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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절미    
글쓴이 : 김수정    12-04-28 17:39    조회 : 5,173
 
인절미
 
 
 
 
 2011년 봄에 오클랜드 도메인에 위치한 오클랜드 박물관에서 ‘한국의 날’ 행사가 있었다. 오클랜드 박물관은 매주 토요일마다 여러 나라의 음식과 문화를 선보이는 ‘WORLD ON YOUR PLATE’라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의 음식과 공연을 선보이는 ‘한국의 날’에는 전통 떡과 강정, 인절미 등 다양한 한국 음식과 서예, 태권무, 부채춤 등 다양한 문화 공연으로 한국을 소개했다. 특히 인절미는 현장에서 직접 만들고 시식까지 이루어져 오클랜드 박물관을 방문한 관광객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인절미를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아이가 있다. 우리 어릴 때는 시골에서 올라온 아이가 부엌일을 돕는 경우가 많았다. 중학교 때였는데 나보다는 어리고 동생보다 조금 위인 아이가 집에 들어오게 됐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미간이 붙을 정도로 눈썹이 짙었던 기억이 난다. 시골에서 올라온 아이는 어른들에게 집안일을 배우고 있었다.
 하루는 동생이 펄펄 뛰며 그 아이가 찌개 냄비에서 손가락으로 고기를 건져 먹고 있었다고 했다. 형제 중 가장 어리고 몸이 약했던 동생은 어른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여 고집이 세고 어리광이 심했다. 아무튼, 동생의 요지는 그 찌개를 더러워서 어떻게 먹느냐는 것인데, 할머니는 묵묵히 들으시더니 거두절미하고 인절미를 해야겠다고 하셨다.
 
 나는 그 상황에서 갑자기 인절미를 하신다는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손가락으로 찌개를 헤집는 아이를 야단치지도 않고 그날 중으로 방앗간에 가서 인절미를 해 오셨다. 그리고 식사 시간과 다음 식사 시간 중간쯤에는 따로 앉히시고는 콩고물을 입힌 인절미를 그 아이에게 자주 먹이셨다.
 그러면서 식구들이 먹을 음식에 미리 손을 대는 것, 젓가락을 사용 안 하고 손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것, 한 가지 한 가지 잘못하는 것을 조용히 가르치셨다. 그날 이후 그 아이 밥은 항상 넉넉하게, 반찬도 더 챙겨 주시어 보기만 해도 풍족하게 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 형제들을 따로 불러 그 아이 이야기를 해 주셨다. 몹시 가난한 시골집에서 형제가 많아 늘 배를 곯고 살았다는 것, 그래 어린 나이에 입 하나 덜자고 남의집살이를 하는 가여운 아이라는 것, 배를 자주 곯아 헛헛증이 있어 음식에 손을 대는 것이니 야단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하셨다. 오히려 더는 배고프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고, 그것도 잘못을 야단치는 것이 아닌, 사랑으로 그런 믿음이 생겨야 한다고 하셨다.
 그 아이와 비슷한 연배였던 동생은 '그래도 더러워'를 연발하며 도리질을 했지만, 조금 더 위였던 나는 할머니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할머니를 바라보던 언니와 오빠의 숙연해졌던 눈빛도 잊지 못한다.
 정말 헛헛증이 있었는지 할머니가 주시는 인절미로 식간을 메우면서 아이는 차츰 안정되어 갔다. 불안해하며 눈치를 보던 것도 없어지고 허기에 찌들었던 강파른 얼굴에도 뽀얗게 살이 올랐다. 사랑을 받으면 예뻐진다 하던가? 마치 한 송이 꽃이 개화하듯 나날이 피어나던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제는 가족 구성이 핵가족화 되어서 우리 어릴 때처럼 어른들의 지혜와 관용을 실생활에서 보고 배우는 것이 어려워졌다. 오히려 삶의 지혜가 짧은, 나와 같은 젊은 엄마들의 분별없는 욕심이나 근시안적인 경쟁심을 실시간으로 접하며 우리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의 잘못된 가정교육 문제도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뒤를 돌아보게 된다.
 만일 당시 같은 상황을 할머니가 아닌 젊은 엄마의 시각으로 접했다면, 동생이 보여 준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손가락으로 휘저어 놓은 찌개 냄비를 보며 우선 위생상 혐오감을 느꼈을 것이고 이는 명백히 표정이나 행동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 헛헛한 어린 속을 사랑으로 채워 주는 지혜보다는 위생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과 혐오라는 본능이 앞섰을 것이다. 그리고는 함부로 음식에 손을 못 대도록 야단을 치고 맵게 감시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면 아이는 커서도 별 거부감 없이 똑같은 판단과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 마음 씀씀이가 보편화하면서 사회는 더욱 각박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면 삶 속에서 의식주를 접하면서 보여주신 할머니의 검소한 마음가짐이나 타인에 대한 따뜻한 베풂 등을 무심히 보면서 자랐지만, 어느 순간 할머니의 시선으로 그런 문제들을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리움과 함께 고마움으로 할머니를 그리게 된다.
 
 지혜와 연륜은 세월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오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살아온 흔적을 돌아보면 그렇지 못한 자신을 보게 된다. 어느덧 나 스스로 그런 모습을 후대에 보여 가르침을 전해야 하는 나이가 다가오고 있다. 할머니의 가르침인 인절미의 지혜를 본받아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어른들의 지혜와 너그러운 베풂이 그리워진다.
 이제 그 아이도 중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가난하여 남의집살이까지 했지만,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으로 잘 성장했으니 어디서건 잘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 수필세계 통권 제29호
 
 
 
Je Pense A Toi / Richard Ab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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