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가 먹고 싶은 아이
?
그 애는 늘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몇 차례 부르면 어쩌다 한 번쯤 대답을 했지만 쉴 새 없이 무언가 만지작거렸다. 동작이 굼뜨고 음감 또한 떨어져 노래인지 시조창인지 분간이 안 되었다. 그에 비해 계산은 빠르고 정확했다. 특히 예닐곱 줄쯤 되는 문장을 한 번만 읽어 주면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해내는 재주를 지녔었다.
아이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책상에 경호를 격리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일학년 때 담임선생의 하소연을 듣던 날은 울컥 짜증이 밀려왔었다. 자폐아의 담임에서 벗어나자마자 또다시 발달장애를 지닌 아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며칠 동안 고민을 하다가 키 순서대로 뒤쪽에 앉혔다. 앞으로 벌어질 사건에서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고 싶었다.
“뻐꾸기가 먹고 싶어요.”
고개를 들어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 애였다.
“박쥐가 더 맛있어, 인마!”
내 말에 아이는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친구들을 툭툭 치기까지 했다.
박쥐가 맛있어, 수업시간 내내 담임의 말투를 흉내 내던 아이는 그 후 내게 자주 다가왔다. 질문을 할 때는 내 눈을 보라 했더니 잠깐 마주치는 순간조차 힘이 드는지 녀석의 볼은 풍선을 부는 것처럼 부풀어 시뻘게지곤 했다. 발달장애아의 치료교육방법을 나는 알지 못했다. 자폐아의 공통적 증후는 눈 맞춤을 꺼려하고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는 특성이 있다는 정도의 내용에 밑줄을 긋는 것이 고작이었다.
경호가 깔깔거리며 교실 바닥에 제 몸을 팽개치듯 철퍼덕 누워버렸다. 일으키려고 했지만 워낙 덩치가 커서 힘에 부쳤다. 알아볼 수 없이 꼬부라진 글씨를 보며 “들어는 봤나? 불타는 오징어체라고!” 연극 대사하듯 경호에게 바짝 내 얼굴을 들이밀며 놀린 것이 화근이었다. 진정이 되길 기다리는데 벌떡 일어서더니 이번엔 ‘불타는 오징어’라고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공책을 든 채 꺅꺅대며 달아나는 아이들로 교실은 금세 난장판이 되었고 녀석이 자기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나는 대책 없이 기다려야 했다.
다음 날 경호가 숙제 공책을 내밀었다. 큼직한 글씨가 또박또박 씌어 있었다. 손가락이 부러질 뻔했단다. 글씨 잘 쓰는 애가 좋더라, 거의 혼잣말처럼 했더니 녀석은 아예 내 귀에다 대고 “나도 선생님이 좋아요”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애들에게 하루 한 차례 웃어주겠다던 나와의 약속은 학교행사와 잡무에 파묻혀 까맣게 잊혀졌다. 그 날도 급히 써내야 할 서류를 누군가 코앞에 놓고 갔다. 교탁 앞에 한 줄로 서서 개별지도를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나중에 하자, 외치고 보니 하필 다음 차례가 경호였다. 씨근벌떡대며 들어가나 싶었는데 우당탕퉁탕 소리가 났다. 제 옆에 있던 책꽂이를 쓰러뜨려 사방으로 흩어진 책들을 발로 걷어차고 있었다. 제대로 해 놓으란 내 말은 더 멀리 퉁겼다. 쫓아가서 경호의 책상을 엎어버렸다. 서성거리던 애들이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 화면처럼 그대로 멈추고 소리가 끊겼다. 놀란 눈들이 이어서 벌어질 일을 기다렸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내 성질은 왜 항상 석유불 같을까. 저 애가 밖으로 튀어 나가면 큰일인데, 일났네.
“좋아한다고? 천만에 말씀이다 이놈아, 이별이야. 잘 가라고!”
벽 쪽으로 돌아서서 꼼짝 안하던 녀석이 갑자기 우는 목소리를 냈다.
“치우면 되잖아요.”
