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 나비 따라
문경자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정오의 봄 빛은 따뜻하다. 보리밥 한 그릇 말아 먹고 나니 심심하여 이웃집 숙이를 불러 쑥 캐러 가자야 하니 좋아라 했다.
예쁜 바구니 옆에 끼고 가다 보면 노랑 나비가 춤을 추며 우리에게 날개 짓하며 따라 오라고 한다. 노랑나비 한 마리는 가슴에 다 부치고 하는 노래가 생각난다.
가까운 논두렁 밭두렁에 앉아서 쑥을 캐며 조잘조잘 재미있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손을 부지런히 놀렸다. 왼손으로 쑥을 잡고 오른 손으로 뿌리를 자르니 쑥 향기가 퍼져나갔다. 쑥을 털어서 깨끗하게 하여 소쿠리에 담는다. 엄마에게 야무지게 캐왔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 더 깨끗하게 손질을 하여 소쿠리에 담았다.
개울가에 피어 있는 노란 개나리를 꺾어 머리에 꽂고 나비 잡는다고 촐랑거리다 쑥 담은 소쿠리를 안고 자빠져 다 쏟아 버리곤 했다. 예사로 있는 일이라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쑥은 햇빛에 시들어 소쿠리 속에 축 늘어져 누워있었다.
쑥을 캐다가 뛰어 다니며 맛있는 삐삐를 뽑아 손바닥에 놓고 살살 문질러 먹다가 보니 가시덤불 속에 여린 찔레 순이 ‘나 봐라’ 하고 몸을 내민다. 팔을 멀리 뻗어 찔레 순을 꺾어서 잎을 따내고 줄기에 붙은 껍질을 벗겨서 씹으며 내 눈은 나물이 어디에 많이 있는지를 살펴 보았다.
달래가 눈에 띄네. 된장국을 끓일 때 넣으면 봄의 향을 맡을 수 있다. 뿌리까지 길게 칼로 흙을 파서 뽑아 올린다. 동글동글 하얀 뿌리가 수염까지 달고 올라와 땅속에 사는 신령님 같았다. 달래는 향기가 있어 좋다. 줄기가 상하지 않게 돌돌 말아서 소쿠리 밑바닥에 가만히 넣어둔다.
해가 길어져 집에 가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아 쑥을 더 캐기로 하였다. 소쿠리에 있는 쑥을 묻기 위해 칼로 땅을 팠다. 커다란 구덩이에다 쑥을 넣고 흙으로 덮었다.
둥글게 봉까지 만들어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놓는다. 소쿠리를 덮어서 주문을 외운다. ‘쑥이 펄펄 살아 나게 해주소’ 하며 앞에다 열 십자를 긋는다. 침을 뱉고 부정이 타지 않게 해달라고 빈다. 숙이는 눈을 감고 엄마가 하는 그대로 흉내를 내며 중얼거린다. 웃음이 나와 배꼽을 잡고 뒹굴며 눈물이 나게 웃었다. 똑 같이 나란히 앉아 자기 영역을 표시하려고 소변으로 모양을 그리기 위해 엉덩이를 움직일 때마다 화가의 그림처럼 그려졌다. 내가 그린 그림을 기억하며 쑥을 캐러 간다.
저녁밥을 배불리 먹기 위해서는 많이 캐서 가지고 가야 한다. 너무 오래 앉아 있으니 그 일도 힘이 들었다. 잠깐 멈추고 버들피리를 만들기로 했다. 나무 줄기가 굵어도 안되고 너무 약해도 줄기가 힘이 없어 구멍이 난다. 알맞게 물이 오른 버들 가지를 꺾어서 손으로 비틀면 껍질이 돌아가면서 마지막에 분리가 된다. 하얀 속대는 버리고 입술에 닿는 껍질 바깥 부분을 칼로 벗겨 내고 불면 삐이이…하고 합창을 하며 재미있는 악기가 탄생한다. 입이 아플 정도로 불고 나니 겁이 덜컹 났다. 피리를 불면 뱀이 나온다던 어른들 말이 생각났다. 피리를 버리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뛰었다. 뱀이 따라 오는 것 같아 뒤 돌아 볼 겨를도 없었다.
양지 바른 언덕에 올라 한숨을 돌리고 보니 할미꽃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숙이가 “우리 할미꽃 노래 하자” 고 하며 꼬부라진 할미꽃을 보며 노래를 부른다. 합창으로 “뒷동산에 할미꽃/ 고개 숙인 할미꽃/ 천 만가지 꽃 중에/ 무슨 꽃이 못되어 할미꽃이 되었나.” 노래를 끝내고 우리는 파란 잔디 위에 누웠다. 하늘에 떠가는 하얀 구름을 본다. 어디로 갈까.
해가 지기 전에 묻어둔 쑥을 꺼내기 위해 옷을 털고 일어나 그곳으로 갔다. 그런데 영역 표시는 햇빛에 말라 자취도 없고 열 십자만 남아 있었다. 이리 저리 살펴 보아도 누구의 것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머리가 둔해서 금방 잊어버려 서로 바보들이라며 놀리곤 하였다.
숙이는 ‘내 자리다” 하고 손으로 흙을 파내기 시작한다. 대충 어림으로 찾아서 쑥이 보일 때까지 파 내려간다. 쑥이 보인다. 거짓말처럼 살아 있네. 자기가 묻어둔 쑥을 파내며 “와아 신난다, 엄청 많아 졌다.” 하며 낄낄 웃는다. 코까지 훌쩍 거리 소쿠리에 담는다. 해가 지기 전 머리에 이고 집으로 향해 갔다. 걸음이 빨라진다. 저녁 밥이 눈앞에 왔다 갔다 하였다.
“엄마 쑥 캐왔는 데예.” 하며 마루에 내려 놓으니 온 식구들이 함박 웃음으로 내려다 보며 할아버지는 “우리 깅자가 공부만 좀 잘하면 좋을긴데, 쑥은 많이 캐왔네.” 하시고는 웃으셨다. 공부를 잘 한다는 것보다 더 신이 났다.
밥 한 그릇 다 먹고 피곤해 방에 들어가 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노랑 나비를 따라 쑥 캐러 간다.
2012년 5월 합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