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시(현재 통영시)에서 1년 남짓 산 적이 있다.
임지를 따라 먼저 간 남편을 좇아 처음으로 낯선 곳에 발을 들여놓던 2월 하순의 저녁 무렵, 버스 창으로 내려다보이던 도시 초입의 바다풍경이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도 선명하다. 검푸른 장막을 펼쳐놓은 듯 잔잔한 바다 위에 하얀 새들이 열병식(閱兵式)에 선 군인들처럼 반듯하게 줄맞추고 있었다. “어머나, 무슨 새들이 저렇게 나란히...” 탄성을 지르는 나를 돌아보던 기사아저씨가 친절하게도 “새가 아이고 꿀 양식장이라예.” 하고 일러주었다. 꿀이라니요. 그들은 ‘굴(石花)’을 그렇게 불렀다. 굴 양식용 하얀 스티로폼 용기들이 물 위에 떠있었던 것이다.
이튿날 만사를 제쳐두고 집 건너편에 보이는 나지막한 산등성이 남망산에 올랐다. 우묵한 항구에 정박한 크고 작은 배에서는 깃발들이 나부꼈다. 더 멀리 잦은 협곡과 만으로 구불구불한 해안선의 쪽빛 바다에 올망졸망한 섬들이 다문다문 흩어져 있고, 전날 본 것 같은 양식장도 널리 분포되어 있었다.
출렁이는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히며 만드는 하얀 포말과 휘날리는 깃발을 내려다보며 그 언덕에 세워진 청마의 시비(詩碑) 앞에서 <깃발>을 낭송하는 운치라니!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모든 시의 생명이 메타포라지만 깃발을 놓고 첫 구절부터 독자를 사로잡던 그 멋진 은유. “저 푸른 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라고 이어지는 그 시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 바다가 아니었어도 청마가 그런 시를 쓸 수 있었을까. 날마다 바다를 바라보며 살 생각에 마냥 부풀어 거품이 일던 마음. 낯선 언어와 낯선 풍경 속에서도 시인을 그리며 그 산엘 자주 올랐고, 익명의 자유를 누리면서 그 고장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 발걸음을 늘여갔다.
선착장은 진한 갯내음을 풍기며 떠나고 들어오는 크고 작은 고깃배들로 낮밤 없이 붐비고 왁자했으며, 조금 떨어진 여객선 선착장에도 흩어진 섬들로 오가는 주민들과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기는 매한가지였다. 특별히 이순신장군의 유적지인 한산도 행 유람선이 언제나 만원으로 인기가 좋았다.
바다에도 표정이 있다. 여행객으로 양양에 잠시 머물며 멀리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던, 새벽의 깊고 정결하고 찬란하던 동해와는 달랐다. 광활한 갯벌에 연이어진 막막한 바다의 섬 사이로 낙조를 드리우던 서글프면서도 아름다운 서해와도 확연하게 구분되었다. 섬들과 양식장이 어우러져 아기자기한 남해는 다사롭고 평화로웠다. 머물고 살았기에 사람들과 정이 들고 차츰 풍물이 눈에 익어서인가. 만선을 이끌고 입항한 어부들의 뿌듯한 웃음이 보였고 싱싱한 생선들을 더 싸게 사들이려는 장사꾼들의 약삭빠르게 오가는 흥정소리가 들렸다. 거기에 헉헉거리며 생선상자를 나르느라 땀으로 범벅이 된 인부들의 고함소리도 섞여 어디보다 뜨거운 삶의 현장이고 들끓는 젊음의 바다였다.
한려수도(閑麗水道)라는 명칭 아래 청정해역으로서의 성가(聲價)가 하늘을 찌르던 곳이었다. 그러기에 새벽시장은 늘 팔딱거리는 생선과 갓 딴 어패류를 사고파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아침부터 싱싱한 회를 상에 올리려는 주민들 거개가 시장바구니 대신 양동이를 들고 나온 모습도 내게는 생경했다.
바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찾아 떠나고 싶은 곳.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났기에 아련히 푸른 바다를 동경해왔는데 훗날 서너 차례나 항구에서 살게 될 줄 어찌 알았으랴. 여남은 살에 처음 보았던 여수 앞바다를 늘 그리움으로 추억하며 여행길에서도 수많은 바다를 대면하였다. 왜 나는 바다를 좋아하는가.
어느 곳 어느 쪽에서 흘러드는 강물일지라도 맑고 탁하고를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이는 포용의 마당이어서일까. 언제나 출렁이며 몸살을 앓지만 기본적으로 높낮이가 없는 평형의 무대이어서일까. 모난 곳이든 둥근 곳이든 어떠한 틈새도 남기지 않고 채우는 충만의 자리여서일까. 대륙과는 달리 모든 바다가 다 서로 이어져서 경계선이 없고 담장도 없는 소통의 공간이어서일까. 나는 모든 바다가 다 이어져 있다는 게 특히 맘에 든다. 여수의 바다와 충무의 바다가 어울려 한려해상공원을 이루듯, 동해와 서해와 남해가 만나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대서양과 인도양과 태평양이 몸을 섞는 그런 바다. 또 땅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출발점이고 무한으로의 가능성이어서 좋다.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수년 전 발리에 갔을 때 잠수함을 타고 바다 속을 유람할 기회를 얻었다. 상상할 수 없는 세계가 그곳에 있었다. 생명체의 보고(寶庫)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형형색색으로 부드럽게 유영하던 수천 수만의 물고기떼들. 어떤 놈은 유유히 의연하게 홀로 헤엄을 치고, 어떤 것들은 한 대대(大隊)를 이루어 몰려다녔다. 어디쯤에선가는 불쑥 머리를 수면 위로 내밀어 바깥세상을 엿보다가 쏜살같이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던 고래도 보았다. 그런가 하면 바다 밑바닥에서 화려한 꽃밭을 이루던 산호초와 물살에 따라 흐느적거리던 각양각색의 수초들은 또 어떤가. 육지 못잖은 신비롭게 아름다운 생태계가 거기에 있었다.
나는 때론 너무 기쁘고 행복해서, 때론 너무 슬프거나 외로워서 바다를 찾는다. 바다 앞에 서면 갑자기 멍해진다. 머리가 텅 비워지고 가슴은 한없이 여유로워진다. 골몰하던 생각도 괴롭히던 걱정도 잠시 달아나버린다. 인간세상이 바다만큼 소통하고 화해하며 충만하게 포용하는 곳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새삼 깨닫는다. 충무에서의 1년 남짓의 생활이 늘 애틋하게 그리워지는 까닭을.
고깃배가 남긴 자국도 군함이 지나간 물길도 금방 지워버리는 바다. 그러나 바다 역시 인간사의 흔적을 남긴다. 아니, 고스란히 그걸 간직한다. 다만 침묵할 뿐이다. 긴 세월에 걸쳐 발굴되고 있는 신안 앞바다의 유물이 그렇고, 우리의 영종도 국제공항이 그러하며, 군산 앞바다에서 새로이 이루어져가는 새만금역사(役事)가 그러하다. 자연의 일부인 바다를 육지와 똑같이 아끼고 보호해야 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내가 충무 앞바다를 그리는 것은 이런 바다의 속성 때문만은 물론 아니다. 그 바닷가에는 꿈꾸고 방황하던 나의 젊음이 머물렀고 청마의 싯귀처럼 동경이 깃발처럼 나부꼈으며 새콤한 초장에 찍어 먹던 오돌오돌한 생선회의 여운이 남아있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