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싫다.
조 헌
“늙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싫은 것 알아요.”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우리들에게 창밖을 바라보며 노(老)교수는 담담히 말씀하셨다. 강의실 밖 언덕엔 새봄의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고 유난스레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귀에 쟁쟁했다.
대학 2학년 ‘영시강독(英詩講讀)’ 시간. 그 당시 꽤나 유명했던 무애(无涯) 양주동박사께서 허공에 돌을 던지듯 툭하니 한 말씀이었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노숙하게 보일까 애를 쓰던 철부지 우리들에겐 공허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때마침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오다(The coming of wisdom with time)'를 설명하던 중이셨다.
“이파리는 많아도 뿌리는 하나 / 거짓으로 보낸 내 젊은 나날 / 햇빛 속에 잎과 꽃들을 흔들었지만 / 이제는 시들어 진실을 찾아가리.”
알듯 모를 듯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시 구절 때문에 머리를 갸우뚱하던 우리들에게 “지혜는 세월과 함께 오지요. 결국 늙은이는 지혜로워 진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교수님은 단언하듯 짧게 말을 마쳤다.
그리고 이어 며칠 전 삼성 이병철회장의 초대를 받아 용인의 호암 별장을 다녀왔다며 화제를 바꾸었다. 1976년 애버랜드 개장을 기념해 평소 친분이 있던 각계 원로 여덟 분을 함께 모신 오찬자리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내로라 할 만 한 노인 아홉 분이 모인 자리니 그 분위기는 과연 어땠을까? 당시 교수님께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정갈하고 품위 있게 꾸며진 응접실의 원탁은 넓고 편했다. 시원스레 밖이 내다보이는 대형 창문으론 봄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지고 각종 나무와 꽃들이 어우러진 애버랜드가 한눈에 들어왔다.
서로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마자 이름도 모를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지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향기로운 술이 몇 순배 돌자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이 모임은 한층 더 화기애애해졌다. 고담준론이 오가고 때론 함께 해온 세월의 공감대가 만들어준 갖가지 이야기가 꽃을 피웠다.
하지만 백화(百花)가 난발한 시절 탓인지 아니면 반주(飯酒)로 마신 술기운 때문인지 화제의 중심은 각자의 젊은 시절 이야기로 가닥을 잡았다. 무슨 수를 써도 이젠 갈 수 없는 허망한 젊은 시절이야기가 줄을 대듯 이어졌지만, 대화가 익어 갈수록 세월 저편서 부는 휑한 바람이 가슴에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때였다. 안에선 밖이 훤히 보이지만 밖에선 이쪽이 보이지 않는 유리창 건너편 나무그늘 아래로 젊은 남녀 한 쌍이 주변을 살피며 걸어왔다.
“꼭 여러분 나이쯤 됐을 게야. 조심스런 몸가짐이 한 눈에 보아도 대학생인 듯하고, 작달만한 키에 수수한 옷차림이 서로 잘 어울렸지” 교수님은 방금 본 모습인 양 유독 그들의 생김새를 생생히 전했다.
움직임이 전혀 없던 바깥풍경 속에 이들의 출현은 아홉 사람의 시선을 일시에 모았다. 바로 턱밑 거리인지라 동작은 물론, 표정까지도 또렷이 보였다. 점심식사는 제대로 했는지 모르나 캔 음료 하나를 나눠 마시며 까르르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무심히 바라보기엔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환하게 웃으며 서로를 쳐다보던 그들이 느닷없이 서로를 꼭 껴안더니 입을 맞추는 것이 아닌가. 눈처럼 하얗게 날리는 벚꽃을 배경으로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아름다운 이 광경은 밝은 색깔로만 그린 수채화 같았다.
“우리도 저런 시절이 있었겠지요?” 어색한 침묵을 깨며 누군가 큰 목소리로 좌중을 흔들었다. “있기야 했겠지만 이젠 기억조차 나질 않네요.” 풀 죽은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이미 음식은 맛없이 식어 있었고, 감미롭던 술맛엔 쓴 맛이 돌았다.
이야기를 마친 교수님의 얼굴엔 살짝 서글픔이 지나갔다. “나이가 들면 마음도 함께 늙는 줄 알았지. 하지만 고목의 등걸에서도 파릇한 새싹이 움터 자라듯 마음은 늘 어디론가 쑥쑥 뻗어가고 싶어 한단 말이야. 그러다 문득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늙어 버린 자신의 육신을 느낄 때 그 자리에 그만 풀썩 주저 않게 되는 거지. 어느덧 생각조차도 하기 싫은 나이가 돼 버린단 말이야.” 그리고 잠시 말을 끊었다가 “젊어 보인단 말은 아무짝에도 못 써. 실제로 젊어야지!” 교수님은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물끄러미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남의 등창이 내 고뿔만 못한 것일까? 당시 우리들로서는 도무지 와 닿지 않는 교수님의 말씀이 예이츠의 시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이제 교수님께서 돌아가신 지도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그 시절 푸릇푸릇 한창때였던 나도 젊음이 한 없이 부러운 나이가 돼버렸다.
어떤 이들은 늙는다는 것이 나이에다 살아온 만큼의 지혜가 더해지는 거라며 은근히 젠 체도 하고 또는 삶이란 아무리 초라할지라도 살아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귀한 거라고 우쭐대기도 한다. 하지만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다보니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눈은 흐려져 시야는 좁아지고 고집은 돌덩이처럼 굳어지며 분별력은 떨어지고 낯가죽만 점점 두꺼워지는 것은 아닐까. 늙음이 곧 낡음은 아니라고 우겨댔지만 요즘엔 자꾸 늙음과 낡음이 동의어라는 생각이 굳어가니 마음 한편에 뚫린 구멍을 메울 길이 없다.
종이 울렸다. 교탁 위 책을 가방 속에 챙기며 교수님은 칠판에 적힌 예이츠의 시 구절을 다시 한 번 쭉 읽어 내렸다. 그리고 “늙은이는 분명 지혜로워집니다. 하지만 바보 천치가 되도 좋으니 한번만 여러분처럼 젊어 봤으면 좋겠네요.”라며 벗어 놓았던 윗도리를 집어 들었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되는 교수님의 그 말 한마디! 속은 몹시 아리지만 이젠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처진 어깨로 강의실 문을 나가던 교수님의 뒷모습에 지금의 내 모습이 자꾸 겹치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