책상과 책꽂이는 제 자리를 찾아갔지만 아이와는 한동안 눈을 마주칠 수 없게 되었다.
전교에 한둘 있을 정도였던 발달장애아의 수가 점차 늘어나더니 경호를 맡던 해는 옆 반에도, 그 옆 반에도 자폐아들이 있었다. 사이렌 소리를 지속적으로 내기도 하고, 앵무새처럼 교사의 말을 줄곧 흉내 내며 하루 종일 신문지를 구기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담임들은 진을 뺐다. 특수교육연수를 받은 담당교사가 있었으나 그들도 자폐에 관해서는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하는 비전문가였을 뿐이었다. 경호는 자폐증과 흡사한 아스퍼거 장애에 가까운 행동양상을 많이 보였다.
1944년 오스트리아 의사가 처음 발표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아스퍼거 장애는 자폐증처럼 평생 지속된다. 정확한 치료법은 없으나 자폐증보다는 예후가 좋고, 언어 능력이 높은 경우엔 장애가 노출되지 않을 수도 있어 부모와 교사는 아동의 사회적 부적응을 고집스런 행동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어휘력이 좋고 다독증이었던 경호는 점심메뉴가 바뀐다던가, 일기예보가 틀리면 머리가 빠개질 것 같다고 소리를 질렀다.
본능이 시키는 대로라지만 남의 둥지에 제 알을 낳아놓는 뻐꾸기는 밉다. 마음이 아픈 친구의 정서를 설명하고 타일렀지만 매일 싸움이 일어났다. 책이 찢겨지거나 가방이 쓰레기통에 버려져 속이 상한 자녀를 달래기 어렵다는 어머니들의 항의가 뒤따랐다. 그들 앞에서 나는 한껏 자애로운 표정을 지었으나 기실은 친구를 사귀는 데 서투르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던 그 애에게 버럭 화를 낼 때가 많았었다. 사건을 가장 빠르게 해결하는 방법은 ‘무조건 봐주기’다. 경호가 집어던진 크레파스를 주워 담으며 대꾸 한 마디 못하고 눈물을 떨어뜨리던 짝꿍을 볼 때면 혹시 우리 둘이 둥지 밖으로 친구들을 밀어내는 것은 아닐까, 자기 세계에 갇힌 아이를 끌어내려고 다른 아이의 마음에 빗장을 걸게 했다면 그걸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까,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나르는 임시어미새의 힘겨운 날갯짓을 떠올리곤 했다. 특수학급에 보내기엔 증상이 경미하고, 보편적 정서와는 어울리기 쉽지 않은 학생을 가르치는 일반학급에 대한 배려는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선생과 학생이 함께 지쳐갈 뿐이다.
학교생활을 즐거워한다며 그 애 어머니는 고마워했지만 나는 점차 어수선해져 갔다. 한바탕 난리를 치를 때마다 맨 정신으로는 못 가르치겠으니 소주라도 한 잔씩 마신 후에 교실에 들어가야겠노라, 동료들에게 우스갯말을 던지며 스스로를 달랬다. 불안정한 학생을 가르치면서 심리상담 한 번 받아보지 못하는 교사의 감정상태 또한 병증이다. 그 해는 유난히 동료들과도 사소한 일에 지루한 언쟁이 끊이지 않았다. 장애를 치유하기는커녕 나 또한 마음을 닫아버리는 병에 전염되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정신과 주치의가 없었던 우리는 사랑과 이별을 밥 먹듯이 하면서, 눈을 마주쳤다가 말다가 변덕을 떨며 일 년을 지냈다.
화가 나면 먹던 음식을 책상 위에 뱉어 놓던 아이.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아무 때나 고함을 질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던 아이.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잡으려면 구덩이를 깊게 파고 기다려야 한다던 아이. 오월이 지날 무렵, 등산길에 뻐꾸기 소리가 들리는 날은 그 애가 불쑥 다녀간다. 사람들에게 눈인사는 잘 하는지, 축구할 때 친구들이 가끔씩이라도 끼워주는지, 지금도 뻐꾸기를 먹고 싶어 하는지…….
-2007년 <<에세이플러스>>5월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