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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전문    
글쓴이 : 이민    12-11-06 22:11    조회 : 4,091
 
회전문
이 민
<시선> 2012. 여름호 게재
 
한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회전문에서 남자 하나가 급한 몸짓으로 튀어나왔다. 그가 급한 마음에 맞춰 돌리고 나왔는지 회전문이 빠르게 돌아갔다.
내 바로 앞에서 들어가려던 여자가 "아우! 난 무서워서 못 들어가겠어."라며 그 앞에 멈칫 서서는 쉽게 들어서질 못했다. 그런 그녀 바로 뒤에 붙어 서있자니 단체 줄넘기를 할 때가 문득 연상되었다. 줄이 땅 설주를 탁! 하고 칠 때부터 간격이 시작되어 줄 포곡선이 하늘에 똑바로 설 때가 최대치가 되는 그 사이로 뛰어 들어갈 요량에 숨으로 박자를 맞춰보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숨은 탁탁 뒤로 쉬어졌고 점점 허리만 뒤로 젖혀졌었다.
딱 그때와 같았다. 머뭇대고 서있는 그녀의 뒤에서 나는 단체 줄넘기의 다음 들어 갈 순번자인 양 그녀 뒤태의 숨 박자에 맞춰 내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녀가 작심한 듯 겨우 회전 원통 파이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나도 뒤 칸 파이로 얼른 뛰어 들어갔다. 종종 걸음으로 회전문을 벗어나는데 먼저 벗어난 그녀가 "난 이게 무서워."하고 재차 말했다.
나도 회전문이 두렵고 싫다. 기분이 나쁘다. 내가 걷던 보폭을 그대로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제가 간격을 벌려주는 속도에 맞춰 종종종 새 걸음 쳐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 간격의 기회도 빼앗아 가버려 그나마 들어설 수 없게 만든다.
사실은 그게 두려워서다. 백번을 드나들어도 들어설 때면 매번 처음인 양 난 그 간격의 기회가 두렵다. 설주와 회전날개가 만났다 벌어지는 그 간격으로 재빨리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가려다 급격히 그 간격이 붙어버리면 내 머리통이 끼어버릴 것만 같아 두렵다. 유년 어느 날의 천지가 돌던 그 어지러움이 되살아날 것 같아 두렵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오빠는 나와 연년생이다. 한 살 차이였지만 1월생이라 7살에 학교에 들어간 오빠는 5학년이었다.
하교하다가 보니 오빠가 운동장에 있는 놀이기구 '회전무대' 일명 '뺑뺑이' 위에서 그만 하라고 울부짖듯 소리치며 돌아가고 있었다. 아래에서는 나도 다 아는 오빠의 친구 세 명이 두 어깨가 빠져 '뺑뺑이'를 따라가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돌려대고 있었다.
나는 앞뒤 잴 것 없이 폭탄처럼 머리를 앞으로 향하고 달려가 오빠 친구 중 한 명을 들이받아 버렸다. "어이쿠!"하고 그 친구가 나가자빠졌다. 나자빠진 친구를 보더니 다른 녀석들도 돌리던 '뺑뺑이'에서 손을 떼었다.
오빠를 구하려면 '뺑뺑이'를 잡아 멈추게 해야 했으나 나보다 한 뼘씩은 큰 세 녀석이 어깨가 빠지게 돌리던 그것을 내가 무슨 수로 잡아 멈추겠는가. 얼마나 빨리 돌아가는지 '뺑뺑이' 가운데 축에 붙어있던 오빠의 하얘진 얼굴과 상고머리 뒤통수가 한 면에 다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급한 성미의 내가 '뺑뺑이' 위로 뛰어올라가려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사방에 한 개씩 있는 가는 기둥이 빨리 돌다보니 다 합쳐진 쇠기둥이 도는 것 같아 올라가다간 그 기둥에 부딪쳐 십리는 날아갈 것만 같았다.
방법은 하나, 친구 녀석들을 물고 늘어지는 것. 나는 그들의 얼굴을 다 뜯어놓을 기세로 손톱을 들이대며 "멈추게 해!" 하고 악다구니를 쳤다. 그러자 그 중 한 녀석이 "저 새끼가 먼저 하루 종일 돌려도 저는 끄떡없다고 했단 말이야! 어휴! 병신새끼!" 하며 몸으로 쇠기둥을 조금씩 부딪쳐 감속을 시켰다. 다른 두 녀석도 따라했다.
어느 정도 속도가 늦춰져 쇠기둥이 네 개의 가는 기둥으로 보이기에 나는 얼른 '뺑뺑이' 위로 뛰어 올라가 오빠를 부축했다. 오빠는 눈을 뜨지도 못했다. 꽉 감은 눈 꼬리부터 관자노리 방향으로 눈물이 스쳐 날아간 자국도 보였다.
