과 죽음의 이데올로기 앞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가 얼마나 값진지를 절실하게 느끼며 열심히 투쟁하고 사랑하는 그들의 모습이 눈물겹다.
 
 
엔젤과 콜린의 사랑은 점점 깊어가고 미미는 로저와의 사랑에 충실하기 위해 마약의 유혹을 힘겹게 이겨내고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조건이 상대에게 짐이 될까 두려워 말을 못하고 전전긍긍 하다가 마침내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갈등은 해소되고 행복한 사랑을 나누게 된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
 

제 2막은 마크, 로저, 미미, 엔젤, 콜린 등이 신년을 맞으며 파티를 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파티 장에 불쑥 나타난 베니는 미미와 옛 애인이었음을 밝히면서 로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 후로 그들의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몇 개월 후 미미는 로저와 심하게 다투고 집을 나가고 엔젤은 에이즈로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미미가 베니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에 크게 질투를 느낀 로저는 뉴욕을 떠난다. 한편 미미는 괴로움을 못 이겨 다시 마약의 유혹에 빠져든다.
 
 
1년이 지나 크리스마스 무렵에 친구들이 다시 모인다. 로저는 곡을 완성했으며 마크는 돈을 벌기위해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일자리를 얻었다가 영화를 완성하려고 그만두었고 콜린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 큰돈을 벌었다.
 
 
집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리고 친구들이 죽어가는 미미를 데리고 들어온다. 모두들 놀라며 극진히 간호했으나 그녀는 숨을 거둔다. 로저는 "네가 떠났을 때 비로소 너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오열을 토한다. 자신이 완성하려는 록 음악은 미미 너였다면서 눈물짓는데 그녀가 부스스 깨어난다.
 
"엔젤을 만났어. 나에게 다시 돌아가라고 했어. 그녀가 나를 살렸어."
모두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삶의 경이로움을 노래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다. 그리고 오늘 말고는 날이 없다.(No day but today.)"를 부르며 극은 막을 내린다.
 
오늘을 낭비하며 불투명한 미래를 생각마라. 《라 보엠》의 결말과는 달리 《렌트》는 해피엔딩이다. 가장 불행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긴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우울하고, 어둡고, 절망적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한 요소인데도 좌절하지 않고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그 속에서 어떻게 투쟁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무엇이 소중한지를 일깨워주는. 소재는 어둡지만 시종일관 밝고 희망적으로 이끌어가는 건강한 극이다.
 

가장 강하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노래했듯이 '오늘'의 소중함이다.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라는, 이미 흘러간 시간에 연연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상상하느라 오늘을 낭비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의미가 극명하게 담겨있다.
 
 
제목《렌트》의 의미는 단순하게 집을 빌렸다는 뜻의 '사글세', 인간은 빈 몸으로 와서 살아있는 동안 빌려 쓰다가 죽을 때 다 놓고 간다는 등등으로 복합적이지 않을까.
 
 
다이나믹한 음악으로 첫 장을 열면서 순식간에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크는 로저의 친구이자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극의 흐름을 내레이션 하는 내용 안과 밖의 역할 설정이 이채롭다.
 
 
밝은 결말이어서 좋다. 주인공부터 단역까지 각자 가지고 있는 매력이 나의 가슴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는 것도 관객 입장으로서 매우 즐거운 일이다. 두 시간 삼십분 동안 내 영혼은 그들의 노래를, 표정을, 메시지를, 스펀지처럼 여과 없이 빨아들였다.
 
 
다시 보아도 좋을, 또 보고 싶다는 충동을 일게 하는,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생각할 꺼리를 제공하고 깔끔하게 마무리 한 모처럼 아름다운 뮤지컬을 충분히 즐기며 감상했다./誠舜
 

*** 《책과 인생》 3월호 (범우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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