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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손동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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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은    
글쓴이 : 손동숙    12-10-28 18:06    조회 : 4,671
                                         가을은
 
 
    가을은 귀뚜라미 소리로 시작된다. 종류도 다양하여 왕귀뚜라미는 첼로 소리를 내고 작은 녀석들은 비올라나 바이올린 소리를 낸다. 귀뚜라미는 날개를 서로 비벼서 소리를 내며 순수 진동수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귀뚤귀뚤‘하며 단순한 소리를 내는 것처럼 보이나 복잡한 음향 교신 체계를 가졌다. 귀뚜라미는 종류마다 서로 교신할 수 있도록 특색있는 소리를 지녔음이 밝혀졌다. 음의 높고 낮음이나 진동의 폭과 주기에 따라 다른 정보를 전달한다. 위급할 때에는 단순히 떨리는 소리에서부터 서로 간격이 다른 찍찍 소리와 찌르륵 하는 떨리는 소리까지를 짧은 주기로 복잡한 소리를 낸다고 한다. 어쨌든 귀뚜라미는 아무렇게나 우는 게 아니며 소리 속에 신호가 담겨져 있다고 하니 나름 대단한 소통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이 종일 내는 소리가 음악적으로 들린 것도 그 때문일까?
    
     지인이 사는 조치원, 그곳에서 듣던 가을의 소리가 그립다. 사마귀, 방아깨비, 갈색여치, 귀뚜라미 등 각종 풀벌레들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공간을 가득 메우며 대자연의 오케스트라는 연주를 시작한다. 보이고 들리는 것 모두가 그저 아름다움이고 경이롭다.
     가을은 곧 단감처럼 붉게 여물고 푸른 잎들은 바람결에 단풍을 피우고자 부단한 몸짓을 할 때 쯤 오랫동안 미루어왔던 편지를 쓰려한다. 어릴 때같이 연필에 침 발라가며 꾹 꾹 눌러쓰지는 않더라도 ‘누군가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하는 노랫말처럼 친구나 가까운 사람에게 사연을 전하리라. 연필하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초등학생 때 앞집 살던 자경이는 늘 내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언니가 둘인 그 앤 가지런히 깎은 연필과 예쁜 필통, 여러 종류의 문구류를 가지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동화책도 많아 가끔 빌려 보았지만 가장 부러웠던 건 동시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는 빼어난 재주였다. 가을이면 늘 자경이의 노트엔 동시와 그림으로 가을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가을은 따사로운 햇살이 좋다. 과일가게 안으로 햇살이 살짝 들어앉으면 과일들의 오묘한 색의 조화로움에 입이 벌어진다. 노랗고 빨갛고 보라색의 과일은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간다. 과일이 더 숙성되는 시간이다.
     가을은 여행의 계절이다. 오래된 기억 속에 칠 공주 여인네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그들은 무엇이든 두려운 게 없었다. 여행 중 길을 가다 막걸리도 나란히 마시며 수다를 떤다. ‘우리는 칠 공주‘라고 외치던 나이든 아주머니들이 사랑스러웠다. 그저 바라보고 웃기만 했던 내가 기억저편에서 왜 그녀들을 기억해 냈을까. 그들의 용기가 부러웠고 그때 그녀들과 비슷한 나이로 들어서서 일게다.
     가을은 등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몇 년 전 북한산을 가족과 오르는데 중턱쯤에서 누군가 ‘자장면 시키신 분’하고 크게 외치는 소리에 그곳을 지나던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적이 있다. 지루한 걸음에 톡 쏘는 사이다 같은 웃음을 준 재치가 생각나면 슬며시 미소 짓는다.
 
     주전자에 물을 팔팔 끓인다. 찻잔에 커피향내가 그윽하다. 몰입의 시간이 필요하면 늘 음악을 틀어 놓는다. 삶 자체가 음악이며 그림이라는 생각에 머물며 인생의 희노애락을 잘 승화시켜 훗날 장조와 단조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음악이면 싶다.
     아직 놓아 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다. 빈손의 허전함을 못 견디기 때문이리라. 조급한 마음으로 과정에만 몰두하다 최종 목적지가 어디였는지 깜빡하는 경우도 많다. '시지프스'처럼 같은 일을 반복하고 또 후회한다. 가을엔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자신을 잘 관찰하려한다.
     천천히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싶다. “한 사람을 만나거든 그 사람이 너를 만난 순간에 느꼈던 것보다, 헤어지는 순간 더 행복함을 느끼게 하지 않고는 헤어지지 마라“ 는 마더 데레사의 말처럼은 힘들더라도.
     가을은 한껏 멋을 낸 여인네처럼 최선을 다해 치장하며 뽐낸 후 황금들판도 곧 가을걷이를 끝내고 다음 계절에 자리를 양보할 것이다. 이렇듯 상상은 생각을 앞질러 달려간다. 그리고 계절을 한 바퀴 더 돌아 단단하게 굵어진 내 나이테를 이젠 사랑하고 자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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