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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에 불 지피기    
글쓴이 : 안정랑    12-06-18 20:21    조회 : 3,992
 KBS TV의 휴일 저녁 프로그램인《해피 선데이》의 <남자의 자격>코너에서 청춘합창단 단원을 모집했다. 1960년 이전 출생자들에 한해 노래에 소양이 있으면서 열정과 조화, 다양한 캐릭터와 남다른 사연들을 가진 이들에게 오디션 참가자격이 주어지는데, 40명의 단원을 뽑는데 무려 3천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오디션 참가자들은 저마다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가지고 있어 그 사연들을 하나씩 풀어 놓을 때마다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심사위원들 마저도 숙연해지거나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종종 연출되었다.
차츰 시력을 잃어가는 전직 시립합창단원인 남자와 성악을 전공했으나 남편의 반대로 40여 년간을 참고 살았다는 60대 여성, 간과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 입원치료중인 50대 남성도 있었다. 또 죽기 전에 무대에 꼭 서보고 싶어 용기를 냈다는 93세 할머니와 폐암투병 중인 아내를 위해 노래하는 남편, 외아들을 저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노래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노부부 등 묻어두었던, 혹은 묻혀 있던 열정과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으로 사연은 넘쳐났다.
 
  아나톨 프랑스는 “만약 내가 신이었다면 나는 청춘을 인생의 끝에 배치했을 것”이라 했는데, 청춘합창단원 응시자들은 신의 힘을 빌 필요도 없이 ‘청춘’이란 단어 하나에 그들의 남은 인생에 다시 불을 지피고 그 불꽃을 후회 없이 피워 보고픈 강렬한 욕망들을 가지고 오디션장으로 모여 들었다.
 
 잃어버린 기억으로 십 수 년 째 미망의 길에서 헤매고 계신 시어머니는 이젠 아무리 불러도 눈을 맞추지 않으며 억지로 얼굴을 돌려 시선을 마주해도 공허한 눈빛만 보낸다. 그런 어머님의 눈길을 잡는 방법은 딱 한 가지, 노래다. “어머니, 우리 노래할까요?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너를 바라볼 수 있다면…”하고 내가 선창을 하면 그 다음부터는 어머님이 가사를 이어가면서 노래를 부른다. 모든 기억을 다 내려놓았음에도 노래가사는 한자도 틀리지 않고 끝까지 부르신다.
 결혼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시동생의 혼사가 있어 울산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예의 노래자랑이 벌어졌다. 마이크가 돌아돌아 뒷자리 쪽으로 갔을 때 기막히게 고운 노랫소리가 들리기에 목을 길게 빼고 돌아봤더니 놀랍게도 시어머님이었다. 각이 진 얼굴에 쌍꺼풀이 없는 작은 눈과 약간 돌출된 광대뼈, 큰 몸피로 인해 언뜻 남자 같은 용모가 비치는 어머님한테서 어찌 저리 고운 소리가 날까, 나는 믿기지가 않아 노래가 끝날 때까지 보고 또 보다가 사회를 맡고 있던 동장아저씨에게 딱 걸렸다. “자, 명카수 시어머니에 이어 며느리의 노래를 듣겠습니다.”하더니 내게 마이크를 안겨줬다.
“나한테 노래시키는 사람은 죽이고 싶을 만큼 밉다.”라고 과격한 반응을 보이던 친구가 있었다. 그 얘기를 들을 땐 뭘 그럴 것까지야? 했지만 마이크가 내 손에 쥐어지는 순간엔 그 친구의 처지가 백퍼센트 공감이 갔다. 다행이도 모전자전으로 가수 못지않게 노래를 잘 부르는 남편의 도움으로 그 순간을 어물쩡 넘겼지만 그때부터 어머님의 노래는 내 몸에 박혀있는 티눈처럼 일상이기도, 아픔이기도 하면서 함께 살아오고 있다.
 
