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유산 한발 더 다가가기 -예산-
예당호, 물위의 길을 걷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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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한 물들의 흘레, 이수교합(二水交合)의 장관
또 하나의 장관, 송지리 송지연의 수합(水合)이다. 암물과 숫물의 흘레다. 그러나 이 장관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약간은 신의 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불행하게도 이곳 수합의 장관은 갑작스럽게 불어나는 홍수가 날 때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지금은 단지 훈(暈)으로만 볼 수밖에 없으니, 그렇다고 이 장관을 보기 위해 흥분한 물속으로 들어가라고 직접 권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훈(暈)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의 힘을 경외해야 할 듯하다.
대흥면 송지리는 松池淵에서 온 지명이다. 옛날에 이곳에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었는데 주변이 소나무로 빽빽하게 차있어 그 못의 이름이 송지였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경승지로 꼽혔다. 그러나 이곳 주인인 송씨 도령은 소나무 위에 올라가 책 읽기를 좋아했다. 어느 날 소나무 위에서 책을 읽다 문득 아래를 쳐다보았다가 연못 위에 비친 달빛의 아름다움에 취해 그만 그 속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예전에는 기우제를 지낸 곳이다. 아마 기우제를 지내고, 이윽고 비가 내려온 대지를 적시고, 달천과 내천의 이수(二水)가 서로 교합하며 흐르는 물을 보고 흐뭇해했을 광경이 눈에 선하다.
송지리 못은 홍수만 나면 물에 묻혔다가 물이 빠지면 다시 나타나는 연못이다. 대술 신양에서 흘러오는 달천과 광시 청양에서 내려오는 내천이 합수가 되는 곳이다. 특히 달천의 물이 많고 급하여 숫물이라 하고 내천의 물이 적고 흐름이 부드러워 암물이라 한다.
유월 홍수 때가 되면 이 두 물의 흘레가 시작된다. 숫물은 항상 급하다. 금북정맥의 수려한 분수 점을 지나온 숫물은 대술 방산리 봉수산에서 발원하여 그 성정이 화려하고 아름답다. 높은 해발에서 쏟아지듯 내려온 숫물은 안락산, 극정봉의 정기까지 받아 비로소 이곳에 이를 때는 우렁차고 힘참이 끝을 다한다. 그러나 항시 연인을 기다리듯 설레는 마음을 둘 곳 몰라 늘 먼저 와서 기다린다.
반면에 암물은 아주 여유롭고 도도하다. 금북정맥 일부가 보령 화성에서 회룡 하면서 부드러워진 분수 점의 여유에서 온 흐름이다. 그러나 그 품이 넓어 도도하다. 숫물이 미리 와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두르거나 만남의 기쁨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열정까지 없는 것이 아닌 것이 일단 숫물을 만나면 그 깊이 파고듦이 예사롭지 아니하다.
암물이 그 자태를 드러내자 기다렸던 숫물은 송지연의 바위를 한바탕 휘감아 돌면서 암물을 맞이한다.
이 두 물은 항상 달천의 숫물이 치받아 올리면 내천의 암물이 조용히 받아 올려 휘감아 송지연 쪽으로 다시 휘돌아 나간다.
한 바탕 흘레가 끝나면 이제 다시 마을에 들었던 물이 잠잠해지고, 새 물이 찬 송지연이 나타난다.
그러나 지금은 저수지로 볼 수 없음이 안타깝다. 그렇다고 넋 놓고 지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 저수지 둑 때문에 다른 물들이 이 두 물의 흘레를 방해하지만 다행히 호수의 둑이 멀어 그 방해가 심하지 않다. 보는 물들이 많아 수줍게, 그러나 격동적으로 흘레한다. 다만 우리들은 이불 속의 성교처럼 물속에서 벌어지는 장관을 훈대(暈帶)의 모습으로만 볼 수 있다. 커다란 잉어가 물속에서 휘감아 돌 때 물 위로 나타나는 물결의 표시를 훈이라 한다.
한차례 수합이 일어나고 흙탕물이 바위 너덕을 치받아 올라오면 잉어 떼들이 줄지어 올라오던 시절에는 쇠스랑만 가지고 가 긁어 올려도 잉어가 집힐 때가 있었다. 지금도 장마철에는 그 향수에 젖어 강태공들이 장대비를 마다치 않고 낚시를 던지는 모습이 보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