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보고 싶어
신성순
단 한 번도 싫증난 적 없었어. 볼 때마다 설레는 걸. 추억이 묻어 그리움 가득 안고 있어서겠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냐.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는데도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벌써 마음부터 급해져. 자꾸 밖을 내다보게 되고 기분도 들떠서 차분해지지가 않아.
어떤 때는 소리 없이 나타나잖어. 내 반응 알지? 좋아서 깡충깡충 뛰고 환호성 지르는 거. 참, 내가 보아도 철이 없어. 그래도 어떡해? 정말 신나고 좋은 걸.
생각난다. 너를 보면서 참 환상적이다 했던, 참 아름답다 했던, 그 분위기에 너무나 잘 어울린다 했던. 내가 중학생 때였나봐. 크리스마스 이브였지. 교회 열심히 다녔었거든. 몇 날 며칠을 예수님 오신 날을 위해 마련한 행사를 준비하고 연습하느라 분주했었는데 마침 그 날이었어. 밤늦게까지 연극하고 파티하고. 아이 참, 내가 무슨 역할을 했는지 그건 기억이 안 나네.
밤 12시까지 마련 된 프로그램에 따라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어. 가가호호 방문해 대문 앞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기 위해서였는데 아, 그 때 불쑥 네가 나타난 거야. 알아? 내 기분 어땠는지? 소리를 '꺅' 지르며 뱅글뱅글 돌았잖어. 네 덕분에 성가를 부르러 다니는 동안 내내 행복한 기분이었어. 아직도 아련해.
참, 이런 일도 있었다.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 였나봐. 초등학생, 유치원생이었으니까. 앙상한 나뭇가지만 보이는 아주 을씨년스러운 계절인 겨울이었는데 양평 콘도에서 하루 머물다 오자 했는데. 떠난다는 건 무조건 신나는 일 같아. 주섬주섬 챙겨서 출발했지. 날씨는 어쩐지 스산했어.
눈썰매도 타고 맛있는 것도 사먹으며 지내려 했는데 아, 네가 오는 거야. 썰매장에 가니까 너 때문에 못 탄데. 아이들은 처음엔 실망한 눈치더니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는지 더 즐거워하던 걸. 너를 만지고 껴안고 뒹굴고 또 치열하게 싸우기도 하고 그러더니 금새 뺨이 불그레해졌어. 사과같이 탐스럽고 어찌나 귀엽고 예쁘던지.
너를 생각하면 이런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그래도 해마다 만나게 되는 넌데 왜 없겠어. 너와 함께 만들어진 추억들이 말야. 그렇겠지? 많이 그립고 많이 보고 싶겠지?
여기저기에서 네가 왔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어. 조금 있으면 나도 볼 수 있겠구나 했는데 아직이야. 기다린다는 거 뭔지 알지? 왠지 초조하기도 하고 시간도 더디게 가고 간혹 지치게 되면 화도 나고. 그러다 나타나면 왈칵 반가움에 기다리게 한 원망 다 사라지고 말지.
난 아직도 네가 좋아. 누가 보아도 세월의 흔적을 안고 있는 아줌마이고 제법 어른스럽게 행동해야할 만큼 살아왔는데 그렇게 할 땐 하더라도 가슴 한 편엔 철부지 그대로의 마음을 남겨놓고 싶어.
물론 너로 인해서 불편했던 적도 많아.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이 즐거워하고 행복해했던 기억이 있는 걸. 하늘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보아도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번지게 하는 너인데.
넌 겨울의 꽃이야. 삭막한 가지위에 수북이 내려앉아 한 편의 동양화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어 감탄사만 연발하게 하는 재주가 있잖어.
그런 너를 보고 싶어. 소담스럽게 내려오는 너를 만지고 싶어. 언젠가 처럼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 몰래 다녀가는 건 아니겠지? 뉴스를 보아도 어디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하고 신문에도 어느 지역에 눈이 왔다는 글이 있고 인터넷 게시판에도 하얀 눈에 대한 감상문들이 있어. 나는 아직 구경도 못했는데.
나도 보고 싶어./blue
*** 《책과 인생》 11월호(범우사, 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