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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집    
글쓴이 : 공인영    12-05-26 00:28    조회 : 3,861
           벌집  


                                                              

  차 한 잔 들고 나오니 음식점 계단 아래로 잘 깎인 파란 잔디 마당이 보인다. 거기 어울리는 아담한 연못도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수돗물 줄기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흩어지는 허공 위로 아침 햇살이 반짝거린다. 그 사이사이 고요한 풍경을 흔드는 바람은 지난 밤 한껏 내린 비에 젖어 아직도 촉촉하다.
  잔디밭엔 단풍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여유롭긴 하지만 아직 어린애 팔뚝마냥 가늘어서 새 한 마리 앉기도 힘겨워 보인다. 그런데 그런 나뭇가지 한쪽에 놀랍게도 두 손바닥을 펼친 크기의 벌집 하나가 매달려 있다.
  육각형의 방들로 촘촘히 채워지고 겉엔 갈색 줄무늬가 은근히 겁나는 벌들이 온통 붕붕거리며 새까맣게 엉켜 있다. 톡 치면 와르르 쏟아져 내릴 무게감으로 겨우 버티는 저 벌집과 벌들이 무서우면서도 궁금하다. 큰 나무는 다 두고 왜 하필 저 곳에다 집을 지었을까.
  벌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벌집은 단순한 꿀통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아무렇게나 붙이고 쌓아 만든 쉼터가 아닌 것이다. 종일 수고하는 벌들의 성실함이 미세한 날갯짓에 실려 쉼 없이 배어든다. 거기에 바람과 햇볕도 한수 거들어 마치 숨을 얻은 듯하다. 흐르는 시간과 더불어 조금씩 자라고 일벌들의 노동이 물어와 칸마다 채운 달콤한 양식과 충성 에너지가 범벅이 되어 통째로 호흡하는, 꼭 살아있는 집 같은 것이다.
  몇 마리가 슬그머니 떨어져 이쪽의 야외용 테이블로 날아온다. 사람 곁을 한차례씩 돌며 경고하듯 살핀다. 몸에 숨어있는 침보다 먼저 날갯짓과 그 날카로운 소리에 가슴이 뜨끔뜨끔하다. 자연의 미물들은 건드리지 않으면 결코 제 쪽에서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겠다. 그 말에 불안 반 믿음 반 의지하면서도 얼굴을 휙 스칠 때면 어찌나 무서운지. 그런데도 몸은 몇 걸음 더 나아가 나무 아래로 바짝 다가간다. 그때였나.
'저게 뭐야?'
  갑자기 나무에서 몇 마리가 위로 오르는가 싶더니 와글거리던 수백 마리의 벌들이 일제히 뒤따라 솟구친다. 누군가 벌통을 건드려 놀란 것처럼 경계 태세로 아우성이다. 무서운 기세로 마구 붕붕거리더니 세상에! 토성의 긴 띠를 돌 듯 원을 그리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다음엔 온통 방향도 없이 꽃잎처럼 마구 흩날리는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일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더럭 겁부터 나는 게, 저 흩어진 벌들이 몽땅 방향을 이쪽으로 튼다고 상상하니 오, 머리털이 쭈뼛거리며 한순간 온몸이 뻣뻣해 진다.
  단 몇 십 초간의 그 비상. 티끌 하나 없이 맑고 파란 하늘 한바닥을 점점이 덮으며 미친 듯 윙윙대던 벌들 그 소리들. 끊어져라 파닥대던 날갯짓은 무엇이었을까. 대체 저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아랫부분이 반쯤 벌어진 채로 달려있던 그 벌집은 온데간데없다. 바닥에 떨어졌나 싶어 나무 아래를 살피지만 역시 아무 것도 없다.
  그 많은 벌들과 함께 몽땅 사라진 것이다.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어느 새 다시 고요해진 시간 위로 새들의 지저귐만 더 따갑고 선명하게 쏟아져 내린다. 그들도 이 광경을 보았을까.
  살면서 두 번도 구경하기 힘든 신비한 경험이고 목격이었다. 여왕벌이 작은 나무를 의지해 살기는 어렵다며 이사를 명령한 걸까. 어떤 소리와 신호를 통해서였을까. 어떤 교신이 그들 사이에 이루어진 걸까. 마냥 궁금한 그들만의 소통방식에 의해 벌들은 새 보금자리로 거침없이 날아갔다. 커다란 벌집이 순식간에 분리 해체되어 사라진 일은 그야말로 한여름 밤의 꿈처럼 나뭇가지에 매달린 아주 작은 꼭지로나 남았다.
  일벌들은 할당된 몫을 머금고 떠났으려니, 크지 않은 벌집이라도 이동시켜야 할 것은 비단 양식만이 아니었을 텐데. 그 일사불란한 움직임과 여왕벌 체제의 막강한 위계질서가 참 놀랍기만 하다. 모든 게 신비로운 자연의 현상이 아니고 무엇이랴. 사람 사는 어떤 곳에서도 저렇게 단결과 복종의 미덕을 순수하게 지켜가는 데가 있으랴. 그러면서 잡음 하나 일어나지 않는 공동체의 평화로운 관계가 그저 부러울 뿐이다.
  멍해진 시선으로 벌들이 사라진 하늘을 본다. 어디로 날아갔는지 궁금하지만 놀라는 통에 그만 가는 끝을 놓쳐버렸다. 저 깊고 우거진 숲속 어딘가에 새롭고 튼튼한 집 하나 멋지게 장만하겠지. 사람 곁으로 조금 다가왔다가 영 못쓰겠다고 혀를 차며 돌아간 거나 아니면 좋으련만. 머릿속이 아직까지 벌집 쑤신 듯 어수선하다. 벌들을 데려간 숲은 이미 고요해졌는데./

                                                           <현대수필 2006/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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