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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웅큼의 유혹(시에 2011년 겨울 24호)    
글쓴이 : 최화경    12-09-02 14:38    조회 : 3,140
한웅큼의 유혹
최 화경
 
 
 
 
어느 집안의 가보로 애지중지하던 값 비싼 백자에 어느 날 호기심 많은 어린 딸이 한 손을 집어넣어 보았다. 그런데 주둥이가 좁은 그 백자에 들어간 손이 빠지질 않는 것이다. 엄마, 아빠 온 가족이 딸의 손을 빼내보려고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손목을 비틀어도 보고 나중엔 기름을 부어도 보고 몇 시간을 백자와 씨름을 해도 딸의 손이 빠지질 않게 되자 하는 수 없이 부모는 결국 그 비싼 백자를 깨트리게 되었다. 막상 백자를 깨고 보니 딸의 손은 주먹이 꽉 쥐어져 있었다. 단지 그 주먹 안에는 겨우 동전 몇 푼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 번 움켜쥐면 욕심 때문에 주먹을 펴지 않는 습성을 이용하여 원숭이를 잡는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학창시절에 떠들쳐 보았던 영어자습서의 지문에 아프리카 원숭이에 대한 글이 있었다. 원주민들은 원숭이를 잡기위해 주둥이가 좁은 무겁고 긴 호리병 안에 원숭이가 좋아 하는 열매들을 넣어 놓는다고 한다. 그 호리병은 열매를 움켜쥐는 한 절대로 손을 뺄 수 없을 만큼 주둥이가 비좁게 되어 있다. 주먹만 펴면 손을 꺼낼 수 있지만 한주먹 가득 움켜쥔 열매를 포기할 수 없기에 원숭이는 결국 포획꾼에게 잡힌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전세자금을 가지고 난생 처음 금융권들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늘 남편이 하던 것이라 무심하게 20여년을 살았는데 드디어 내게도 얼마간의 경영권이 허락되었다. 일종의 시험대라고나 할까. 이걸 잘 경영해내지 못하면 도로 경영권을 박탈당하게 될 터라 보란 듯이 멋지게 잘 운용해야만 했다.
ELS, 자문형 랩어카운트, 펀드, 주식... 상담하는 곳 마다 포트폴리오를 짜주었다. 장, 중, 단기 자금으로 분산하고 안전투자와 위험을 감수하는 고수익의 적극투자로 비율을 안배하라는 충고들을 아끼지 않았다.
그 동안 배포 큰 남편과 살아온 덕에 처음에는 나도 배짱을 가지고 위험부담이 있는 것에 겁도 없이 일부를 덜퍼덕 투자했다. 게다가 또 다른 좋은 상품이 나오면 연락해달라고 까지 하고 왔다. 나머지 금액으로는 그 외에도 몇 가지 고수익 상품에 더 투자해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즈음 꿈을 꾸게 되었다. 그 꿈은 우리 집 개 샌디를 통한 경고였다. 꿈에서 나는개를 동반하고 모이는 일종의 동호회 같은 모임에 남편과 함께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초대한 또 다른 개 동호회 모임에 나는 남편과 상의도 없이 이번엔 혼자서 샌디만 데리고 나갔는데 사자 두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서 샌디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고 나는 겁에 질려서 꿈을 깼다.
다음날 아무래도 불길하여 며칠 전의 투자 상품을 해약하러 갔다. 금시초문의 불리한 조항들에 동의하겠다고 한 내 사인이 들어있는 투자 약정서를 들여다보고 나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그 땐 왜 그런 것들을 자세히 살피지 못했을까. 중간에 해약을 하면 원금손실을 이만저만 보는 것이 아니어서 불안해도 끝까지 끌고 갈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다. 만기까지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할 생각을 하니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여윳돈도 아니고 전세금이라 다시 원금을 돌려줘야하는 제법 큰 액수인데 이를 어째야 될까 하는 걱정과 근심이 나를 계속 짓눌렀다.
 
올 연초에 2,000선을 넘나들던 코스피 지수가 얼마 전부터 1,700선으로 떨어지며 많은 투자자들이 난관에 부딪혔다는 소식이 연일 보도 되고 있다. 주식은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하면 기업성장도 돕고 투자자 자신도 손해 보지 않지만 단기 시세차익을 목표로만 투자하는 것은 손실위험이 높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개인은 매도 타이밍을 제 때에 잡지 못해서 같은 종목을 사 놓고도 희비가 엇갈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묻어둘 수 있는 여유자금이 아닌 대출이나 바로 원금을 마련해야할 단기 자금들은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단다. 나는 오랜 기간 전세를 놓을 계획이 아니기에 단기자금에 속하므로 이와 같은 주가변동의 낙폭은 원금손실과 직결되는 민감한 변수이다. 아무래도 위험한 것 같아 더욱 걱정이 앞섰다.
몇 년 전에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에서 비롯된 금융 위기의 여파로 우리나라 펀드투자자들이 많은 손해를 보았었다. 가정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내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친구들이 그때 많은 손실로 밤잠을 못 이루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었다. 지금쯤은 모두 복구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 기간 모두들 불안에 떨며 생지옥을 경험한 것이 기억난다.
내 소유의 재산이 없던 것이 그 동안 내게 얼마나 단잠을 주었었는지를 절감했다. 놀란 가슴에 나머지 금액은 고수익에 대한 욕심을 접고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쥐꼬리만한 금리의 안전한 정기예금에 얌전히 모셔 놓았다.
불길한 꿈을 꾸게 되어 불안하게 시간을 보내기 전에는 나 자신의 투자성향을 잘 알지 못했다. 오로지 고수익에만 현혹되어 섣불리 투자했던 결정을 후회하면서 비로소 내 투자성향이 매우 보수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무엇이 이익일지에 대한 계산 보다는 자신의 투자성향에 맞게 투자를 해야만 근심이 없는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달은 것이다. 이런 보수적인 투자 성향으로 인해 종국에는 전전긍긍하면서 깊은 후회와 자책 속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걸 간과한 채 고수익만 욕심냈던 나는 그제서야 한웅큼의 욕심에 대한 유혹을 떨치지 못해 포획되는 아프리카의 원숭이가 바로 내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소녀에겐 값비싼 백자의 가치보다도 자신의 손에 꼭 쥐고 있던 동전 몇 닢이 더 소중했기에 몇 시간의 소동에도 그 손을 펼 수 없었던 것도 어찌보면 여태까지의 내 모습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별로 중요하거나 가치 있는 것도 아닌 하잘 것 없는 편협한 가치체계나 어떤 신념으로 나 스스로의 틀에 갇혀 살아온 것 같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된 부모, 형제, 가족, 친구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 지를 생각하니 점점 내 몸이 작아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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