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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산    
글쓴이 : 이상태    12-06-01 19:09    조회 : 2,839
                                   유산
 
 
  “너 그거 받았나?”
  아버지 기일에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와 누님들이랑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던 자리에서 어머니가 불쑥 내게 이렇게 물으셨다.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뭐 말입니까, 어머니?”
  “뒷들 논 두 마지기 팔았다 카던데 형이 그 돈 너 주더나?”
 
  어머니는 자못 진지하셨다. 그제야 나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짐작이 갔다. 어머니는 전에도 내게 “뒷들 논 두 마지기는 네 몫이다.”라는 말씀을 몇 번 하신 적이 있었다. 연세가 높아지면서 아버지가 못다 하고 가신 일을 마무리 짓고 싶으셨던 것 같았다. 얼마 전 형이 그 논을 팔아 농장을 한곳으로 모으려는 것 같더라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서 얼핏 전해 들었는데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틀림없었다.
 
  “예, 받았어요. 어머니.”
  나는 얼른 대답했다. 옆에 있던 누님들의 눈이 둥그레졌다. 왜 없는 말을 하느냐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눈치를 채지 못하시게 돌아앉으며 누님들에게 눈을 찡긋했다. “너, 나 마음 편하라고 카나?, 참말로 받았나?”
어머니는 내 대답이 미심쩍었던지 재차 다그쳐 물으셨다. 옆에 있던 누님들이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하기에 나는 누님들에게 다시 눈짓해놓고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참말로 받았어요, 어머니. 그리고요 어머니, 저 이제 잘 살아요. 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어머니는 구순을 막 넘기셨다. 건강하지만 연세가 있어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데 제발 자식 걱정에서 놓여나시기를 빌고 싶었다.
  “받았으마 됐다. 인제 이거 필요 없겠구나.”
 
  어머니는 주섬주섬 치마를 걷으시더니 홀쳐 묶은 복주머니를 여시고는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 내게 주셨다. 나는 어머니가 주시는 물건을 두 손으로 받았다. 닳고 닳아 반들반들 윤이 나는 두 개의 목도장이었다. 자세히 보니 그 중 하나는 옛날 우리 통지표에 찍어주시던, 정말 오랜만에 다시 보는 아버지 도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낯설었는데 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7년, 언제 어머니가 내 도장을 파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머니는 그 도장 두 개가 있으면 뒷들 논 두 마지기가 아버지 명의에서 내게로 넘어올 수 있다고 믿으셨던 것 같았다. 더는 말씀이 없으신 어머니 대신 내 손에 들린 목도장은 많은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형은 장남으로 집안 살림을 맡았다. 얼마 되지 않는 농토에 농사지어 두 누님과 여동생을 출가시켰고 내 학비를 보태 주었다. 어머니는 형과 함께 살아오셨으니 형이 그 어려운 살림을 어떻게 꾸려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것이다. 그런 어머니께서 굳이 당신이 이루어놓은 땅 한 조각을 차남인 내게도 남겨주고 싶어 하시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는 삼 형제 중 막내였고 할아버지는 생전에 아들들에게 나누어 줄 땅을 미리 정해 두셨다고 한다. 물론 막내아들인 아버지 몫도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참 뒤 살림을 나게 된 아버지에게 할아버지가 정해주신 땅은 주어지지 않았다. 겉으로는 장사를 시작한 아버지가 농사를 짓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아버지가 장사를 그만두고 농사를 시작하셨을 때에도 그 땅은 여전히 큰 아버지 차지였고 아버지에게 넘어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본인이 남기고 간 적산농지 몇 마지기만을 부치면서 해마다 연부를 부으며 쪼들린 생활을 하시느라 아이들 공부는 고사하고 가족들 입에 풀칠하기도 바빴다. 
 
  어머니는 부모가 준 땅을 왜 못 찾아오느냐고 아버지를 닦달하였고, 아버지는 때가 되면 형님이 어련히 알아서 주실 테니 잠자코 기다리라 하셨다. 그러면 어머니는 다시, 그때가 언제냐고 다그쳤고 아버지는 대답을 못하고 얼버무리셨다. 면에서 효자상까지 받고 형제간에 우애가 좋기로 근방에 소문이 나 있었던 아버지로서는 형님의 처분을 기다리는 일 말고 달리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 기다려도 그 땅은 아버지 앞으로 넘어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아버지 닦달은 형이 군에 입대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형이 입대한 것은 6.25 직후였고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다들 군대에 가면 살아서 돌아오기가 어렵다고 믿던 때였다. 그럴 때 아들을 군대에 보낸다는 것은 어머니로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를 더욱 가슴 아프게 하는 일이 있었다. 형이 징집영장을 받고 수백 명 장정과 함께 읍내 경찰서 마당에 앉아 있었을 때, 여러 명이 ‘관공서 보류’라며 불려 나갔고 이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관청에 적을 둔 사람들로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어머니 눈에는 ‘관공서 보류’로 군대에 가지 않게 된 젊은이들이 하나같이 부잣집 아들로 보였다. 저 집 부모들은 무슨 돈으로 자식들을 공부 잘 시켜 군대에 안 가도 되게 만들었는가. 돈 없어 못 먹이고 못 가르친 새까만 내 새끼는 이제 저들을 대신해 총알받이로 전장에 나가는구나, 어머니의 가슴은 생살을 찢어 소금을 뿌린 듯 쓰리고 아팠다. 형이 군에 간 뒤 나는 이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야 했다.
 
  어머니는 그 무렵 정신을 놓은 사람 같았다. 참았던 서러움이 화산처럼 폭발하면 그 파편은 고스란히 아버지에게로 튀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주신 땅을 왜 못 찾아오느냐고 아버지를 닦달하였고, 대답이 궁한 아버지는 애꿎은 밥상만 밀었다 당겼다 하셨다. 어머니는, 당신도 땡볕에 살 타가며 뼈 빠지게 일했건만 일한 표가 나지 않는다고 넋두리하며 우셨다. 어머니는 또 큰집은 그 땅 농사지어 자식 대학도 잘도 보내는데 우리는 공부 못 가르쳐 아들을 총알받이로 전장에 보냈다며 땅 못 찾아오신 아버지를 원망하셨다. 인내의 한계를 넘긴 아버지는 밥상을 들어 마당 가운데에다 내팽개치고 어디론가 휑하니 나가셨고, 어린 우리는 아버지가 어디 못 돌아올 데라도 가시는 줄 알고 동구 밖까지 따라가 두루마기 자락을 잡고 우리를 보아 참으시라며 매달려 울었다. 부모가 물려준 땅이라도 형이 안 주면 동생은 어쩔 수 없었던 서러움, 어머니는 그런 서러움을 당신의 둘째아들에게는 결코 대물림해주고 싶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래 그 오랜 세월 목도장 두 개를 당신 품속에 간직하고 계셨을 것이다.
 
  목도장을 내게 넘겨주신 뒤 꼭 일 년 뒤에 어머니는 저 세상으로 가셨다. 객지에 사느라고 임종조차 제대로 못 한 나는 일 년 전 내가 했던 말을 어머니께서 정말로 믿으셨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나는 이사를 할 때마다 어머니가 주신 목도장을 제일 먼저 챙긴다. 내게 그 목도장은 백억 원짜리 빌딩보다 더 값진 어머니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한국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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