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할머니가 부도(婦道)를 타이르는 답장을 보내오자 숙덕 정전하신 할머니의 외손녀로서, 경계하고 하교하신대로 잘 참고 기다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할머니를 안심시키는 여섯 번째 편지를 보낸다.
그래놓고는 열 며칠도 못 버티고 그녀는 사는 것에 지쳤고 괴로워 죽고 싶으나 모진 게 목숨이라 슬프다며 장문의 일곱 번째 편지를 쓰고 만다.
그 호탕하고 의연하며 범사에 초연하던 남편이 남산 밑 숲을 등진 곳에 황진이와 살림을 차려 꿈속같이 함께 산다고 했다.
만석선사, 화담선생, 어느 명문가의 선비, 벽계수 등이 그 요물에게 현혹되어 파멸되고 망신을 산 예를 나열하며 누구든 손아귀에만 들면 농락을 하는 구미호라고 황진이를 절하시킨다. 하지만 시누이가 시앗을 보았을 땐 절곡하던 시어머니조차도 천생연분이라며 ‘송도집’ 황진이를 끼고돌아 남편의 배반보다 더한 배신감을 그녀에게 안겨준다. "체체하고 습습하고 상냥하고 온 그런 기집이 천하에 있겠느냐."고 시어머니의 칭찬이 늘어지는 것은 그녀가 시집 와 이십년 가깝도록 해서 이골이 난 남편의 뒷바라지, 시어른 모시는 것까지도 방탕기녀 출신 요물 송도집이 그녀 못지않게 잘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제법 법도까지 챙겨 남편을 자주 본가로 보내 머물게 해주니 살림 차리기 전보다 오히려 외박이 줄어들었다. 그런 모든 것이 그녀를 더 초라하고 보잘것없게 했다. 그렇게 사리 밝고 투기 없고 체체한 시앗에 비해 뭐 하나 나을 것이 없다는 자격지심으로 그녀는 점점 시들어 간다. 거기에 보태 그녀를 아예 천길 나락에 꽂아 넣어 버리는 사건이 생긴다.
집에 돌아와 사랑에 누워있는 남편에게 주려고 잣죽쟁반을 들고 사랑채에 갔다가 절절한 정과 사나이 막중한 모든 것을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 던진 듯한 창을 가만하게 부르는 남편의 노랫소리를 문밖에서 듣게 된다. 그녀는 억겁 암흑지옥에 빠져드는 듯 처참해져 잣죽쟁반을 다시 들고 안채로 돌아와 쓰러지고 만다. 시앗 본 후 처음으로 깊은 잠에 빠졌다고 했다. 이 깊은 잠이란 그야말로 모든 걸 내려놓고 현실에 항복하겠다는 포기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그런 후, 투심에 불타던 아수라를 비키고 미움의 야차를 멀리하고 초열에서 빠져나와 자신이 살아갈 길을 찾겠다고 다짐하는 말을 끝으로 삼년동안 편지를 쓰지 않는다.
여덟 번째 편지는 그녀의 아들 준행의 혼사를 알리는 청첩장이었다.
연이어 그 다음 달, 마지막 아홉 번째의 편지를 보낸다. 너무나 뛰어난 송도집 진이의 자질과 겨눌 기력이 없어 절망에 빠졌었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작가는 이 마지막 편지에서 시앗 황진이보다 오히려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을 일깨워 주어 그녀를 부축해 일으켜 세워준다.
마음을 암담하게 던져버리고 살았더니 사람들에게 듣게 된 현숙하다는 칭송, 둘째 외숙이 평안감찰사에 제수되는 등 가흥으로 홍복을 누리는 할머니처럼의 노후, 아들 며느리의 효도에 꿈같은 행복을 누리고 있다한 자복, 본처이기에 누릴 수 있는 이씨가문 조상님의 보살핌, 이렇듯 시앗은 가질 수 없는 많은 것을 가졌지 않느냐 말해준다. 물론 시앗을 본 아내의 투기심 때문에 힘들긴 하겠지만 그것조차도 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시앗 당사자 황진이 입으로 종년 오묵이에게 토설하게 하는 쾌거를 보여준다.
“아녀자는 일부종사가 제일이니라. 좋은 사내 만나 아들 낳고 딸 낳고 길이 직혀 살아라.”
하여 그녀는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나 ‘진정 인생은 이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먹으며 사는 것인가 하나이다.’란 말로 자위하며 편지의 끝을 맺는다.
남편과 ‘시앗’ 황진이의 사랑 때문에, 투기가 칠거지악이던 중세 풍속의 심규에서 가슴이 한으로 응어리져 스스로 아수라가 되고 야차가 되어 몸부림치는 ‘이사종의 아내’. 켜켜 솔직하고 절절한 그녀의 편지를 읽노라니 그저 같이 가슴이 미어터져 나도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둘헤 낼 수밖에 없었다.
어디 수백 년 전 그 시대에만 ‘이사종의 아내’가 있었겠는가. 요즈음 우리 사회는 처지와 상관없이 참 쉽게 만나고 쉽게 사랑하고 헤어지는 풍조가 만연하다. 누구나 내가 하는 사랑이 우선 중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혹여 다른 ‘이사종의 아내’에게 내가 모르는 상처를 주는 건 아닌가 하는 경각심도 한번쯤 가질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누군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초라해지고 자격지심에 투기하는 마음이 소란해져 힘이 들 때면 작가가 일으켜 세워준 마지막 편지의 ‘이사종의 아내’를 돌이켜 보고, 잊고 있던 내가 가진 많은 것에 대해 깨우쳐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렇듯 소외되어 그늘에 묻혀있는 사람들의 숙명적인 모습들과 안에서 울부짖는 한을 섬세하고 치밀하게 묘사하여 인간적 심중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솜씨는 한무숙작가를 따라갈 사람이 없겠다는 생각을 내내 하며, 재차 삼차 작품을 읽던 둘훼 낸 밤 허리는 ‘이사종의 아내’의 월명추야와 같이 참 길고도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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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중
이 민의 ‘한마님전 상서’는 누구나 잘아는 조선명기 황진이의 연인 이사종의 아내의 편지를 통해 그들의 애틋하고 열정적인 사랑의 그늘에 감춰진 아내의 한과 설움을 (그때까지 그 누구도 눈길주지 않았던) 보듬어 펼쳤던 작가의 작의와 전언을 명석하게 받아들이며 잘 이해하고자 한 글로서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고 문장또한 유려하고 거침이 없다. 작품소개와 작의, 그리고 그 작품이 마음에 일으킨 파문과 여운, 성찰 들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글’로서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숙고끝에 이민의 ‘한마님전 상서’를 대상으로, 진연후의 ‘저마다 죽음을 안고 산다’를 우수상으로 그리고 정병삼, 유수연, 김보애의 글들을 각기 가작으로 선정하였다. 성실히 읽고 깊이 있는 독후감을 쓰신 다섯분께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