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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장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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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액형 유감    
글쓴이 : 장정옥    12-12-26 21:28    조회 : 4,802
혈액형 유감
 
 
                                                                                                            장정옥
 
 B형
 1. 고집쟁이, 자기중심적. 오늘도 간다. 나의 길을. 누가 뭐래도 내 인생에 후회란 없음.
 2. 밝고 과묵한 성격. 무시당해도 상관없음. 어차피 내 맘대로 함.
 3.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성실함. 끝까지 도와드림. 싫은 사람은 이 세상 끝까지 안녕.
 4. 이기지 못할 승부는 안함. 일단 시작한 승부라면, 설령 죽더라도 질 수 없음.
 5. 항상 정직함. 너무 솔직해서 탈. 감추는 것 없음. 아부는 안함. 주특기는 직격탄 날리기.
 6. 아부하는 놈은 금방 알아냄. 비열한 놈 잡아 냄. 비난 받아도 개의치 아니함.
 7. 바보는 상대안함. 멍청이도 거부함. 첫눈에 알 수 있음. 이 세상에 아군과 적군뿐임.
 8. 자신만만함. 생각한건 바로 행동으로 옮김.
 9. 언제나 직구 승부함. 다른 타구는 없음. 비겁한 수단을 사용하면 인간이 아님.
 10. 눈에는 눈이 신조임. 빚은 두 배로 갚음.
 11. 타협하지 않음. 실망하지도 않음. 절대 꺾이지 않음. 끝까지 추구함,
      관심 없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던 져버림(포기함).
 12. 사소한 것에는 신경 안 씀. 장황한 말투 싫어함. 이야기는 딱 한번으로 충분함.
 
  나는 B형이다. 심리학으로는 성품이야 타고나는 것이라 개인차가 있겠지만 성향은 위 글이 맞는 것도 같다. 따라서 혈액형별 성격 분류 내용으로 보자면 싸가지 없기로는 한가마니쯤 되고 남을 향한 배려를 찾으려면 숨은그림찾기를 해야 할 정도의 인물이다.
  위 내용을 들여다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내 어머니가 읽었다면 요즘 아이들 말로 ‘완전 공감’이라 할 만큼 딱 맞아 떨어진다고 할 것 같다. 이는 다른 이의 말에 꿈쩍도 않는 나를 보며 “지가 좋아하지 않으면 죽어도 하지 않고 누구 말도 듣지 않는 고집불통” 이라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에 누구의 간섭이나 도움 없이 스스로의 노력과 심혈을 기울이는 걸 왜 나쁘다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독특하다’ 정도의 표현은 들어줄 수 있지만 잘못된 편견으로 혈액형 때문에 내가 성격 더러운 부류로 치부된다면 그건 다시 생각해 볼일이다. 자신의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다른 혈액형으로 대답한다는 친구의 마음도 달래 줄 겸 세간의 오해를 풀어보자.
 
  혈액형을 발견하게 된 시기는 19세기말, 다른 사람의 수혈을 받은 피에 혈구덩어리가 만들어짐을 통하여서라 한다. 이런 현상을 응집반응(凝集反應)이라 하는데 이는 사람의 혈구에 들어있는 특정 항원(抗元)의 유무, 또는 존재하는 항원의 구성에 따르는 분류가 혈액형이다. 처음에는 질환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았으나 1900년 오스트리아의 병리학교수 K.란트슈타이너에 의해 건강한 사람에게서도 볼 수 있는 현상임이 밝혀졌고 1901년 A.B.O.식, 1927년 M.N.식, 1940년 Rh.식 혈액형의 발견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다 한다.
  이런 엄청난 발견이 요즘 들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현란한 이론들을 쏟아내고 있어서 유감이다. 그 이론들은 각자의 혈액형에는 독특한 특징들이 있는데 이 중 하나가 개인의 성격과 취향 등이 내포되어 있다는 설이다. 근래에 들어서는 혈액형 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이런 상술에 놀아나는 나약한 인간들의 의뢰심이 엿보인다.
 
  혈액형 점의 시작은 독일의 우생학에서 기원한단다. 유럽인이 아시안이나 아프리카인보다 우월하다는 증명될 수 없는 가설을 1927년 일본의 심리학자 후루카와(古川竹二)가 혈액형으로 기질을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부터이다. 위 연구에 영향을 받은 노오미(能見)라는 작가가 1971년 “혈액형 인간학”이라는 책을 내자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그 후 노오미의 아들이 그 이론을 추측과 느낌으로 덧붙이고 부풀려 오늘날에는 수백 종의 혈액형에 관한 책들이 근거 없는 과학연구결과로 포장되어지고 더 나아가 신앙처럼 믿고 따르는 열혈신자도 생겼다고 한다. 그러기에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얘기로 입사시험에서 혈액형으로 가산점을 준다거나 맞선보는 자리에서 본인이 바라던 혈액형이 아니면 안색이 바뀐다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일도 허다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혈액형으로 사람의 심리를 건드리는 것일까.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요인이 작용된다. 이른바 바넘효과(Barnum Effect)의 영향인데 이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심리적 경향이다. 특히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좋은 것일수록 강하게 작용하며 착각에 의해 주관적으로 끌어다 붙이거나 정당화하는 경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십이간지, 별자리, 토정비결, 역학 등의 해석은 일반적 특징을 통계학적으로 기술한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잘 나타낸 것처럼 받아들이고 그런 점괘가 정확하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한 예로 “B형은 급하게 서두르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점괘를 읽으면 그렇다고 공감하는 일반적 확률과 특히 B의 혈액형을 가진 자의 공감이 대다수 그 믿음을 받아들일 때 뇌의 감각이 과하게 인식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반적 확률은 “서두르면 일을 그르친다.” 는 것인데 B형만이 아니라 지구의 모든 인류는 서두르면 일을 망칠 수 있다는 통계에서 나오는 것이다.
  가끔 혈액형과 성격과의 상관관계를 모아놓은 글들을 읽다보면 “맞아 맞아, 이거 정말인가보네.” 하며 고개를 끄떡일 때도 있다. 그러나 간과 할 수 없는 것은 비판적 견해와 자극적 문구들, 또 우스운 표현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더 중요한 점은 그 “맞아 맞아”가 자신의 성격을 인정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성격을 구겨 넣어 맞추려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끔 신문에서 보는 운세 역시 자신에게 유리한 문구는 받아들이고 나쁜 문구는 무시하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가장 성격 나쁜(?) 피를 소유한 B형의 글을 장점으로 변환시켜보면 독립심 강하고 의지력 대단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의감 높은 존재임이 분명하다.
(세계적 최고들은 B형의 둘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렇듯 누구에게나 기질적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그것이 성격적 결함으로 치부되지 않고 상호 보완 작용으로 더 나은 삶의 질을 만들어가는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겠다. 더 중요한 것은 성향보다 성품을 들여다보는 안목을 길러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혈액형은 성격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기분 전환용이 아니라면 읽지를 말고 내가 재수 없는 B형이라 해도 사랑해주기를 부탁한다.
 
 
 
2013   1월호   [책과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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