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그들
그들은 한 때 온 나라를 진동하고 다녔다. 산모퉁이에 숨어 있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가 하면 고속도로변에 진지를 구축해놓고 명절을 쇠러 가는 촌사람들의 지갑에다 스피드건을 겨누기도 하였다. 그들이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는 이름도 오토바이가 아니라 사이드카라 불렀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둘이서 짝을 지어 두둥두둥 땅을 진동하고 나타나면 아무 잘못이 없는 운전자들도 괜히 오금이 저렸다. 세워놓은 사이드카 무전기에서는 연신 ‘잡아 와, 잡아 와’하는 것 같았고 훤칠한 키에다 시커먼 선글라스를 낀 그들이 긴 가죽장화로 저벅저벅 걸어오면 겉모습만 보고도 기가 질렸다.
운전자들은 잽싸게 차에서 내려 머리부터 조아려야 했다. 맹수에게 목덜미를 물린 가냘픈 짐승이 살기 위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 가끔 성깔 있는 운전자가 고양이 앞에서 발악하는 쥐처럼 법규가 어쩌고 대들어보지만 어림도 없었다. 길목을 노리고 있던 맹수가 그만한 대비도 없이 덮쳤을까.
운전자들의 눈에는 그들 중 반듯하게 제 할 일을 하는 이들은 눈에 잘 띄지 않았고 엉뚱한 짓만 하고 다니는 이들이 다수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엉뚱한 짓을 하고 다니는 이들은 그들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들을 옹호하였다. ‘극히 일부’가 노리는 것은 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였다. 찾아보면 그런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당했다고 생각하는 운전자들은 때로는 그날 일진을 원망했고 때로는 자기가 한 실수를 인정하고 한결 낮은 가격으로 마무리 지어준 그들의 거래에 대해서 고마워하기도 했다. 운전자들은 또 그들이 신고 다니는 가죽장화가 불룩하다는 둥 별의별 말로 그들의 뒷모습을 쑥덕거렸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 함께 저지른 일인데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한 시절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일 뿐이었다. 속도도 내지 않고 꽤 조심스럽게 하는 운전이었지만 나도 몇 번 목덜미를 물려서 호구(虎口)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 무렵 어느 토요일 늦은 아침이었다. 나는 캐주얼 복장으로 회사에 가고 있었다. 집은 강남에, 회사는 광화문에 있었기 때문에 한남대교를 건너 남산 순환도로를 탈 참이었다. 한남동 삼거리를 막 돌았을 때 두둥두둥 사이드카 한 대가 내차 옆에 붙더니 흰 장갑 낀 손이 길 가를 가리켰다. 또 물렸구나 싶었다. ‘오늘이야말로 위반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왜 또 이러시나. 그래, 오늘은 전혀 다른 카드를 내 보리라.’ 그날은 정말 전에 해보지 않았던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오래 전부터 벼르고 있던 실험이었다.
흰 장갑이 지시하는 대로 차를 길가에 붙였다. 애써 태연해 보려했지만 심장은 어쩔 수 없이 콩닥거렸다. 사이드카 진동소리며, 선글라스, 무전기소리, 가죽장화, 이런 것들이 주는 위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사이드카를 저만치 세워두고 뚜벅뚜벅 걸어와 내차 옆에 우뚝 섰다. 나는 이번에는 일부러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꼼짝도 하지 않고 차안에 가만히 앉아 천천히 운전석 차창만 내렸다. 내 실험의 시작이었다.
“선생님, 삼거리에서 신호위반 하셨습니다.”
흰 장갑이 경례를 붙이며 말했다. 공식을 따르고 있는, 지극히 기계적인 음성이었다. 위반했다면서 당장 스티커를 뗄 태세는 아닌 것 같았다. 역시 노련했다. ‘자, 자, 얼른 차에서 내려서 머리를 조아리고 사정을 해야지 뭘 그렇게 꾸물거리고 있나 친구. 장사 처음하나? 오늘 토요일인데 빨리빨리 끝내자구.’ 그의 모습이 내게 하는 소리였다. 잘 닦아 반짝이는 가죽장화가 유난히 길어보였다. 아침이라 그랬는지 별로 불룩한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뱀 만난 두꺼비처럼 몸을 잔뜩 부풀렸다. 그리고는 짐짓 거만스러운 몸짓으로 목을 빳빳이 세우며 천천히 대답했다.
“아 그래요? 난 거기가 상시(常時) 우회전인줄 알고 있었는데….”
그리고는 주저하지 않고 지갑에서 운전면허증을 뽑아 그에게 건네주었다. ‘위반했으면 스티커를 발부해야지요.’ 하는 뜻이었다. 그는 어설픈 동작으로 면허증을 받았다. 마치 이상한 동물이라도 발견한 듯 놀라는 표정이었다. ‘이상한 동물이 하나 잡혔네. 봐 달라고 사정하지도 않고, 달라고 하기도 전에 면허증을 내어주고. 스티커쯤은 문제도 없다는 거야 뭐야.’ 그는 늘 해오던 공식이 달라지자 어쩔 줄 몰라 하는 눈치였다. 내 실험이 먹혀들고 있다는 증표였다. 기계적인 사람들은 조금만 모드를 바꿔 놓으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의 머릿속은 보나마나 뒤죽박죽이 되어있을 것이다. ‘어허, 위반했다면서 뭐 하시오? 빨리 스티커를 끊어 대령하지 않고!’ 내 느긋한 태도가 그를 호통치고 있었다.
“출근하십니까?”
한참동안 멍하니 면허증을 들여다보던 그가 이번에는 내 위, 아래를 찬찬히 훑어보며 물었다.
“네”
나는 일부러 짧게 대답했다.
“그런 복장으로 출근하십니까?”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그는 뒤늦게라도 내가 차에서 내려 사정해주기를 바랐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렇게 입습니다.”
나는 건조하게 대답했다. 정말 궁금하다는 저쪽의 물음에, 너무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말라는 이쪽의 응수였다. 위반했다는 통고를 받고도 큰소리를 치고 있는 내 기분이 짜릿했다. ‘빌어먹을.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스티커를 떼야 하는 거야, 그냥 보내주어야 하는 거야?’ 이상한 동물을 앞에 두고 그는 적이 고민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다른 동물들처럼 스스로 입에 쏘옥 들어오지 않고 무엇을 믿고 그러는지 눈만 말똥말똥 뜨고 쳐다보고 있으니 요것을 달려들어 뜯어야 할지 그냥 놓아주고 말아야 할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망설이고 있던 그가 드디어 면허증을 돌려주면서 말했다.
“되게 정직하십니다.”
그는 내가 ‘우리는 이렇게 입습니다.’라고 말 했을 때 움찔하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나를 무시무시한 ‘거기’ 사람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니 마침 그 길이 ‘거기’ 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나는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천천히 차를 몰았다. 사이드카 옆에 서있는 그가 내 차 백미러 속에서 점점 작아지더니 급기야 한 점이 되어 사라져버렸다.
극성스럽던 그들이 언젠가부터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다. 그들이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비록 몇 번이고 선거를 다시 하면서 분노하고 청문회를 보면서 열을 올리지만 머지않아 우리의 ‘극히 일부’들은 그들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변은 가을 계곡 물처럼 투명해질 것이다.
(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