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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마술적 수도 프라하에서 카프카를    
글쓴이 : 김데보라    12-06-01 10:17    조회 : 4,892

프라하/ 유럽의 마술적 수도에서 카프카를
 
폴란드에서 체코 프라하(Praha)로 건너왔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시내를 관통하는 블타바 강변이다. 주황색의 집들 머리 위로 황혼이 물들고 있다. 붉은색에 타오르는 빛으로 변해가는 하늘 아래의 체코는 드보르작, 스메타나, 카프카, 포먼, 쿤데라, 하벨 같은 걸쭉한 예술가들을 낳아 준 기름진 모태다. 예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였으나 1993년 1월 1일 벨벳이혼으로 평화롭게 분리 독립해서 체코가 되었다.
 
 
프라하는 기원전 6세기 후반 불타바 강변에 촌락을 형성하고 약 1000년 뒤인 7세기에 들어와서 언덕 위에 성과 요새를 지은 것이 기원이 된다.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답게 고풍스러운 풍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중세시대의 건축물이 많은 역사도시로 강대국과의 마찰을 피해서 굴욕을 참은 결과 그 가치를 유네스코가 인정해 주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괴테가‘백탑의 도시’로, 앙드레 브르통은‘유럽의 마술적 수도’라고 노래한 도시로 47개의 성당을 가지고 있어 건축의 박물관이라 불린다.
 
 
프란츠 카프카가 1883년 7월 3일 프라하 마이슬로바 2번지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 곳이다. 생애 대부분 이 도시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하는 예술의 도시 프라하는 바츨라프 광장의 신시가지인 노베메스토와 프라하 성 주변의 구시가지인 스타레메스토와 소지구로 나뉜다.
 
신시가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된 카를 4세가 황제에 어울리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한 것이다. 청동기마상이 우뚝 서 있는 광장에서부터 아래로 큰 대로가 뻗은 양쪽에는 운치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 그리고 백화점이 즐비하다.
 
 
예수탄생을 기뻐하는 성탄 분위기로 들썩거리는 프라하의 신시가지 대로를 걷다보면 화약 탑이 나온다. 이곳에서부터 카를 교까지가 구시가지다. 탑을 지나서 구시가지로 발을 내딛으면 중세시대로 들어간다.
 
천년의 묵은 때가 덕지덕지 내려 앉아 있는 교회와 궁전이 밀집된 이곳은 고딕과 로마네스크, 로코코, 바로크,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사방으로 어우러져 있어 걷는 맛이 색다르다.
 
 
중세의 거리, 거무스름하게 어둠이 내린 12월 중순이다. 들어선 구시가는 별천지가 따로 없다. 옛 유대인 지역 거주자들과 수공예 길드에 속한 사람들이 자기 기장(記章)을 들고 지나가는 왕에게 경의를 표했다던 이 거리 끝에는 광장이다.
 
지나가던 왕들이 잠시 멈춰 갈 정도로 아름다웠다는 이곳엔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밤을 밝힌다. 광장 중앙에는 연극무대가 펼쳐져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다.
 
꽃처럼 생긴 꼬마전구들을 촘촘히 밝히고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과 카페, 고졸한 건물들로 둘러싸여진 이곳을 거닐자니 밤 나라의 요술지팡이에 반짝반짝 불을 비취며 다니는 요정이라도 되는 듯 착각하기 십상이다. 먹거리, 볼거리가 즐비해서 몰려 든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아놓는다.
 
 
프라하 구 시가지에 틴 성당이 불을 밝히니 신비한 빛으로 황홀하다. 코발트블루, 프러시안블루로 물들인 하늘엔 별이 총총하게 빛나고 있었다. 검 푸른빛의 야광을 뿜어내는 아담과 이브를 상징한다는 성당의 뽀죽한 지붕 두 개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고딕 건축물의 그 신비로움에 기가 막힌다. 푸르스름한 빛으로 옷을 바꿔 입은 성당의 자태는 천년의 향기를 지닌 백탑의 도시 프라하의 가치를 드높여 준다.
 
