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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한 때는 얼리어댑터였다(한국산문 2011년 10월호, 선수필 2011년 제35호)    
글쓴이 : 최화경    12-09-02 14:11    조회 : 3,083
나도 한 때는 얼리어댑터였다
 
 
신형 스마트폰이 출시되던 시점이었다. 엄지와 검지로 화면을 늘였다 줄였다하는 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부럽게만 여겼던 나도 그 때까지 가장 신형이었지만 이제 곧 구형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스마트폰을 드디어 갖게 되었던 것이다. 남은 약정기간까지의 위약금을 물어야 하지만 2, 3년으로 나눠보니 몇 푼 들지 않는 것 같아 간단히 사용법을 익힌 후 설레는 마음으로 핸드폰을 교체하고 대리점을 나섰다.
집으로 오기까지 몇 통의 전화에 대처해야만 했던 나는 거의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동안 잘 해왔던 번호 저장이나 약속 스케줄 메모, 대화 중에 검색해야할 번호나 일정들을 찾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화 중 문자판을 어떻게 찾아야할지, 그리고 왜 그렇게 옆의 것들이 잘 건드려 지는지 짜증이 나서 핸드폰을 내던져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이걸 개발한 사람도 있는데 사용법을 배우고 알아가기도 벅찬 나 자신의 무능함에 화가 나기도 했고 앞으로 이런 세상에서 계속 살아내야 할 나 자신의 삶이 두려워져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했다.
정보통신의 기술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들이 계속 계발되고 있는 이 시대엔 개발자와 생산자의 시공간을 뛰어넘는 네트웍으로 인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곧바로 돈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전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하여 부자의 대열에 합류할 것 같은 사람들이 생산자를 만나지 못해 아이디어가 시대에 뒤떨어지게 되거나 결국은 사장되는 경우가 많았다. 유복하게 잘 살았던 대학 동창의 아버지께서 핸드 브레이크를 개발하여 많은 국내외 상을 받으셨다. 곧 제품으로 출시될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주요 소비대상이 될 장애인들의 대우가 취약했던 국내에선 수익성에 부딪쳐 의외로 생산업체를 찾기 어려웠다. 게다가 해외에서도 제휴사를 찾지 못하고 상만 받는 것으로 끝났다. 그렇게 되자 그동안 제품개발에 쏟아 부었던 자금의 압박으로 그 친구네 가정형편이 오히려 더 어려워졌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이디어가 곧 돈이 되는 요즘 경쟁사와의 스카웃 전쟁이 나날이 치열해 지자 우수한 인재를 스카웃하기 위해 회사를 통째로 사버린 후 기업은 폐기 처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유행하는 신종 기업인수 형태를 인수(acquire)와 고용(hire)을 합친 '어크 -하이어(acq-hire;인수고용)'라고 한단다. 그렇게 회사를 하나 살만큼의 비용을 지불해 서라도 스카웃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정말 궁금하다. 페이스 북에 가입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씩 휘어진 단어 활자체를 보이는 대로 자판으로 두드리라는 명령들을 실행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알고 보면 페이스북측이 돈을 받고 의뢰받은 브리태니카(Britanika) 사전의 알아보기 힘든 컴퓨터상의 원본 일부분을 고쳐 쓰는 일이라고 한다. 전 세계의 페이스북 가입자들이 무료로 그 일을 대신해 주고 있는 것이다.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서도, 그리고 가입자들은 그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도 페이스 북이 돈을 벌도록 해주는 일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 전 세계의 페이스 북 가입자들을 활용하자는 것도 분명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세계적인 권위자나 석학들의 검수로 내용이 정리된 백과사전의 대명사였던 브리태니커가 이미 e-book으로 전환되어 그 명성에 걸맞게 전 세계의 12만이 애용하고 있다. 워낙 발 빠르게 e-book으로 전환 했기에 여전히 부동의 1위인 백과사전일 줄 알았던 브리태니커는 생각과는 달리 위키피디아(Wikipedia)라는 새로운 운영방식의 백과사전에 그 순위를 빼앗기고 말았다. 검색할 때 마다 사용자가 비용을 지불해야하는 브리태니커와는 달리 누구나 내용을 쓸 수도 있고 삭제를 할 수도 있는 방식의 위키피디아 인터넷 백과사전이 언제부터인가 262만이나 사용하는 1위의 백과사전이 된 것이다.
위키피디아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따로 고용하지 않고도 소비자 모두가 운영자인 형태의 특이한 백과사전이다. 하루에도 수십개의 신종어가 탄생되며 새로운 지식이 범람하는 시대에 사는 소비자들은 그렇게 사용자들이 주체가 되어 매분, 초마다 새로운 백과사전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소비자들에 의해 신속하게 수정 보완되고 있기에 사용자들은 검색 비용도 따로 지불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 장난으로 엉터리 내용을 써 놓아도 다시 바로 잡는 글이 올라와 지워지는 데는 평균 1.7분 밖에 안 걸리기에 사전 내용의 질도 상위 수준으로 늘 유지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오랜 시간 자신이 쌓아온 전문지식을 무보수로 쏟아 붓는 자발적 참여자들에 의해 이렇게 위키피디아는 저절로 운영되어진다. 지적재산의 권리측면에서 볼 때 기존의 생각대로라면 절대로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이런 기이한 신 풍속들은 기성세대들에겐 무척 낯선 풍경들이다.
이 시대는 각 분야에 있어서 창의성이 뛰어난 자들에 의해 나날이 더욱 더 눈부시게 발전되어가고 있다. 나는 날마다 탄생되는 신기술의 신제품을 개발한 개발자의 명석함에 탄복하고 또한 그것들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이 시대의 얼리어댑터(early adapter;신제품의 조기 사용자)들에게 또 한 번 놀란다. 나도 분명 어느 시점까진 얼리어댑터였었다. 작동법은 간단하면서도 제품의 기능은 혁신적인데 젊은이들은 비싸서 쉽게 구입하기 어려운 것? 혹시 그런 것이 있어서 그들보다 내가 좀 더 공격적인 소비를 한다면 아직까지도 나는 얼리어댑터일 순 있겠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다지 창의적이지도 못하고 생산적인 나이가 아니어서 소비가 점점 부담스러워 지는 그저 세상 따라가기가 버거운 쉰 세대요, 의무와 권리의 불균형에 혼란스러워하는 끼인 세대일 뿐이다. 게다가 나의 동연배들이나 연장자들조차 새로운 발명품들을 멋지게 활용하며 살아가는 것을 볼 때면 나 혼자만 문명과 점점 단절된 채 비문명인으로 전락되어버릴 것 같은 위기감까지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도 살짝 두렵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문명이 발달 된 건지 따라가기도 벅찬 나는 한편으론 그런 것들의 편리성에 대한 수혜자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의 거대한 괴물에게 쫓기는 피해자이다. 그래도 세상에 뒤지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번번이 나의 무능함에 절감하면서도 체면 불구하고 나보다 앞선 얼리어댑터들에게 부지런히 조언을 청해 본다. 그래서 "지난 번에도 알려줬었잖아∼∼"가 요즘 내가 제일 자주 듣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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