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등선
가관이었다. 두 명씩 앉게 되어 있는 좌석에는 세 명 네 명이 끼어 앉았고 통로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서 있는 승객들은 열차가 흔들릴 때마다 이리 밀렸다 저리 쏠렸다 하였다. 그런데도 열차가 다음 역에 정차할 때마다 또 다른 승객들이 보따리를 이고 들고 꾸역꾸역 올라오기만 하니 쇳덩어리로 만든 열차가 늘어날 리 없고 갈수록 사람들만 쌀자루 쟁이듯 짓눌려졌다. 가끔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어린아이가 귀청을 찢을 듯 울어대기라도 하면 찜통더위 속 차 안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 되었다. 1970년대 초 어느 해, 이 땅에 아직 조랑말 포니도 태어나지 않아 그 많은 귀성객을 열차가 도맡다시피 하여 실어 나르고 있었을 때 고향에서 추석을 쇠고 완행열차 편으로 서울로 올라오고 있었다.
타자마자 내 자리는 연세 높은 할머니에게 양보해버렸고 벌써 네 시간을 그렇게 통로에 짓눌려 있자니 숨 이 막힐 지경이었다. 바람이나 쐬어볼까 하고 갖은 눈총을 다 받아가며 승객들을 한 사람씩 제치고 출입구 쪽으로 나왔다. 바깥이라 시원하기는 했지만 거기에도 계단까지 승객들로 꽉 들어차서 떠밀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직도 줄잡아 세 시간은 더 가야 했다. 옆 칸을 보았다. 의자를 하얀 천으로 싸놓아 한눈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2등실이었다. 통로에 서 있는 승객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었고 다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발을 뻗은 채 누워서 잠을 자거나 신문을 보거나 하였다. 아,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저리도 극명하게 다른 두 세계가 공존할 수 있을까. 한쪽은 지옥, 다른 한쪽은 천국이었다. 자세히 보니 천국 쪽에는 군데군데 빈자리가 남아 있었다. 당장 거기로 가서 지친 몸을 눕히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았지만 저기가 어딘가, 특별한 사람들만 타는 2등실이 아닌가.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서른 살이 다 되어 가던 그때까지 외지생활을 해오면서 셀 수 없이 열차를 타고 다녔지만 2등실을 타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쳐서 그랬을까. 그날따라 자꾸만 2등실 쪽으로 눈길이 갔다. 내가 저기로 들어가서 빈자리에 앉으면 어떻게 될까. 쫓겨나지 않을까. 빈자리가 저렇게 있는데도 왜 3등실에서는 한 사람도 옮겨가려 하지 않을까. 어느새 내 마음의 반쪽이 나머지 반쪽 마음의 만류를 뿌리치고 승객들 틈에 낀 몸을 빠져나가 2등실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제자리에 돌아온 반쪽 마음이 지친 몸을 꼬드겼다. ‘일단 한 번 들어가 보자니까. 기껏해야 망신밖에 더 당하겠어?’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2등실 문을 열었다. 짓눌려 있던 몸이 텅 빈 공간으로 빠져나가자 그것만 해도 숨통이 트였다. 거기에는 눈치 보아야 할 노인도, 마구 미는 아주머니도, 짜증 나 울어대는 아기도 없었다. 발뒤꿈치를 들고 가만가만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소리 나지 않게 의자를 뒤로 젖힌 다음 다른 사람들이 한 것처럼 발을 뻗고 누워 보았다. 구름 위에 누우면 이런 기분일까, 날아갈 것 같았다. 3등실 쪽을 보았다. 거기, 아직도 빼곡하게 끼어 서서 순간순간을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이 초점 잃은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들 속에 조금 전까지의 내 모습이 끼어 있었다.
완장을 찬 차장이 오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누구 마음대로 2등실로 건너왔느냐며 호통을 치고 당장 3등실로 쫓아버릴 것 같았다. 나는 구부정하게 숙이고 있던 등을 곧추세우고 짐짓 거만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았다. 나도 2등실에 앉아가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런 짓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차장이 내게 더할 수 없이 나긋나긋하게 대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공손하게 차표를 좀 보여 주시겠느냐고 물었고 내가 차표를 보여주자 나직한 목소리로 추가요금을 말해주었다. 그동안 3등실을 타고 다니면서 줄곧 고압적인 차장만 보아오다가 처음으로 나를 상전처럼 대해주는 차장을 만나고 보니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추가요금을 건네주자 그는 새 차표를 끊어준 뒤 다시 공손하게 절을 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눈을 부라리며 쫓아버릴 것이라고 걱정했던 것은 순전히 내 기우였다. 추가요금은 흔히 말하는 술 한 잔 값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달랑 그 차액 몇 푼 때문에 사람들은 2등실로 건너올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일까. 얼핏 돈 때문이라고 생각해버릴지 모르지만 정작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 같았다. 그만한 돈은 유흥비로도 쉽게 쓸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저 두 공간을 저리도 분명하게 갈라놓고 있는 것일까. 혹시 ‘나는 정말 3등실이 좋소. 그래서 이곳을 죽을 때까지 조국처럼 지키고 있을 것이오.’하고 나설 별난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 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좋기야 하겠지. 하지만 거기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라고 생각하며 아예 2등실에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있을 것 같았다.
어렸을 때 발목에 사슬을 차고 길이 든 코끼리는 덩치가 산만큼 자란 뒤에도 있으나 마나 한 사슬을 끊어보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끙끙 힘겨운 일을 하며 일생을 살아간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들도 코끼리처럼 쉽게 길이 들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아예 ‘특별한 사람’이 되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마음의 사슬에 묶인 채 평생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마음의 사슬은 쇠로 만든 사슬보다 더 질길는지 모른다.
그날 나는 2등실에 누워 출입문 저쪽 3등실에 여전히 지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사슬을 끊은 세상이 어떤 것인지 절절하게 느껴보았다. 어쩌면 그것은 지옥에서 짓눌려 있다가 천국으로 건너 간 내게만 살짝 보여주었던 우화등선의 세계였는지도 모르겠다.
(수필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