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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난 자, 가게 하라(책과 인생 2012년 2월호)    
글쓴이 : 최화경    12-09-02 14:45    조회 : 3,153
떠난 자, 가게 하라
최 화경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아무도 동승시키지 않은 채 차량의 흐름을 타고 제법 빠른 속도로 운전하며 터널 속을 달려야할 때 나는 가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출구의 끝이 보이지 않기에 더 무섭고 두렵고 어두운 긴 터널. 중간에 무섭고 두렵다고 해서 멈춰 설 수는 없다. 혼자 출발했기에 목적지까지도 혼자다. 죽음의 길도 그렇게 아무도 동승해 줄 수 없기에 철저히 오직 나 혼자 가야만 하는 두렵고 떨리는 외로운 길일게다.
 
 
슬프다, 슬프다 해도 자식 잃은 슬픔보다 큰 것이 없다는데 어린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내던 어떤 이의 이야기를 통해 떠난 자는 가게 하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어린 딸을 잃은 슬픔으로 날마다 울며 지내던 어떤 엄마가 하루는 울다 지쳐 잠을 자던 중에 꿈같기도, 환상 같기도 한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렇게도 그리던 딸을 그 꿈속에서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모두 예쁜 옷을 입고 깔깔거리고 즐겁게 놀고 있는데 자신의 딸만은 그 무리에 끼어 있지 못했다. 딸은 슬픈 표정을 짓고 혼자 있었고 게다가 등에는 혼자서 지기엔 너무 힘들어 보이는 무거운 주전자를 등에 메고 쓸쓸하고 외롭게 서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딸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속상했던 엄마는 딸을 보며 "너도 가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으렴." 하고 타일렀지만 슬픈 표정의 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엄마, 난 갈 수가 없어. 나도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싶지만 엄마가 울 때마다 난 이 주전자에 엄마의 눈물을 담아야 하거든."
깜짝 놀란 엄마는 "아가야, 어서 가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아라. 엄마가 다시는 울지 않으마. 네가 행복하길 바라는데 엄마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그렇게 슬프게 살고 있었다니 너무 미안하다."
그 날 이후로 그 엄마는 절대로 울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스라엘의 어느 전시실에는 '주전자를 멘 소녀'라는 제목의 그림이 걸려 있다고 한다.
 
 
결혼 후에 친부모처럼 의지했던 시외할머니와의 사별 때가 생각난다. 그 때 나는 정말 많이 울었다. 남편의 외할머니지만 내 외할머니 같았던 분. 어렵고 서툴던 시댁 살이 기간에 언제나 나를 사랑해 주시고 품어주시고 가르쳐주셨던 분이다. 평생을 당신이 헌신해 주었던 자식들의 마음씀에 섭섭함을 느끼시며 서러워하면서도 시외할머니는 언제나 넉넉한 사랑과 베풂을 실천하셨던 분이다.
그 할머니의 고단했던 삶이 마감되던 날, 할머니와의 모든 추억들이 오버랩 되며 장례식장에서 나는 앞으로 의지할 곳 없이 살아가야할 내 결혼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더 많이 울었다. 그렇게 나는 내 설움과 두려움을 할머니에 대한 슬픔으로 투사시켰던 것이다. 어쩌면 떠난 할머니에 대한 애통함보다 남겨진 내 삶에 대한 걱정이 앞섰는지도 모르겠다.
 
 
터널 출구의 환한 빛이 보이기 시작하면 아직 목적지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치 내 여정이 끝난 것처럼 그제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죽음으로 가는 그 길도 그러하리라. 크리스찬인 나는 최종 목적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지만 죽음 그 자체는 실로 무섭고 두렵다. 우리를 앞서서 떠난 자들도 못다 한 것들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뒤로한 채 끝이 안보이는 터널과 같은 그 길을 홀로 총총히 떠나야만 했을 것이다.
 
 
앞서 떠난 그들 못지않게 우리들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남겨진 자들로서 아직은 더 살아내야 할 낯선 시간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은 내 죽음에 어떻게 대처할까. 아마도 나는 가족들이 너무 빨리 나를 잊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세상을 헛살았다고 실망할지 모르겠다. 내 존재감이 그렇게 미미했단 말인가. 그렇다고 죽음의 충격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매일 두문불출한 채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지낸다면 이 또한 얼마나 슬플까. 가끔은 나를 추억해 주되 남겨진 자들로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저항하지 않고 의연하게 잘 살아 준다면 적어도 남겨진 식구들에 대해서만큼은 안심을 하고 나는 마음 편히 죽음 이후의 삶을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대학동창의 부음을 접했다. 오십 초반. 죽기엔 너무 이른 나이인데 많은 사연을 뒤로 한 채 그녀는 가족들 곁을 떠났다. 나도 이제 서서히 그녀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을 흡수할 마음의 쿠션을 준비해야만 할 것 같다. 떠난 친구를 마음 편히 가게 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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