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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소금맛    
글쓴이 : 문경자    12-11-13 10:54    조회 : 4,958
깨소금 맛
문경자
 
참깨는 전체를 베어서 묶은 다음 끝을 위로 향하게 세워 놓고 볕에 말려서 종자를 털어 낸다.
요즈음은 중국산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보니 국산 참깨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두메 산골 어느 농부는 밭에 세워둔 깻단을 털 때 중국산 참깨를 뿌려놓고   사람들에게 속임수를 쓴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이 퍼져 나가기도 하였다. 이것이 현실이라 사람들은 국산 참깨라 믿고 먹는다고 하였다.
참깨를 털 때는 넓은 천 조각이나 홑이불 같은 것을 깔아 놓고 말릴 때와 반대로 끝이 아래로 향하게 해서 막대기로 살살 때려야 멀리 튀지 않고 그 자리에 떨어진다. 털어낸 참깨의 불순물은 버리고 다시 볕에 말린다.
처음에 턴 참깨는 토실토실한 것이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었다. 두 세 번 털다 보면 끝물은 쭉정이처럼 말라 보여 별로 이익이 나지 않는다. 
참깨를 털고 있는 농부의 검고 굵은 손 마디가 말해 주듯이 그렇게 깨소금 맛이 나는 아기자기한 재미와 정이 무르익어가는 삶은 아닌 것 같았다. 얼굴이 패인 주름살이며 약간의 찌그러진 눈, 허옇게 튼 입술이 마지못해 사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참깨를 터는 순간만큼은 깨가 쏟아지니 바로 그것이 깨소금 맛이 나는 인생이 아닐까 한다. 참깨의 꽃 말이 ‘기대하다’ 라는 말처럼 기대하는 만큼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름대로의 잣대를 재 보기도 하였다.
 
      산 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함께 턴다/보아 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매기질을 하지만/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 가고 싶은 젊은 나는/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참깨를
       털어 내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같다/한 번을 내리 쳐도 셀 수 없이/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도시에서 십 년을 가차이 살아본 나로선/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인지라/휘파람을 불어가며 몇 다발이고 연이어 털어댄다/사람도 아무곳
       에나 한 번만 기분 좋게 내리치면/참깨처럼 솨아솨아 쏟아지는 것들이/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정신 없이 털다가/”아가, 모가지까지 털어져선 안되느리라”
       할머니의 가엾어 하는 꾸중을 듣기도 하였다
                          김준태 <참깨를 털면서>   
        
참깨를 볶을 때는 큰 나무 주걱으로 쉴새 없이 골고루 휘저으며 따닥따닥 소리가 날 때까지 볶아야 한다. 볶인 참깨들은 깨 방정을 뜨는 사람들처럼 어디론가 까불며 멀리 튀어가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그렇게 볶은 깨를 잠깐 식혔다가 놋그릇에 담고 굵은 소금을 넣어 다듬이 방망이를 세워 콩콩 찧는다. 고소한 냄새가 코끝에 와 닿는다. 어머니는 깨끗하게 씻어 놓은 작은 단지에다 빻은 깨소금을 수저로 퍼서 넣었다. 그릇 밑 바닥에 남은 깨 가루라도 조금만 손가락에 묻혀 내 혀에다 묻혀주면 맛있게 먹을 텐데, 먹고 싶은 마음을 말로 할 수도 없었다. 마지막 남은 것을 다 넣고 난 다음 놋그릇 속에 손가락으로 싹 쓸어 모아 깨소금 단지 입구에 문질렀다. 그래도 조금은 남아 있겠지 하고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놋그릇 속을 보니 손이 지나간 사이에 줄이 그어져 있고 해를 받아 빛이 나고 있었다. 침만 꼴깍 삼키고 일어났다. 어머니는 아주 야무지게 뚜껑을 눌러 본다. 내가 보는 앞이라 손을 대거나 먹으면 혼이 난다는 것을 그렇게 암시를 주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그 귀한 깨소금 한 수저와 간장을 밥에다 넣고 비벼 먹으니 밥이 저절로 넘어가 버렸다. 고소한 맛이 몸 속에 퍼져나가 참깨 꽃이 피었는지 도톨도톨 손등 위에 솟았다. 깨 순이가 될 뻔하였다.
그날 저녁 어머니는 금방 눈치를 채고 나를 불러 혼을 냈다.  앞을 지나던 할아버지는 “그만 해라. 어린애가 뭘 안다.”고 하시며 며느리를 나무라셨다. 나는 속으로 ‘고소한 깨소금 맛이다’ 하고 슬쩍 그곳을 빠져 나왔다.
참깨 볶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집 가서 겪은 일이 떠오른다. 시 어머니께서 추석 명절에 쓸 참깨를 볶아라 고 하셨다. 많은 양의 참깨를 바가지에 담아 내 앞에 내밀었다. 물에 잘 씻어서 깨를 볶아야 한다고 하셨다. 바가지에 물을 조금 붓고 싹싹 문질러 씻은 후에 헹구기 위해 물을 많이 부으니 깨가 둥둥 떠올라 밖으로 넘쳐 흘렀다. 작은 것이라 주워 담을 수도 없고 혹시 들킬까 봐 큰일이었다. 얼른 다른 그릇으로 물을 부어 수채구멍으로 떠내려 보냈다.
깨를 촘촘한 체에다 바쳐 물기를 뺀 다음 부엌에 있는 무쇠 솥 안에 붓고 불을 약하게 하여 볶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잘 젖는다고 해도 노르스럼하게 볶기는 어려웠다. 아차 냄새가 예사롭지 않네, 빨리 퍼내야 하는데 마음은 급하고 바가지로 퍼내니 순식간에 색이 변하고 탄 내가 나기 시작하자 밖에서 일을 하고 계시던 시어머니께서 쫓아 들어 오셨지만 거의 반은 망쳐 버렸다. 나는 겁에 질려 내 마음이 깨알처럼 작아졌다.
다 퍼낸 것을 내 앞에 놓고 타버린 것을 다 주워 먹어라 하고는 밖으로 나가 버리셨다. 눈물을 머금고 그것을 한 개씩 주워 먹고 있었다. 시킨 데로 하고 있으니 답답한 시어머니는 내가 들고 바가지를 확 뺏어 가버렸다. 볶은 참깨를 송편 만들 때 소로 넣었다. 다 만들어진 것을 솥 안에 넣고 찐 송편을 꺼내 참기름에 발라서 잘 담아 놓으라고 하시고는 방으로 들어 가셨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것을 보니 송편이 잘 쪄졌다는 생각을 하였다. 시어머님께 잘 했다는 칭찬을 해주시면 좋겠다. 그러면 기쁨이 머리를 헤치고 올라가는 저 하얀 김처럼 시집살이도 훨훨 피어나지 않을 까 하는 기대를 하였다. 솥 뚜껑을 열고 한 개씩 꺼내다 보니 송편이 갈라지고 속에 넣은 깨가 보였다. 나는 걱정이 되어 눈물이 나오려는데 꾹 참았다.  혼이 날까 두려워 갈라진 뜨거운 송편을 입안에 넣고 이리저리 굴리면서 넘기려는 찰나에 “아가, 잘 익었나.” 하시며 샛문을 여는 소리에 송편이 그대로 넘어가 직사 할 뻔 하였다.
 시집살이가 깨소금 맛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타버린 깨를 씹으며 신혼의 고소함은 애초부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어릴 때 먹고 싶었던 깨소금 맛은 고소한 맛이며 어른이 되어 먹었던 깨 맛은 쓴 맛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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