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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순국 2011년 12월호)    
글쓴이 : 최화경    12-09-02 14:33    조회 : 3,191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긴 여정에 대한 경비라고 하기엔 상식적으로 너무 싼 금액이었다. 어떻게 한려수도와 해금강과 외도를 다녀오는 여행경비가 단돈 삼만 오천 원이란 말인가. 이번 여행을 먼저 제안한 금 집사님은 인삼 집 등 몇 곳을 경유해야 하는 상품구매 옵션여행이라 경비가 저렴하다고 했다. 전에도 한 번 다녀오셨다며 물건은 안 사도 괜찮다고 해서 우린 아무 것도 사지 말자고 의기투합하고 여행을 떠났다.
 
 
관광버스에 오른 후 한 시간쯤 지나자 가이드는 우리에게 아침 식사를 준다고 하였다. 그는 밥을 퍼줄 자원봉사자를 찾았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 그래도 우리는 교회에서 각종 봉사로 다져졌기에 출입이 용이한 복도 쪽에 앉았던 내가 아무래도 나가야 할 것 같았다. 결국 모두 낯선 일행으로 구성된 그 관광버스에서 나는 그들을 위해 찰밥을 펐다.
스물 하나, 스물 둘, 스물 셋...이제 그만 푸라고 해서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 이미 배식된 뷔페 접시에 따끈한 찰밥과 반찬 네 가지가 담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유난히 깔끔을 떨던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내 반찬을 집어 먹는 친구들의 젓가락이 반찬에 닿는 것이 비위가 약해 늘 고역이었다. 게다가 남의 집 반찬은 절대 입에 대질 않았기에 내 반찬이 동이 나면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도시락밥을 남겼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2, 3인분의 반찬을 싸 주셨다. 그런 내가 위생도 염려되고 고급스러워 보이지도 않는 반찬으로 구성된 그 찰밥 접시를 앞에 놓고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어찌어찌 밥을 먹고는 커피와 다른 간식들을 먹으며 우린 이야기꽃을 피웠다. 앞에서 가이드는 조금 있다가 도착할 우리나라의 유명제약회사에서 파는 약들을 우리가 사줘야만 하는 이유를 장황히 설명했다. 그런 종류의 여행에 대한 경험 유?무를 묻고는 초행자들을 약간 걱정해 주면서도 연신 많이 사주실 것을 호소했다. 우린 속으로 어떤 바보들이 그런 약을 마구 살까 생각하면서 아무 것도 안 사리라 다짐하며 막 당도한 제약회사의 계단을 올랐다.
우리의 신뢰를 사기 위해 말단 사원이 아닌 중진급 간부가 나와서 비타 음료를 돌리며 우리 모두의 긴장의 끈을 늦췄다. 아무리 그래도 사나 봐라 하며 여전히 경계를 하면서 나는 한 모금 씩 음료수를 삼켰다.
그는 이번에 새로 개발된 신약의 제품 개발 동기와 효능 등에 대해 설명하면서 효능을 입증하는 여러 방송자료를 틀어대며 우리를 설득해 갔다. 백문이 불여일견인지라 손발 저림과 고지혈, 동맥경화 등에 탁월한 제품효과를 시청각으로 보여주기 위해 그는 우리 앞에서 직접 설탕, 프림이 믹스된 커피를 한 잔 타 놓고 제품을 두어 방울 떨어뜨렸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지방성분의 프림이 몽글몽글 뭉쳐지며 컵 위로 둥둥 뜨는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의 땀과 소변과 대변으로 배출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나 존재하는 부작용은 무엇일까? 아무 것도 모르고 속아서 살 어떤 어리숙한 이들을 위해 나는 아무도 하지 않는 질문을 날카롭게 해댔다.
 