팔을 부축해 오빠를 먼저 내리게 하고 내가 내리려 했을 때였다. 갑자기 '뺑뺑이'가 돌아갔다. 내가 머리로 들이 받은 녀석이 '뺑뺑이'를 돌리기 시작했고 나머지 두 녀석이 가세를 한 것이었다.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 오빠가 있던 그 자리로 얼른 가서 섰다. 그만 하라고 소리쳤지만 그렇게 그만 둘 녀석들이면 애초에 돌리지를 않았을 터였다.
내 몸은 '뺑뺑이'와 하나가 되어 돌아갔다. 오빠가 엎어져 있는 모습이 보이다가 학교 건물이 보이다가 빠르게 반복되더니 오빠가 학교 건물에 엎어진 것으로 보였다. 급기야 오빠가 엎어진 학교 건물이 동그랗게 안으로 휘더니 빠르게 내가 도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눈을 감았더니 더 어지러웠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에 힘을 주어 하늘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은 돌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웬걸. 이내 하늘이 깔때기 모양이 되더니 내 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놀라서 눈을 감고 고개를 어깨 밑으로 숙였다.
나를 구해준 건 오빠였다. 오빠 옷에다 하얀 토악질을 하는 걸로 천지 사방이 도는 어지러움에서 내려왔고 두 번 다시 그 근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세상의 모든 도는 것을 대하면 멀미가 올라왔다. 싫고 두려워하는 내심은 적개심을 만들어 저항하게 했다. 하물며 어느 사람이 어느 요직에 간 것을 두고 회전문 인사라고 시끄러우면 그 사람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으면서도 무조건 그 사람이 밉고 싫었다. 회전문 이용을 기피했을 것은 불문가지였다.
그래도 요즘은 어쩔 수 없이 회전문을 이용해야 하는 때가 많다.
대형 건물에 가면 거의 회전문이 출입을 통제한다. 한 방향으로만 회전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출입을 할 때는 사람들 간의 충돌 위험을 최소화시킬 수 있고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에너지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일반문은 가로대로 막아놓고 회전문만을 사용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잠깐의 시간에도 내 적개심은 회전문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으려는 다툼을 한다. 빠르게 돌던 것은 들어가기 전의 내 보폭에 맞게 붙잡아 늦추고 중앙에서 저절로 토해지지 않으려고 날개가 설주만 지나치면 내 의지로 얼른 빠져 나온다. 그랬었는데 아뿔싸.
그조차도 못하게 하고 지들의 의도대로만 하라고 일방적 지시를 내리는 회전문이 생겨나더니 여기저기 대부분 그렇게 바뀌었다. 손을 대면 자동으로 문이 멈춘다나?
더구나 회전 날개가 두세 개로 줄어들고 중간에서 꺾어지며 파이 공간을 넓혀서 한 몫에 많은 사람이 들어가게 변형 발전한 최신판 회전문이 많아졌다. 네 개의 회전 날개가 원을 4등분해준 파이 안으로 하나씩 들어가 도는데 익숙해진 고정관념으로 그것을 대했다가는 그 안에서 같은 보폭으로 걷던 동행자들에게 촌스러운 사람으로 찍히는 눈치가 날아온다. 가장 싫은 건 그 안에 갇혀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달게 먹혔다가 오도가도 못 하는 사이에 단물 빼앗기고 뱉어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하루 종일 돌려도 끄떡없을 것 같아 올라탔지만 타에 의해서 단물을 다 토해내고 내려온, 내 세상살이 중 어느 부분과 유사해서 피해의식으로 나만이 느끼는 강박이리라.
이래저래 무조건 제 의도만 고집하는 회전문이 싫다. 싫어도 내가 가려는 곳의 문이 그것밖에 없다면 어쩌랴. 그리로 가야할 밖에.
 
꼭 우리네 인생사 같다. 어쩌다 세상은 그까짓 드나드는 문 하나도 내손으로 맘대로 열고 닫지 못하게 변해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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