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화경
인생을 저글링에 비유한 말에 난 공감한다. 일, 친구, 가족, 건강, 영혼이라는 다섯 개의 공들 중에서 어느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고 공중에서 계속 돌리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한 인생이라는 것이다. 저글링은 서커스 공연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묘기이다. 다섯 개도 넘는 공들을 차례대로 실수 없이 던지고 받기를 반복하는 것을 볼 때면 난 내 인생의 저글링을 잘 하고 있는지 반문해보곤 한다.
서커스는 중세 유럽의 왕이나 귀족 앞에서 재롱을 부리던 난쟁이 광대들이 동물을 다룰 줄 아는 집시들과 어울려 함께 공연을 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서커스에서 난쟁이들이 사라졌다. 어려서부터 고도로 훈련받은 미소년 소녀들이 그 일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중국여행 중에 서커스를 관람했다. 원구 안에서 벌어졌던 광란의 오토바이 질주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처음에 쇠파이프로 엮어진 원구 안으로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한 명 들어갔다. 오토바이는 큰 굉음과 함께 쌍 라이트를 번쩍이며 원심력을 이용하여 계속해서 원구 안을 돌았다. 첫 번째 오토바이가 일정 속도로 정착되면 두 번째 오토바이가 들어간다. 아슬아슬 서로 교차될 것 같은 우려감 속에 그들은 각자 자신의 궤도를 돌았다. 그 다음 세 번째 오토바이가 들어가면 관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저절로 숨을 죽인다. 그 비좁은 원구에서 서로 부딪히지 않길 바라는 건 무리였다.
세 대의 위험한 질주를 보기에도 벅찬데 또 한 대가 더 들어간다. 충돌할 것이 뻔했기에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다. 그런데 웬걸 부릉부릉 한 대가 더 나타나더니 원구의 출입문 앞에 서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슬아슬한 질주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절묘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 대의 미친 듯한 질주 때문에 아드레날린의 과다분비로 난 그 순간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릴이 어느 선을 넘으면서부터는 묘한 내성이 생긴 듯 나도 모르게 될 대로 되라는 강심장이 되어갔다.
꽤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될 무렵 원구의 문이 열리고 마지막에 들어간 오토바이부터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차례로 나왔다. 처음에 들어갔던 베테랑이 맨 마지막에 나왔는데 그가 원구 밖에서 평형감각을 찾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건 묘기였다. 알고보니 그들은 모두 소년들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매 회 목숨을 건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밖에도 중국소녀 기예단원들이 턱을 받치고 몸을 삼단으로 접는 광경이나, 악력을 이용하여 회전 고리를 입에 물고 공중 회전하는 장면 등은 감탄이 아니라 마치 몬도가네(Mondo Cane)의 기괴하고 엽기적인 풍습을 보는 것 같은 잔인함을 느꼈다. 그녀들에게 그것을 해야만 한다고 학대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그 현장에 있었던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중국의 기예단원들은 모두 고아들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어렵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고아인가 보다'라고 한단다. 일 년에 수백 명이 훈련을 받아 배출되지만 내가 본 것 같은 대표적인 공연에 뽑히는 일급단원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이다. 일단 뽑히기만 하면 비록 사회주의 체제이긴 하지만 고된 훈련에 대한 보상이 될 만 한 돈은 벌 수 있다고 한다.
어느 날 TV에서 새끼를 안고 있는 어미 원숭이의 목에 쇠사슬을 묶어 좁은 철창에 가둬둔 장면을 보았다. 잠시 후 새끼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어미 원숭이를 조련사는 가차 없이 끌어내 곧 시작될 공연을 위해 자전거 타기 연습을 시켰다. 새끼를 안고 있으니 두 손이 자유롭지 못한 그녀는 자연히 자전거를 제대로 탈 수 없었다. 몇 바퀴 건성으로 페달을 밟고는 자전거에서 뛰어 내려버렸고 조련사는 그녀를 호되게 때렸다. 그리고 강제로 새끼를 떼어 놓고 기어이 연습을 끝까지 다 시키는 것이었다. 어미의 마음은 온통 새끼한테 가 있지만 매가 무서워 결국은 그 연습을 다 해 낸다. 그래야만 새끼와 같은 우리에 넣어주기 때문이다. 서커스단의 동물들에게는 그렇게 임신이나 출산도 배려 받을 수 있는 명분이 되지 못했다.
새끼 코끼리 조련사는 어물전에서 생선을 골라줄 때 쓰는 쇠꼬챙이 같이 생긴 '따거'로 코끼리의 표피 중에서 가장 얇다는 귓 뒤를 사정없이 찍어댄다. 새끼 코끼리의 귀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그 새끼는 따거의 공포를 피하기 위해 뒷발을 들어 올리고 앞발로 온 체중을 지탱하는 묘기를 연습한다. 어미 코끼리는 저만치서 자신이 걸어왔던 험난한 길을 똑같이 걷게 될 새끼가 안쓰러운 듯 간혹 소리 내어 울고 있다. 어미는 새끼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 표현 해 보지만 결국은 그저 바라볼 뿐이다. 동물 서커스단의 새끼들은 계속 서커스단으로 길러진다고 한다. 신분의 굴레는 그렇게 세습되고 있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 때문에 칭찬과 먹이 보상만 해주면 되는 줄 알았던 돌고래들도 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돌고래들은 머리가 영리하고 대체로 온순하지만 얼마 전엔 쇼 중에 관람객이 보는 앞에서 조련사를 물어 죽이는 끔찍한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친밀하게 교감하며 훈련과 공연을 반복해왔던 자신의 부모 같은 조련사를 물어 죽인 것이다. 억압된 분노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어느 날 폭발해버린 것이다.
인간은 20hz에서 20khz정도의 음파를 감지할 수 있지만 돌고래는 75hz에서 150khz에 걸친 대단한 수중음파 탐지 능력을 갖고 있다. 동종끼리 늘 음파로 교신하는 돌고래를 쇼를 위해 시멘트 수조 속에 가둬놓고 십 수 년을 공연하게 한 것은 순전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다.
돌고래 조련사로 수십 년을 활동했던 미국의 릭 오배리는 지금은 돌고래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돌고래들을 훈련시키고 통제해 왔기에 그들이 평소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늘 위장약과 신경안정제를 먹여야 하기에 일반 돌고래의 평균수명은 80세이지만 공연하는 돌고래들은 40년 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는 모든 공연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인간들이 더 이상 동물들의 쇼를 보지 않겠다고 결단해 주기만 한다면 앞으로 동물들이 받아야 할 학대는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호소했다.
여행의 옵션상품으로 일정에 잡혀있기에 나는 특별한 의식을 갖지 않고 중국 기예단의 서커스 공연을 관람했었다. 동물 쇼를 비롯한 그와 같은 공연들은 패키지 여행상품으로 세계 각국의 관광객을 상대로 지금처럼 계속 펼쳐질 것이다. 누군가의 돈벌이를 위해 인간이든 동물이든 무의식적 반사작용조차 통제받아야만 하는 극한의 공연들은 나 같은 무심한 관객의 박수가 있는 한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