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그 사랑의 깊이
조 헌
추위가 극성을 부리던 지난겨울. 늦잠을 자고 깬 일요일 아침이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두 아들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벌써 집을 나가고, 혼자 세탁기를 돌리며 설거지를 하던 집사람만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과 몇 해 전,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제때 깨워 밥 먹이랴 서둘러 학원 보내랴 부산을 떨며 한창 정신이 없을 시간인데 이젠 조용하기가 산속 같다.
요즘 들어 갖게 된 이 여유로운 시간이 내심 난 마냥 좋은데 아내는 더 이상 자신의 손이 필요 없는 아이들의 덤덤함이 고깝고 때론 섭섭한지 ‘품 안에 자식’이라며 사소한 일을 가지고도 짜증 섞인 속내를 자주 드러냈다. 하지만 넉넉지 못한 살림에도 아등바등 쏟아 붓던 자식에 대한 정성을 생각하면 심드렁히 구는 아들놈들에게 툴툴대는 아내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난 환하게 햇살이 들이비치는 창문 쪽 소파에 앉아 신문을 펴 들었다. “커피 드려요?” 돌아보지도 않고 하는 아내의 물음에 나도 가타부타 말없이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바람이 전혀 없는지 길 건너 커다란 후박나무는 미동(微動)도 없이 서있고 고루 퍼져 눈부신 햇살이 그 미끈한 회색 가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날은 매섭게 춥다지만 왠지 침침한 집안보다는 밖이 훨씬 따뜻해 보였다.
아내는 커피 두 잔과 마들렌 쿠키 몇 개를 가져왔다. 휴일의 느긋함 때문인지 커피향이 유난히 향기로워 늦은 아침식사론 안성맞춤이었다.
30년 가까이 함께 살아 온 아내는 이제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커피 맛을 기가 막히게 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어느 때건 내가 배고플 시간을 정확히 짚어 식사 준비의 완급을 조절하는데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면 ‘참을성 없는 당신 얼굴에 다 쓰여 있다’며 피식 웃고 만다. 못 보던 주름이 부쩍 늘은 얼굴이다. 그러나 더없이 편한 여유 있는 표정이 새삼 좋아 보인다.
“우리 모처럼 소풍이나 가볼까?” 별 기대 없이 던진 내 말에 아내도 예사롭게 말을 받았다. “안 가본 절을 새로 발견하셨나? 학생들 수학여행도 아니고 만날 가봐야 그게 그거인 절집은 왜 그렇게 찾아다니는지 내 원 참! 추운 날씨에 따라갔다가 고생만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그러고 보니 지금껏 아내와 함께 다닌 곳은 모두 사찰 일색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지녔던 내 호고(好古)의 취향은 매번 산속 절을 찾아 발품을 팔게 했고 최근엔 폐허가 돼 스산한 절터에 남겨진 탑들이 좋아 시간이 날 때마다 나서는 것을 아내도 잘 아는 터였다. 하지만 크게 반색은 안 해도 종종 따라나서는 것을 보면 그런대로 싫지 않은 것이 분명하고 나 또한 맘 편한 동행자로는 아내만한 사람이 달리 없었다.
밖은 예상대로 몹시 추웠다. 경기도 하남의 ‘춘궁동 동사지(桐寺址)엔 며칠 전 내린 눈이 소복이 쌓인 채 그대로였다.
고적하기 이를 데 없는 텅 빈 절터엔 오층과 삼층석탑이 나란히 서 있었다. 눈이 하얗게 내린 장방형의 넓은 뜰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다정히 서 있는 이 두 탑은 석가탑이나 다보탑처럼 세련된 균형미도 없고, 또 유명한 정림사지나 감은사지 석탑의 웅장함에도 턱없이 모자라 그저 평범하고 소박할 따름이다. 게다가 두 탑 모두 긴 세월을 바람에 깎기고 빗물에 씻겨 탑신 전체가 많이 훼손돼 거칠었다. 그런데 건립시기가 고려 초로 추정된다니 얼추 잡아도 천년이상을 이곳에서 이렇게 마주 보고 서 있었던 거다. 섬이 아름다운 것은 섬들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라는데 알맞게 떨어진 두 탑의 거리는 바라보는 내내 안정감과 평화로움을 자아냈다. 덩치가 큰 5층탑과 아담하고 다소곳한 3층탑은 마치 늘 한자리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거친 풍파를 함께 견딘 나이 든 부부의 담담한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나와 다른 점을 이해하고 그 차이를 존중하는 일일게다. 그러나 일심동체(一心同體)를 곧 부부사랑의 척도로 믿는 사람들은 사랑의 감정을 앞세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둘 사이에 거리를 좁히고 허무는 일이다. 서로 다른 존재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이 무모한 믿음이 결국 사랑을 순간에 완성시켜 불같이 달구기도 하지만 때론 굵은 상처와 아픔만을 남기고 찰나에 헐어내 어름처럼 차갑게 식힌다는 것을 모르는 채 말이다.
격렬한 사랑! 나름 뜨겁고 간절해서 좋다. 이따금은 폭풍 같은 사랑을 꿈꿀 때도 있다. 그러나 가장 편하고 오래 가는 것은 잔잔한 사랑일 것이다. 또 그런 사랑일 때만이 영혼은 평화를 얻을 수 있고 아름다운 거리는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닐지.
결혼은 서로의 감정을 신뢰하고 돌봐주기로 한 약속이지만 항상 기대를 조정하는 과정이 어려워 깨지기가 쉽다. 그래서 늘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유리잔 같이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곱게 지켜야 될 아주 여린 관계임을 알아야 한다.
서로 다름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거리를 인정하고 진정 하나가 되는 길이다. 지극한 사랑은 대상과 나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를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
절터를 나오며 나는 앞서 걷던 아내의 뒤를 쫒아가 슬그머니 손을 잡았다. “우리 나이에 이러면 부적절한 관계로 오해 받아요” 화들짝 놀란 아내는 하얗게 눈을 흘겼다. “참 꿈도 야무지네. 이왕 부적절할거라면 왜 당신같이 나이 많은 여자겠어. 젊고 예쁜 여자가 길에 넘치는데.......” 내가 물색없이 빈정거리자 ‘당신 착각도 국가대표 수준’이라며 스스럼없이 받아 넘기곤 껄껄 웃고 만다. 다시 잡은 아내의 손은 의외로 따뜻했다.
아내와 함께 호젓한 산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오며 이젠 결혼에 있어 사랑이 전부라고 우기진 안겠지만, ‘전부’는 아니더라도 ‘먼저’인 것은 분명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뒤를 돌아보니 겨울 나목 사이로 하얀 눈을 머리에 쓴 두 탑이 천년을 같이 해온 다정한 부부처럼 우릴 배웅하고 있었다.
* 2013년 1월호 <월간문학>에 게재된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