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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는 '바다', 당신은 '강어귀'    
글쓴이 : 신성순    12-05-26 21:03    조회 : 3,969
 
 
 
그대는 '바다', 당신은 '강어귀'
신성순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 김소월 〈개여울〉 전문
 
 
 
여울은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거나 하여, 물살이 세차게 흐르는 곳" (두산동아 《새 국어사전》)인데 '개여울'은 무슨 뜻일까 정확히 알고 싶어 사전을 뒤적였는데 없다. 이럴 때 단순한 나는 당혹스럽다.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휘리릭 넘겨서 정확한 의미를 찾아내곤 했었는데 보이지 않으니 조급해질 수밖에.
 
 
하여 '개천'도 찾아보고, '여울'을 설명한 내용 끝에 있는 비슷한 말인 '천탄'도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렇다면 '개'는 '여울'을 품고 수식해주는 말인가? 사전 앞 쪽으로 가서 '개'를 열어보니 "강 어귀의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 (두산동아《새 국어사전》)이라 나와 있다. 아하, 이제 이해할 수 있겠다.
 
 
장소부터 심상치 않다. 그리운 사람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 배경도 물가이고 보면 물살이 세차게 흐르는 곳은 '당신'의 모습이 애닯고 처연하게 보이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주저앉아서'라는 말에서 철퍼덕 소리가 힘없이 들려오는 것 같다. 그리움으로 범벅이 된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저 사람에게 어떤 일이 있었기에'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아마도 '당신'과 헤어진 때가 이른 봄이었나보다. 겨우내 준비했을 새 생명을 위한 잉태작업으로 만물은 소생하고 달콤한 봄바람이 잔물결과 연애질할 때 그들은 이별을 고했나보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이 무모한 희망을 주고 떠난 그대가 야속하다. 끝내 나타나지도 않을 거면서 그대 그리움은 어떻게 감당하라고 '아주 가지는 않는 거'라고 말했을까.  '않노라시던'을 보면 틀림없이 뱉은 말일 텐데 '약속이 있었겠지요'라는 대목에서는 막연한 추측 같아 조금 혼란스럽긴 하다. 그를 바라보는 화자의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언제고 돌아오리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었을까. 무책임하게 던진 말 한마디에 실낱같은 희망 하나 걸었을까. 이 대책 없는 순애보.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이 귀결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욕심? 그래, 욕심이다. 그리워할 대상이 있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하다 믿는 내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어쩌면 사랑은 달콤한 행복 한 토막에 처절한 아픔 아홉 토막이라는 것을 화자는 말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닥이 얕은 강어귀의 바닷물이 세차게 흐르며 드나드는 모습에서 힌트를 얻은 것일까. 시인의 눈에 비친 그대는 '바다', 당신은 '강어귀'. 시의 귀결이 냉정하긴 하나 엄밀히 따져보면 사람 사이에 흐르는 사랑이라는 달콤한 언어 속에 숨어있는 처연함을 꺼내 준 것은 아닐지. /誠舜
 
 
*** 《책과 인생》 8월호 (범우사,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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