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의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바다에선 등대의 불빛이 반짝인다. 새해 첫날 고운 해를 맞으려 희뿌옇게 피어오르는 안개를 헤치고 소금 냄새 짙은 바닷가로 나갔다. 여름이면 베이글을 반으로 갈라 크림치즈를 한껏 바른 샌드위치와 커피 그리고 통발을 싸들고 발걸음 하던 존슨비치의 낚시터다.
뉴욕 후라싱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가면 모래언덕이 마치 사막인양 길게 도로 양쪽으로 펼쳐진다. 해변에는 산딸기가 익어가고 해당화가 무리지어 빨갛게 피어 있는 바다가 보인다. 태양이 이글이글 뜨거운 여름에는 통발을 바다에 드리우면 게가 제 발로 들어오니 그 재미에 푹 빠져서 무슨 연례행사처럼 존슨비치로 달려갔다.
게를 잡겠다고 낚시터에 나오면 쪽빛의 풍취는 덤으로 주어진 혜택이다. 친구이듯 끼룩끼룩 울며 다가오는 갈매기는 미끼로 쓸 생선을 낚아챌 요량이거나 여차하면 그것이 주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바다는 홍도숙의 <<구름너머 다포리>>에서 “그저 쪽빛 하나로 족하다.”를 떠올리게 한다
절창의 문장인지라 소금 바람소리 들리는 바닷가에서“아, 쪽빛!”하며 주절거린다. 그리고 깊은 숨을 한번 들이쉬고 내뱉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강태공마냥 시간을 낚는 낚시를 드리우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낭만을 불러오는 낚시터에 마련된 나무다리 위에 적당한 장소를 골라 미니 의자를 벌려 놓고 고등어를 열 토막을 친다. 그것을 잘게 조각을 낸 미끼를 집어넣은 통발 다섯 개에 줄을 늘어트려 힘껏 바다 멀리 던진다.
30분 정도 딴 짓을 하다가 통발을 들어 올리면 여지없이 복어 새끼들이랑 서너 마리의 게가 집게를 벌리고 버둥거린다. 배를 빵빵하게 만든 입잉 아증맞은 새끼 복어는 다시 바다로 돌려보낸다. 대형 아이스박스에다 게를 가득 채워서 집으로 돌아온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 아이스박스를 열면 게들이 부글부글 하얀 거품을 게워내며 큰 집게 다리를 붙들고 줄줄이 딸려 나온다.
절반은 매운탕이나 찌개용이니 다리는 떼어 버린 몸통만 반으로 잘라서 냉동에 그 즉시 집어넣는다. 나머지 남은 게는 깨끗하게 씻어서 찜통에 넣고 쪄낸다. 바다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면 그때 찜통을 열고 빨갛게 익은 게를 꺼내 먹으면 간이 딱 맞는 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어서 "아, 맛있다. 바로 이 맛이야!"를 연발하며 앉은 자리에서 한 사람이 열 마리씩 뜯어 먹는 건 기본이다.
게를 잡던 그 바닷가에서 우리처럼 햇님을 모시려고 곤달곤달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커피와 빵을 먹고 있다. 동포들이다. 서로 가벼운 목례를 한다. 이렇게 해맞이는 한국인에게만 있는 걸까? 우리 조상들은 해를 끔찍이도 우러렀다. 태양은 아버지요. 달은 어머니, 그 조화를 이루는 길상의 존재인 일월신을 섬겼다.
우리네야 해를 신으로 섬긴다기보다는 고국의 풍습을 좇는 것이다. 이국에서 고향산천을 그리는 방법 중 하나라서 새벽부터 빵에 커피를 챙기며 새해를 맞아 즐기는 것이다. 태양신 숭배사상은 동서양의 전통인가 보다. 잉카의 후예들이나 마야의 후손인 멕시코인도 새해가 되면 산위에 올라가 둥근 해를 향해 제사를 드렸다.
그 제를 드리기 3일 전부터 잉카의 왕은 여인을 멀리하고 옥수수만 먹고 카칸 잎만 씹는 금식을 한다. 제사를 드리는 이른 아침엔 궁전을 나와 식장으로 향한다. 인디오들은 왕을 경배한 후 그 뒤를 따라서 산으로 오른다. 정상에 도달할 무렵이면 황금 쟁반 같은 해가 솟아오른다. 제사장은 두 손을 들어 노래를 부르며 축문을 외우고 기악에 맞춰 화답하며 백성들은 해를 맞아들인다.
마야의 후손, 멕시코인들은 대형 피라미드 꼭대기 쇳덩어리에 손가락을 대면 새해의 정기를 받는다고 믿는다. 특히 칸쿤에 있는 치첸이차에 가파른 91계단의 쇠줄을 잡고 올라가면 달과 태양의 피라미드는 물론이며 많은 피라미드가 있단다. 킨토솔이라는 인디오 전설에 의하면 그곳에 있는 테오티우아칸의 피라미드 앞에서 산사람의 심장을 꺼내서 제사를 드렸다. 제물로 사람을 바친 그 집 가문은 명망이 있는 집으로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동서고금의 많은 사람들이 우러르는 햇님은 모든 생명체의 질서를 유지시킨다. 소망의 빛이다. 보고 깨닫게 하는 힘이다. 절망을 잘라먹는, 어두움을 부서트리는, 죄악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 만물에게 생명의 빛을 골고루 나눠주는 신적인 존재다. 그래서 피그미족과 부시맨에게 태양은 위대한 신의 눈이다. 그 눈으로 칠흑 같은 밤을 밝히니 시인들은 해를 노래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박두진의 <<해>>-
고운 해가 마음을 씻어 줄 것이다. 어둠을 살라 먹을 것이다. 아골 골짜기에서 벌어진 악을 소멸할 것이다.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게 할 것이다. 춤추게 할 것이다
신 새벽 벽두에 샌드위치와 따뜻한 커피의 맛과 감촉을 즐기노라니 어둠을 벗겨내고 빨간 머리를 디민 둥근 해가 수평선 위로 솟구치며 올라온다. 가슴을 열고 맞이하며 하얀 알갱이 속살을 드러낸 모래밭이 길게 누워있는 존슨비치에서 새해의 첫 페이지를 읽는다.
새벽안개를 헤치고 숨 가쁘게 달려 온 바닷가 낚시터의 나무다리 위에서 고운 해를 가슴바구니에 담는 것이다. 그 해를 가슴에 품고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누려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