 어머니는 어떤 노래건 한 번 들으면 거의 정확하게 따라 부를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고 당신의 취미생활 중 가장 열심히, 오래 다녔던 것도 노래교실이었다. 노래교실에서 신곡 악보를 받은 날이면 내게 슬쩍 내밀면서 피아노반주를 해주었으면 하고 은근히 종용했고, 미리 연습해서 뽐내시려는 저의를 알기에 엉터리반주지만 기꺼이 노래연습을 돕곤 했다.
그러나 그 빛나는 노래솜씨가 매양 듣기 좋았던 것만은 아니어서 때때로 내 가슴에 멍자욱을 남기기도 했다.
 
 1995년 추석날, 차례를 지내고 가족들은 집에 마련된 노래방기계로 한바탕 신나게 놀고 있었지만 나는 병석의 아버지가 걱정이 돼서 친정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한참을 울려도 응답이 없는 전화에 불길한 예감은 커져만 갔고, 오빠들의 휴대폰으로 겨우 통화가 되었을 땐 아버지는 병원에 막 입원을 한 상태였다. 당장 부산엘 가야할지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사정을 알 리 없는 어머님은 상기된 목소리로 “야야, 니도 빨리 들어와서 노래하고 놀자, 얼마나 재미있는데.”하며 채근하셨다. “좀 있다가요” 라고 마뜩찮은 목소리로 대답했더니 “하이고, 그래, 니는 고상해서 뽕짝같은 거 안좋아하제, 큰며느리가 돼갖고 이런 때는 식구들 기분 좀 맞춰주고 해야지.” 하시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시끌벅적한 방으로 다시 들어가셨다.
그날 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장례를 치루고 돌아온 나는 한동안 어머님의 노래를 듣지 않으려 애를 썼다.
 
 어머님은 여전히 노래를 잘 불렀고, 즐겨 불렀으며 신곡이 나오면 가사를 적어가며 열심히 익혀서 어딜 가나 명가수로서의 자리를 돈독히 했기에 기억력에 장애가 있으리라고는 손톱만치도 의심하지를 못했다. 치매발병 초기엔 장소를 기억하는데 어려움을 겪더니 차츰 음식 만들기에 혼란이 오고, 급기야는 환상과 환청에 시달리며 일상생활이 힘겨워졌다.
어머님도 나도 뒤죽박죽이던 그 시기에 와병 중이던 친정엄마를 우리집으로 모셔와 통원치료를 받게 했다. 엄마는 운동신경이 조금씩 죽어가는 ‘소뇌위축증’을 앓고 있었는데, 언어 기능이 서서히 마비되면서 정확한 발음을 못하게 되자 아예 말문을 닫아버렸다. 엄마의 말문을 트이게 하려고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 현철의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게 했다. “손 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다행이도 노래를 조금씩 따라하면서 얘기도 몇 마디 주고받을 수 있게 되어 무척이나 기뻐했는데,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머님은 노랫소리만 들리면 득달같이 방에서 나와 엄마 옆에 앉아 그 절창 같은 솜씨를 뽐내고, 어머님의 노랫소리에 풀이 죽은 엄마는 다시 말문을 닫고 말았다. 속상한 마음에 내가 눈물을 보이면 천진한 눈빛으로 어머님은 말했다. “와 우노, 내 노래가 슬프나?”
 이제 어머님과 나 사이에 ‘말’이란 공허한 울림일 뿐,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노래다. 내가 앞부분을 부르면 나머지는 어머님이 완성시킨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이어지는 노랫소리는 장르를 불문하고 몽땅 다 구슬프다. 그래도 노래하는 동안에 나와 마주한 시선은 살아있고, 그 눈엔 하고픈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음을 나는 느낀다.
 
<청춘합창단>방송이 거듭될수록 화면에 비친 합창단원들의 모습은 자신감이 충만하고 활력이 넘치며 즐거워죽겠단 표정들이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만약 몇 년만 일찍 이런 프로그램이 나왔더라면, 그래서 어머님이 청춘합창단에 동참해서 지나간 청춘의 못다 피운 꽃 한 송이 마저 피울 수 있었다면 지금 어머님 기억의 끝자락엔 행복의 열매가 맺혀있지 않을까.
세상에서 가장 슬픈 단어가 ‘만약’이라는데, 이 ‘만약’이 티눈처럼 가슴 한 켠에 콕 박혀 수시로 날 아프게 한다.
 
2011년  《책과 인생》12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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