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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문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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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솜이불    
글쓴이 : 문경자    12-06-04 00:04    조회 : 4,500
 
 장롱을 정리 하다 보니 애물단지 뚱뚱보가 아래칸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눈에 거슬려 오만 인상을 쓰고 쳐다 보니 ‘뭘 봐’ 하며 한마디 할 것처럼 째려본다. 언젠가는 버려야지 하면서도 볼 때는 번거롭기만해 장롱 문을 닫으며 새까맣게 잊고 지냈다. 해마다 이불을 꺼내서 통풍도 시키곤 했는데 올해는 그냥 넘어갔다. 이제는 아무 관심도 없어지고 무덤덤해졌다.
 
 고향에 계시는 작은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솜 이불은 한때 애지중지 귀하게 여기며 따스함을 느끼곤 했었다. 그 속에는 간절한 할머니의 사랑이 실에 꿰어져 한 땀 한 땀 기울 때 마다 잘 살기를 바랐던 작은 소망이 스며있다고 생각하니 헌 옷을 버리듯 취급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정성 들여 만든 것이 아깝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 데는 아주 특별한 이유가 있다.
 시집을 갈려고 하니 무엇 하나 제대로 준비 해줄 사람이 없으니 걱정이 태산 같았다. 하는 수 없이 고향에 계시는 할머님께 부탁을 드렸다. 흔쾌히 대답을 하시면 내려오라고 했다.
 
 서울 동대문시장 안에 있는 이불코너에서 마음에 맞는 색상과 천을 골랐다. 빨강색 바탕에 금실로 수를 놓은 큰 장미꽃과 두 마리의 원앙이 마주보고 있는 그림이 너무 아름다웠다. 흰색으로 된 솜 싸개와 작은 꽃 무늬가 있는 이불 호청도 끊었다. 시부모님께 드릴 예단도 같은 천에다 바탕색만 푸른 색으로 했다.
 이른 봄이라 약간 추운 날씨였다. 고향에 가는 길은 왠지 서럽기도 하고 설레는 마음도 있었다. 싸리문을 열고 반겨주시는 할머니의 미소 속에는 걱정스런 모습도 엿보였다. 모른 척하고 준비해 간 것을 보여드리니 웃으시며 아주 곱고 무늬가 예쁜 것으로 잘해 왔다고 칭찬을 넘치게 해주셨다.
 다음날 할머니는 동네에서 목화를 따놓은 친척집에 들러 이불을 만들 때 필요한 만큼 구했다. 할머니는 ‘깅자’ 가 시집을 가는데 이불을 만들기 위해서 서울에서 혼자 내려 왔다고 하시며 솜을 싸게 팔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말씀을 드린 것 같다. 그것을 가지고 신작로를 따라서 걸어갔다. 솜은 가벼운 데다 나누어서 들고 가니 힘은 많이 들지 않았다.
  읍에 있는 솜털 집에 들어서니 주인 아저씨는 “따님이 시집을 갑니꺼” 하며 힐끗 쳐다본다. 할머니는 들은 척도 않고 가지고 간 보퉁이를 내밀며 멀리서 왔으니 잘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그것은 값을 좀 싸게 해주면 좋겠다는 마음도 포함 되어 있었다.
 솜틀집 앞 마당에 멍석을 깔고 솜을 고르게 펴서 편편하게 만드는 할머니의 솜씨는 능수능란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눈이 싸여 있는 것처럼 고르게 손질을 잘 하셨다. 솜 싸개로 드문드문하게 바느질을 하고 양쪽 끝에는 한번 더 꼼꼼하게 마무리를 하였다. 나는 보고 배우며 열심히 했다. 할머니는 동백 기름을 바르고 무명 치마 저고리에 하얀 버선을 신고 앉아 바느질을 하는 모습이 어머니와 닮으셨다. 솜 싸개까지 바느질로 끝맺음을 하고 그 위에 꽃무늬 이불 호청을 씌워서 마무리를 했다.
 예단으로 보낼 이불은 바로 화물로 부치고 내가 덮을 이불은 다시 할머니 집으로 가져가서 신혼 여행에서 돌아오면 시집으로 보내야 한다고 하시며 할머니는 이불을, 나는 요를 머리에이고 가는데 빠른 길로 가기 위해서 황강을 건너서 가자고 하셨다.
다리가 없기에 뱃사공도 없으면 강물을 건너 가야 하는데 이른 봄의 물이 얼마나 차가울까 겁이 났다. 다리가 있어도 한 사람이 겨우 건널 수 있어 기다리고 있다가 건너 가야 한다.
 