전날 여행 간다고 부지런을 떨며 집을 치우고 무리를 한 탓에 나는 제품 설명을 듣는 중에도 손목이 시큰거렸고 평소에 그들의 설명처럼 난 이미 콜레스테롤이 좀 높다고 진단 받았고 손발 저림도 있는 상태였다.
한 달 치 엑기스 앰플 30개 한 박스가 삼십 삼 만원인데 우리에겐 반 박스씩 더 준다고 한다. 게다가 일시불 결제나 현금이면 무려 두 배를 준다고 하니 우린 침을 삼키며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오십이 다 되도록 내가 언제 나먹자고 보약이라도 챙긴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서러움도 약간 밀려오며 '그래, 삼 개월 할부면 한 달에 십여만 원인데 나 자신을 위해 그 돈도 못쓰랴. 이참에 두꺼워진 복부지방도 좀 빼보자'라며 나 스스로를 설득했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 가지 증상을 설명하는데 사십대 이상이면 어느 것 하나로도 증상이 걸리지 않는 사람이 없기에 모두들 사고 싶어 하는 눈치다. 게다가 반 값 아닌가. 그리고 우리 여행의 스폰서 회사라니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말이다.
나이 많으신 어르신 부부는 벌써 사는 것으로 결정을 했는지 제품박스를 이미 손에 들고 계셨다. 점점 파격적인 조건으로 준다는 제안에 닫힌 마음이 열려지며 여기저기서 일행들이 카드를 하나씩 꺼내들었다. 이쯤 되니 마음 약한 나는 아까 밥을 푸며 반찬을 나누던 동료로서의 가이드 얼굴이 오버랩 되며 버스에서 사정까지 했던 그 말을 뿌리치기 힘들어졌다.
"집사님, 제일 파격적인 조건의 두 박스 부부세트를 사서 반 씩 나눌까요?" 내가 먼저 제안했다. "그럼 그래 볼까."
남들보다 노련한 우린 직접 이고 지고 가는 일행과 달리 무거우니 택배로 보내달라며 나란히 삼십삼 만원씩을 결제했다. 일시불 결제라서 두 배의 약을 받게 되는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카드는 금집사님과 달리 삼 개월 무이자 할부혜택까지 된다고 하니 나는 더욱 기분 좋게 버스에 올라탔다. 기대 외의 실적을 올려서인지 가이드의 얼굴은 미소로 희색이 만면했고 우리에 대한 고마움의 인사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또 똑같은 찰밥을 먹게 될 줄 알았던 점심은 약간의 스케줄 변경으로 주문진의 매운탕 집에서 현지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뭐 훌륭한 식사였다고 평하긴 좀 그랬다.
 
식사 후 배를 타고 해금강을 돌며 십자굴 관광도 하며 우린 즐거워했다. 우리가 덕이 많아서 날씨가 쾌청하다는 선장의 칭찬까지 들으니 우린 스스로가 대견하여 서로 흐믓해 하면서 배에서 파는 오징어를 굽지도 않은 채 질겅거렸다.
외도에 도착한 우리는 대단한 볼거리를 잔뜩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뜨거운 태양의 위력 앞에 금방 무기력해졌고 관광보다는 몸을 숨길 그늘만을 간절히 찾으면서 온몸이 땀으로 범벅된 채 고생스런 외도 일주를 간신히 해냈다.
다시 배를 타고 육지에 도착한 우리는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버스를 탔다. 졸며 이야기하며 장장 5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렸다. 오전에 매상을 얼마나 올렸는지 우리를 태운 관광열차는 올라갈 때 꼭 들려야 한다던 인삼집도 패스한 채 서울로 내달렸다.
촐촐해진 오후 8시쯤 환상의 콤비인 나와 가이드는 오전 보다 더 숙련되어진 손놀림으로 저녁 배식을 서둘렀다. 찰밥이 너무 맛있다는 금 집사님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김치와 꾸역꾸역 무리해서 먹었더니 어느새 약간의 체기가 생긴 것 같았다.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공짜 여행에 속아서 옥 매트를 산 것이 걱정되어 자식 앞에 돌아갈 일이 걱정되는 이 땅의 노인들의 바로 그 심정이 되었다. 그래서 체한 것일까. 평소보다 크게 빨딱대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약간의 두려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난 옳은 결정을 한 것일까. 그냥 들고 올 걸 괜히 택배로 보내달라고 했다는 때늦은 후회까지 밀려오며 이제는 물건이 무사히 오기는 할는지 까지 걱정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불안감으로 나는 고단한 몸을 뒤척이며 잠을 청했다. 그 야릇한 여행은 혹시 꿈이었을까 현실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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