 
프란츠 카프카와 구 시가지
 
카프카의 생가는 옛 유대인 게토와 구시가의 경계선에 있다.‘프란츠 카프카 광장 3번지’, 그 집 모서리에 카프카의 메말라서 날카롭고 차디찬 얼굴의 부조가 붙어있다. 카프카의 부모는 프라하 구시가 광장 안팎에 있는 집들을 여러 번 전전하면서 살았다.
 
1889년 6월에는 구시가광장 2번지의 가장 큰집 미누트 하우스로 옮긴다. 천문시계 근처에 있는 르네상스 스타일 스크라피티 장식이 있는 5층짜리 건물이다. 2층 모서리 외벽에 사자가 앞발로 방패를 들고 있는 조각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예전에는 약방이었던 그 집. 카프카는 아침이면 틴 성당 옆 건물로 들어가 정육시장 근처에 있는 독일어소년학교를 다녔다. 구시가 대광장과 소광장의 분계점인 이 집에서 김나지움 1학년까지 7년을 산다.
 
노천카페에 앉아서 카프카가 다니던 그 길들과 집을 바라본다. 하녀의 손을 잡고 천문시계 앞을 지나다니며 학교에 다니던 예쁘장하고 단정한 그 소년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카프카의 유년기와 청년기 일부를 간직하고 있는 그 집은 우아하면서도 고풍스럽다.
 
프라하의 상징
 
프라하를 상징하는 세 가지 건축물이 있다. 프라하 성, 카를 교, 천문시계가 그것이다.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천문시계는 압권이다. 1437년 제작된 천동설에 기초한 두 개의 원으로 된 시계가 나란히 돌아갔다. 시계 위쪽 양 옆의 인형들은 허영심, 탐욕, 시기, 이교도의 침략이라는 네 가지의 두려움을 나타낸다. 아래쪽 시계의 양 옆의 인형은 역사 기록자, 천사, 천문학자, 철학자를 형상화한 것이다.
 
 

 
정시가 되면 검 푸른빛의 중후한 색상과 독특한 문양으로 만들어진 시계탑의 오른쪽 해골 인형이 오른 손에 감긴 줄을 잡아당긴 다음 왼손으로는 모래시계를 들어 올려 뒤집는다. 그때이다. 두 개의 창문이 열리고, 12사도의 인형이 베드로 사도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다가 행렬이 끝나면 수탁이 “꼬꼬댁”홰를 치고, 시계는 “땡, 땡, 땡, 땡, 땡…….” 종을 울렸다.
 
인종전시장이 따로 없는 그곳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구 시가지를 벗어나면 카를교가 나온다. 카를 교는 블타바 강을 건너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번째로 오래된 석조로 만든 다리이다.
 
프라하 성과 강 서쪽의 상인 거주지를 이어 주는 최초의 다리로 1357년 카를 4세가 만들어 카를 교가 되었다. 약 500미터 길이의 다리 양쪽으로 30여개의 바로크식 조각상이 세워져서 야외의 바로크 박물관으로 불린다. 조각된 성상들은 성서 속의 인물과 체코의 성인들이다.
 
 
카를 다리위에 서서 강과 어우러진 프라하 성을 바라보니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다리 정 중앙에 얀 네포무츠키 성상이 있다. 그 성인은 왕비의 고해담당 신부였다. 그래서 왕비의 간음 사실을 알고 난 왕은 고해한 비밀을 발설하라 고문까지 하던 그 신부가 거부해서 죽였다는 것이다. 왕은 그 시신을 강물에 던지라 명했고,  물에서는 5개의 별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 뒤부터 그 앞에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 하여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잇는 곳이다.
 
