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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신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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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글쓴이 : 신성순    12-05-26 20:54    조회 : 3,269
 
 
 
고양이
신성순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강아지처럼 귀엽게 동그란 것이 아니라 눈 꼬리가 치켜 올라갔으며 무섭게 노려보는 듯한 푸른 눈동자가 섬짓하기까지 하다. 영물이라거나 재수 없는 동물이라고도 한다. 물론 애완동물로 강아지와 쌍벽을 이루긴 하지만 그 인기도는 턱없이 뒤진다.
 
 
왜 그럴까. 반대로 강아지는 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을까. 강아지는 사람의 심리에, 생리에 잘 맞아떨어지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가령 복종을 잘 하는 것, 일편단심, 좋아하는 감정표현, 일명 꼬리치기, 몸 비비기, 애교 부리기 등으로 사람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일단 관계가 형성되면 절대 복종이다. 이보다 더 사람의 구미를 당기는 행위가 또 있을까. 나를 따르고 내가 시키는 것은 뭐든 다 하고.
 
 
고양이는 어떤가. 그는 무조건 꼬리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정나미가 똑 떨어질 만큼 도도하다. 주인이 오라고 해도 지가 생각이 없으면 꼿꼿하게 허리 펴고 그 자리에 앉아 있다. 웃기는 것은 지가 원할 땐 주인의 품에 안겨 비비고 그르렁 거리며 쬐끔 애교를 보여주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무조건 따르고 복종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놈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감정을 알아차릴 수가 없을 만큼 앙큼해 보인다. 여간 친해지지 않으면 언제나 경계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정말 치사하고 어떤 땐 야속하기까지 하다. 뭐가 그리 잘났는지 도대체가 틈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아양을 떨어야할 판이다. 좀 친해지고 싶으면 말이다. 꼭 남자가 프러포즈하면 고개를 매몰차게 샐쭉 돌리며 애간장을 태우는 도도한 계집아이 같지 않은가.
 
 
재수 없다는 선입견과 이렇듯 난 너에게 복종하지 않겠다고 건방떠는 꼴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완전히 나는 나야 라는 식이니 말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성격이 좋다는 사람도 있다. 나도 고양이의 이런 점을 좋아한다. 깔끔하고 도시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 푸른 눈동자, 꼬리 치켜 올라간 눈, 허리 펴고 앉아 있는 요염한 자태. 나긋나긋한 몸매의 매혹적인 곡선. 자기만의 고집이 있어 보이는 것. 강아지의 매력이 다정함이라면 고양이의 매력은 차가움이 아닐런지.
 
 
아, 꼭 이렇다고 단정 지을 일은 아니다. 내 그리움 속에 잔잔하게 스며있는 '나비'는 일반적인 선입견에서 완전히 제외되는 너무나 귀엽고 착하고 영리한, 그렇게 사랑스러운 나의 고양이였으니까.
 
 
너를 기억하기 위해 나는 걸어온 세월만큼 감겨있는 두터운 필름을 삼분의 일쯤 뒤로 돌려본다. 그랬어. 너는 내 주먹보다 조금 큰 아기고양이였어. 이름을 '나비'라 지었었지. 왜 그랬는지 몰라. 그보다 더 예쁜 이름도 있었을 텐데 흔하디흔하게 작명을 했다니.
 
 
옅은 베이지 줄무늬를 한 네 모습은 앙증맞게 움직이는 인형이었지. 항상 내 곁에 있어주는 다정한 친구이기도 했어. 그랬거던. 밥을 먹을 때, 목욕을 할 때, 엉킨 실타래를 가지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장난을 할 때도 물론이거니와 잠을 잘 때도 넌 나와 함께였어. 내가 누워있으면 넌 내 배위로 폴짝 뛰어 올라와서 나와 눈 맞춤을 하거나 졸릴 땐 눈을 껌뻑이다가 쌔근 잠들기도 했었지.
 