꼬마 녀석들 가득 태우고/ 아슬아슬 황강 물길 가로 지르던/ 나룻배와 뱃사공도/ 꽁꽁 얼어 붙은 황강 가로 질러/ 예쁜 꼬마다리 황강 섶다리도/ 웅장한 교각이 대신 할 뿐/ 나룻배 섶다리 건너던/ 고향의 식구들도 이제는/ 흩어지고 별 동무 대신 할 뿐/ 이제는 추억의 나룻배로/ 전설의 섶 다리로/ 우리의 곁을 지나갑니다/
                                 강우홍 <나룻배와 섶다리>
 
 비가 많이 내리면 다리가 물살에 이기지 못해서 떠내려 가기도 하고 뱃사공이 쉬는 날에는 강물을 건너 가야 했다.
그날따라 배로도 갈 수가 없고 다리도 끊어진 상태라 강물을 건너서 가야 했다.할머니께서 앞장서서 물속으로 들어 가시며 뒤에 바짝 붙어서 오라고 턱으로 신호를 보낸다. 무서운 마음에 강물 속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물살에 발이 공중으로 붕 뜨는 느낌에 몸이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고 했다. 할머니는 돌아 보시며 나를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조심 하거라, 물살이 세어서 잘 못하면 떠내려 간다.”고 하셨다.
  강물은 차서 내 다리에 닿는 살얼음이 순간 칼날이 스치는 것처럼 찌릿했다. 소리 없이 흐르는 물속이라 얕보다가는 큰일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어머님은 그렇게 마련한 예단 이불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장롱 속에 넣어 두고 아무리 추운 겨울 밤에도 덮고 주무시지를 않았다. 지나가는 말로 “뒤에 너거나 덮어라, 나는 지금 덮고 자는 솜이불도 따듯하고 좋다.” 고만 하셨다. 나는 왜 그렇게 말씀 하시는지 알고 있다. 서랍장 위에도 예단으로 한복 감을 끊어서 작은 상자에 넣어 드렸는데 한복을 만들어 입지도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보자기에 싸서 그대로 두었다.
예단 문제로 서운해 하시며 절대로 손을 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터라 장롱 문이 열릴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어미 없이 자란데다 시집 올 때도 형편없는 예단을 보고서 한숨까지 쉬었다. 남에게 번듯하게 내보일 것이 없어 창피하게 생각 하셨다. 그렇다고 다시 해 올 수도 없는 일인데 그것으로 인해 시집살이를 톡톡히 했다.
 세월이 흘러 어머님은 병석에 누워 지내게 되었다. 등뼈가 딱딱한 방바닥에 닿으니 아프다고 하셨다. 얼른 장롱 문을 열고 금실로 수를 놓은 예단 요를 꺼내 깔아 드리니 “폭신하고 좋구나” 하며 웃으셨다. 아! 이제는 그 미운 마음도 사라졌으면 하고 나 혼자 좋아 어머님의 행복해 하는 얼굴을 내려다 보며 속으로 ‘고맙습니다.’ 하고 웃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풀고 사는구나.
 시어머님이 돌아 가신 날 솜으로 만든 푸른색 요도 같이 동행을 시켜 동구 밖으로 나가 태우니 하얀 연기와 시커먼 재가 바람을 따라 하늘 나라로 춤을 추며 올라 갔다. 어머님의 모습이 아련하게 그 사이로 보였다.
 해마다 일이 있어 시댁에 가면 제일먼저 솜이불을 꺼내 햇빛에 말리곤 했다. 여름 밤에도 솜이불을 덮고 잤다. 덥지도 않고 따뜻해서 푹 파묻혀 편안한 밤을 보낸 다음 날은 온 몸이 뽀송뽀송하고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어머님의 오래된 정이 이불 속에 묻혀 있어 손길로 다독여 주나 보다. 햇빛에 말려 장롱 속에 넣고 큰 보자기로 덮어 보관했다.
 빨강색 솜이불을 보니 친정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느 해 겨울 집에 오셔서 주무신 적이 있었다. 날씨가 추워지니 아무래도 솜이불이 제격일 것 같아 덮어 드리니 만족하게 웃으시며 귀한 것이라 좋아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입까지 푹 덮고 코를 골며 주무신다.
 이불가계에 들어서면 종류가 엄청 많아서 골라 사기도 어렵다. 사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기도 하지만 값도 만만치 않다. 예단 이불도 백 단위가 된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솜이불을 꺼내 햇빛에 말리며 솜이 부풀어 오르게 힘을 주어 탁탁 쳐본다.
 
[서 시] 통권22호 수록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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