프라하성은 블타바 강 서안의 카를교가 끝나는 지점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도시의 중심이자 체코를 대표하는 상징 건물이다. 9세기 중반 건설을 시작해서 14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으나 조금씩 변하기 시작해서 18세기, 900년이 지나서 현재의 성벽으로 둘러싸여진 왕국, 궁전, 교회, 정원, 성당, 수도원 등 여러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1918년부터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면서 내부 장식과 정원이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기네스 북에 등재되어 있는 체코는 물론 유럽에서 손꼽히는 명소이기도 하다.
 
한권의 책은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카프카는 중세 분위기에 흠뻑 젖어 살면서도 아버지의 강압적이고 권위적인 태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통로가 독서였다. 스피노자, 괴테, 클라이스트, 톨스토이, 다윈, 니체 등이 그를 매료시킨 인물이다. 이 중 괴테를 평생의 멘토로 삼았다. 20살에 폴라크에게 독서에 관한 편지를 보냈다.
 
 
빈틈없이 거듭거듭 높이 치솟아서 망원경으로조차 꼭대기를 보기 어려울 만큼 드높은 그런 생애를 조망할 때면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양심이 큰 상처를 입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럼으로써 양심은 온갖 상처에 더욱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오로지 꽉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 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각성시키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 ……책이란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처럼,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자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다. 한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한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이 부분이 가장 매력적이다. 카프카는 1906년, 프라하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산해보험공단에 입사해서 1922년까지 14년을 근무했다.
 
오후2시까지 회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3시부터 밤 7시까지 낮잠을 자고 일어나, 밤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글을 썼다. 밤의 고독을 즐겼다. 문학과 생활을 분리하고 살았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렌즈 가공일로 생계를 꾸린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누이동생 3명 중 막내 여동생 오틀라를 좋아했다. 그 여동생은 황금골목길 22번지에 살고 있었다. 1917년 5월까지 그곳에서 글을 쓰며 안식을 맛본다. 구시가 광장에서 프라하성의 그 집을 가려면 카를 교를 건너서 네루도바 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임시 집필실을 가기 위해 카를 4세 황제가 만든 카를교를 지나 네루도바 길을 따라 프라하성으로 올라간다. 황금골목길은 프라하성 정문에서 볼 때 오른쪽 끝에 있다. 성의 담벼락을 따라 포병과 위병의 막사로 지어졌던 오밀조밀한 집들. 그 집들은 출입문이 골목 쪽으로 딱 하나 뿐이다.
 
 

 
뒤쪽은 성벽, 여기에 수십 미터 낭떠러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작은 창문이 있다. 이 골목길이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정겨운 골목길로 사랑받을 줄 그 누가 알았으랴.
 
그 길의 22번지 집에서 카프카는 퇴근 후 저녁을 싸들고 와 2층의 작은 다락방에서자정 무렵까지 글을 썼다. 지금은 그 집이 카프카와 관련된 책과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 되었다.
 
황금골목길 22번지. 카프카는 이곳에서 <<시골 의사>>, <<회랑 관람석에서>>, <<형제 살인>>, <<재칼과 아랍인>>,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등을 집필했다.
 
<<변신>>의 작가 카프카는 1924년 6월 3일 폐결핵을 앓다가 빈에서 눈을 감았다. 장례식은 8일후 6월 10일 프라하에서 치러졌다. 그리고 신유대인공동묘지 스트라슈니체에 묻혔다. 그가 묻힌 21구역 묘지, 정문을 통과해서 오른쪽 오솔길로 들어서면‘작가, 무대예술가, 시각예술가, 작곡가가 묻혀 있는 구역’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화강암 묘비에 부모와 함께 카프카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가족묘지다. 그의 여동생 세 명이 나이 순서대로 적혀 있다. 나치에 의해 강제수용소에 끌려가 숨진 동생들이다. 비록 시신은 수습할 수 없었지만 가족 곁에서 쉬어가라는 뜻이다.
 
40년 11개월 이 세상에 머물다간 카프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천년의 고도 프라하. 나는 그곳에서 그의 지난 행적을 더듬고 만지는 나그네였다. 홀로 떠난 특별한 겨울의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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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조성관. 프라하가 사랑한 천재들, 열대림.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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