 
조금씩 자라면서 넌 더더욱 나를 졸졸 따라다녔어. 단 한 번도 앙탈을 부린 적이 없었지. 넌 그랬어. 기억하니? 집에 손님이 오셨을 때 네가 안방으로 들어왔길래 내가 조그마한 소리로 나가있으라며 손짓을 했을 때 넌 다소곳하게 조금 열려있는 문을 앞발로 열고 밖으로 나갔어. 그렇게 눈치가 빨랐고 매우 순종적이었지.
 
 
너와 난 그렇게 마음이 통했단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너를 찾았고 그러면 넌 빠르게 달려와 내 품에 찰싹 안기곤 했어.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런 일도 있었어. 첫 아기를 낳는 날이었는데 마당 구석진 곳에서 조금은 불안한 표정으로 누워있었지. 나도 물론 좌불안석이었었고. 그런데, 그런데 말야. 나는 그런 너를 지켜볼 수가 없었어. 왜냐하면 고양이는 아기를 낳을 때 사람이 지켜보면 큰일 난다는 말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거던. 그래서 안 보이는 곳에 안타깝게 서 있었는데 갑자기 너무나 큰 소리로 네가 우는 거야. 걱정이 되었지만 망설였어. 두렵기도 했었어.
 
 
한참 지나도 네 울음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 시간이 흐를수록 더 애절하게 흐느끼는 것 같았어. 그래서 난 용기를 내어 네게 달려갔어. 그리고 말했어.
 
"힘들지? 괜찮아, 내가 지켜보고 있을게."
 
마치 내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넌 더 이상 울지 않았고 몸에 힘을 주어 아기를 낳기 시작했어. 두 마리까지 나오는 걸 보면서 또 그 생각이 나길래 슬그머니 내 몸을 감추었지. 오해 하지 마. 널 믿지 않아서가 아니고 속설에 대한 노파심 때문이었어.
 
 
넌 참 나를 미안하게 만들더구나. 내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부터 또 앙칼지게 울기 시작했어. 할 수없이 다시 네 곁으로 갔고 넌 나머지 세 마리를 고통의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낳았어.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뜨지 않은 아기들을 정성껏 핥아주었어. 아팠지? 고생했어. 이런 저런 말을 조곤조곤 해주었지.
 
또 세월이 흘렀어. 이건 아픈 기억이야. 외출했다 돌아 와보니 네가 없는 거야.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어떤 불길한 예감이 스쳤어.
막 찾았지.
 
"나비야, 어디 있니?"
 
아, 이런… 엄마의 가슴에 강아지 한마리가 안겨있는 거야. 나 없는 사이에 지나가는 고물상 아저씨하고 너와 그 밉쌀스런 개를 교환했대.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어.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며 나를 달랬지만 그 슬픔을 감출 수가 없었어. 널 찾을 방법이 없어서 막막하기도 했지. 시무룩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더라.
 
 
그런데 있잖아. 나비야. 한 달 만에 기적이 일어났어. 네가 담장 위에서 '야옹'하고 나타난 거야. 어떻게 집을 찾아왔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히 네가 다시 내 품으로 돌아온 거야. 모두들 신기하다 했어. 집에서 오랫동안 기르던 개라면 가능하겠지만 고양이가 그랬다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다시 태엽을 감아 되돌아갔던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내가 사랑했던 고양이를 정성스럽게 묻어주고 그 위에 평소에 좋아했던 멸치를 하나씩 올려놓으면서 흐느껴 우는 장면을 기억의 끝으로 하고.
 
 
어른이 된 다음에 키우기를 몇 번 시도했지만 그들은 '나비'같지 않았다. 차갑고, 날렵하고, 요염하게 혹은 허리 꼿꼿하게 펴고 앉아 도도한 표정으로 날 내려다본다. 도저히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그래도 난 그 깍쟁이 같은 고양이를 보며 피식 웃는다.
 
 
고양이의 에고는 교활한 교만이 아니라 정직한 자기표현이다. 비록 동물이지만 내가 이토록 그들의 매력을 장황하게 설명한 것은 나를 사로잡는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교묘하게 흐르는 포장이나 거짓과는 사뭇 다르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을 놓는다. /誠舜
 
*** <<문학 21>> 1월호(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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