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드름 따다 입에 물고
문경자
아침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귀찮았다. 추운 겨울 10여리나 되는 학교에 갈 일은 꿈만 같았다.
어머니는 밥을 하고 할아버지는 쇠죽을 끓이고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은 살아있는 괴물처럼 느껴진다. 어른들은 춥지도 않은가 보다.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부엌에서는 무쇠 솥 뚜껑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하얀 김이 무럭무럭 올라가는 것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온다. 그러면 다시 뚜껑을 닫고 불을 떼어 뜸을 잘 들이면 어른들 먹기에 알맞은 밥이 된다. 작은 솥에다 쌀 뜨물과 직접 갈은 들깨가루, 약간의 된장을 넣어서 시래기 국도 끓인다.
솜이불 속에서 얼굴을 묻은 채 엉덩이를 밖으로 내밀고 자는 척한다. 어머니가 샛문을 열고 “일어 나거라. 학교에 가야지” 라고 재촉 해야 엉덩이를 치켜 세우고 일어나는 척 이리저리 흔들며 자세를 취한다. 그러면 일어나는 줄 알고 문을 닫아 준다. 눈을 감고 이불 속에서 학교 가는 길을 생각하면 끔직하고 겁이 나기도 한다.
책보따리를 챙겨야 하고 찬물에 세수를 해야 된다는 생각만 해도 이불 속에 푹 파묻히고 싶어 진다. ‘이불아. 나 학교 가기 싫어, 너랑 같이 있고 싶어’.
어머니의 잔소리는 늘어만 가지만 꼼작하기 싫어 게으름을 피운다. 문을 열고 밥상이 들어 올 때쯤 눈을 뜨고 일어난다.
온 식구가 둘러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는다. 장독간에서 꺼내온 배추김치도 서릿발이 생겨있어 씹으면 사각사각 소리가나며 맛 있다. 동치미국에도 살얼음이 있어 입에 넣고 삼키면 목구멍이 시원해진다. 지금도 먹고 싶은 생각에 침이 고인다.
할아버지는 아랫채로 내려가서 쇠죽을 퍼서 소한테 준다. 소는 큰 눈을 멀뚱거리며 입으로 휘휘 저어서 식혀먹는다. 쇠죽을 퍼낸 무쇠 솥 안을 대충 헹군 뒤 몇 바가지의 찬물을 부어 따뜻하게 데운다. 그 물에는 지푸라기, 콩깍지도 떠다닌다. 손으로 물을 휘휘 저어 살살 피해가며 세수를 해도 지푸라기가 손 안에 들어와 얼굴을 할퀼 때가 있다. 그나마 데워진 물에 씻을 수 있어 다행스럽기도 하다.
온 가족이 수건을 쓰다 보면 물이 묻은 쪽에는 얼어서 얼굴을 닦으면 아플 때도 있다. 내 친구 집에는 수건이 귀해서 태극기로 얼굴 닦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동네 친구들과 같이 가기 위해서 골목 마다 다니며 친구의 이름을 부르면 약속이나 한 것 처럼 뛰어나온다. 제잘 거리며 부지런이 간다.
마을에서 제일 큰 은행나무는 잎을 다 떨구고 빈 몸으로 서서 우리들이 학교 가는 모습을 보며 잎이 돋아날 봄을 기다리고 있다.
집이 멀어지면서 뚝방으로 들어 선다. 물이 들어오지 않게 막아 놓은 곳인데 겨울에는 햇빛이 나면 따뜻하다. 그곳에는 나무를 하기 위해서 옆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불을 쬐고 있다. 학교 가다가 추위를 녹이기 위해서 그 사이로 들어가 불을 쬐는데 아저씨들은 학교 늦는다 고 걱정을 하며 밀어낸다. “째깨만 있다가 갈낍니더 예.” 하고 몸을 앞으로, 뒤로, 좌우로, 손, 얼굴, 발을 데운다. 발을 말리다 보면 낙하산 양말 타는 냄새가 나는 것도 모르고 있다가 살갗에 닿을 때 발을 치켜들고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른들은 말을 안 들으니 그렇게 된다고 큰소리로 웃는다. 간밤에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꿰매주었는데 집에 가면 혼나게 생겼다. 얼었다 녹아서 그런지 친구들 볼이 복숭아 같다.
산 그늘에 얼음이 녹지 않은 신작로 길은 한 번 미끄러지면 무서운 곳이다. 반질반질한 길을 밟고 가다 보면 고무신이 달라 붙어서 잘 떨어지지도 않는다. 서로 잡아 당겨 주며 웃는다. 그 얼굴들은 씻기는 씻었는데 꾀죄죄한 모습은 어쩔 수 없다. 마주 보면 그 모습이 거울을 보는 것 같고 지난 밤 쇠죽 솥 앞에서 돌멩이로 때를 벗긴 손등은 터서 갈라지고 골고루 때가 벗겨지지 않아 흉하게 보이기도 하고, 가늘게 피도 맺혀있다. 찌릿하고 가시에 찔린 것처럼 아프지만 예사로 여긴다. 그 손으로 큰 바위에 붙어 있는 고드름을 따서 입에 넣고 부셔 먹는다. 입안이 얼얼하지만 아주 깨끗한 생수를 먹는 것과 같다. 큰 것을 들고 칼 싸움도 하고 옷 속에 넣는 장난도 한다. 한 아이한테 집중 공격을 해서 울리기도 하고 배위에 걸터앉아 싸움도 하지만 금방 또 친하게 된다.
교실에 들어서면 우리가 주워온 장작으로 난로를 피워 서로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끼기도 한다. 지나고보면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그때는 매서운 추위에 떨면서 좋은 친구들과 지냈던 일이 꿈만 같다.
내 마음속에 있는 얼굴들이 지금도 웃어 주고 있다.
2010년 2월 에세이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