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비평>> 2010년 1/2월호 월평
수필 문학의 진정성과 수용 미학적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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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法門 朴泰源)
이번 <<수필과 비평>> 1/2월호는 제15회 신곡문학상 수상작을 특집으로 엮었다. 대상은 최병호, 본상은 김재훈이 수상하였다.
한상열 평론가는 최병호의 수필 작품이 일상을 구체화하고 사상을 함축적인 정서로 형상화하여 존재인식의 아포리즘(금언)적 세계를 보여준다고 평가하면서, 수필은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삶의 진실을 미학적으로 관조하면서 깨달음의 언어로 들려주는 문학이라고 한다. 루카치도 수필은 인간 영혼의 은밀한 곳에 있는 마음의 미세한 풍경을 그리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독자의 가슴 깊은 곳에 서정적 미학의 감동을 주기위해서는 작가의 진정성이 작품 전체에 물이 흐르듯이 스며들어야 한다.
이번 호에 실린 이난호의 <<초록재>>, 조재은의 <<하나이고 모두인>>, 김홍은의 <<난 앞에서>>는 각각 짜임새 있는 구성, 독특한 소재, 서정적인 미적 표현이 뛰어나고 작가의 진정성이 작품에 스며들어서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준다.
이난호의 <<초록재>>는 미당의 시<신부>에서 첫날밤 소박맞고 십여 년을 기다리던 여인의 돌아온 신랑이 어깨에 손을 얹자 재가 되어 부서져버린다는 애절한 사랑이야기, 근척(近戚) 할아버지의 시앗(첩)으로 팔려온 여인의 사랑하던 정인情人이 밤마다 언덕위에 올라와 바라보다가 돌아간다는 한 맺힌 사랑이야기, 교통사고를 당하여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남편을 저녁7시가 되면 우산을 들고 매일같이 마중 나오는 혼이 나간 여인의 사랑이야기를 긴박한 구성으로 풀어놓았다. 그 여인들은 모두 가혹한 운명의 장난으로 사랑하는 정인과 헤어졌지만 죽는 날까지 순수한 사랑의 정한情恨을 마음에 온전히 간직하며 살아간다. 작가는 “뭐에 그토록 사무쳐본 적이 없는 나는 무엇으로든 고스란히 혼을 놓을 수 있다는 건 아득한 경이였다.”고 토로한다.
조재은의 <<하나이고 모두인>>은 영국의 조각가 안토니 곰리가 자신의 몸에 직접 석고를 발라 실물뜨기 작업으로 만든 100개의 인체조각 작품 ‘위기의 군중 critical mass'를 감상하고 쓴 것이다. 작가는 그 군상의 작품 중 벽과 마주하고 있는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왜 혼자 있는 건가요. -저 사람들처럼 고통의 몸짓이라도 하세요. -당신이 느낀 단절은 어디서부터 유래한 것인가요. -당신이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은 아닌가요.” 작가는 “전시장을 나올 때 수십 명의 나를 두고 온 것 같았다. 아니 숨어 있는 나, 한 사람을 만나 수많은 얘기를 한 것 같다.”라고 실토한다.
김홍은의 <<난 앞에서>>는 서정정 표현이 아름다워 시를 감상하는 느낌이 든다.
“달빛 속에서 바라보는 난 꽃은 멀리 떠났다 다시 돌아온 연인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밤도, 허욕에 물들어 괴롭게 살아온 세월도, 인생의 바람에 펄럭이던 문풍지 소리도 조용히 잠든 채 고희를 지나는 마루턱에서 외로운 눈물이 흐르는 소리가 가만가만 들리는 듯하다...저 난같이 향기를 안으로 담고 정을 주며 살아가는 친구 한두 사람만 있으면 된다....나는 난향 같은 깊은 향을 피우지는 못하나 난처럼 푸르게 살고 싶다.”
아름다운 서정의 향기를 풍기며 순화된 깊은 감정과 교류하는 즐거움을 주는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