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선택
노문정(본명: 노정애)
언니가 웃는다.
10일전쯤 형부가 위암인데 심각하다고 전화를 했다. 경남 사천에 사는 언니는 진주 종합병원에 문의를 했지만 검사와 수술까지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 어떻게 하냐고 울기만 했었다. 서울에 사는 나에게 병원을 알아봐달라고 했다. 사촌 시누이가 있는 종합병원에서 일주일 만에 수술 할 수 있었다. 입원만 시키고 언니는 직장일로 내려갔다. 온갖 검사를 받고 수술대에 오르기까지 보호자인 내가 전화로 경과를 알렸다. 3기를 넘어선 위암의 위험성, 열어보아야만 정확히 알 수 있다는 것과 수술 후의 합병증, 위를 모두 절제 할 가능성과 주위로 전이되었을 경우 6개월 시한부 판정까지 의사의 말을 전하자 절망과도 같은 언니의 울음이 들렸다.
수술 날 대기실에서 기도만 하던 언니. 수술은 마친 의사가 위를 1/3정도 남길 수 있었다는 말과 다행히 전이는 되지 않아서 항암치료만 잘 받으면 희망을 가져도 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깨어난 형부에게 수고했다며 언니가 웃었다.
오래전 현대사회의 고질적인 외로움과 고독의 정서를 감동적으로 표현한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7.22-1967.5.15) 의 1961년 작품인 <햇볕속의 여인(A woman in the sun)>을 책에서 보았을 때 언니 생각이 났었다.
빛의 표현을 중시한 화가의 그림에는 창으로 비치는 햇볕을 향해 한 여인이 서있다. 그녀 왼쪽의 긴 창으로는 산의 능선만 보이고 방 안에는 단조로운 액자와 침대가 있다. 방금 잠자리에서 일어났는지 흐트러진 이부자리와 침대 밑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구두 한 켤레. 화가가 자주 그렸던 호텔방의 한 부분이리라. 중년의 긴 머리 여인. 세상의 모든 짐들을 내려놓듯 옷은 모두 벗었다. 오른손에 든 담배와 근육으로 탄탄한 다리는 바쁘게 살아온 흔적처럼 보인다. 정면의 창은 보이지 않고 햇볕만이 길게 드리워져있다. 그 빛 속에 있지만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잠시 번잡한 일상을 떠나 휴식을 취하는 듯 평온한 얼굴은 아니다.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굳은 결심을 하는듯하다. 호퍼의 그림에서 인물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생각에 잠겼거나 무언가에 몰두해 있다. 여러 명이 등장해도 무표정한 얼굴일 뿐,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현대인들의 고독과 소외감을 표현한다고 미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왜 언니를 떠올렸을까? 2남2녀의 우리 남매. 언니는 나보다 두 살 위다. 자매간이라 가까이 지낼 수 있었지만 우린 성격도 외모도 너무 달라 그리 살가운 사이가 아니었다. 집안에서 시키는 일만 하는 나와 달리 호탕한 성격에 운동을 좋아하며 조금은 다혈질인 외향적 성향이 강했다. 작은 키에 통통한 몸, 두루뭉술하게 생긴 별 특징 없는 얼굴인 나와는 반대로 늘씬하고 멋진 몸매에 훤칠한 키, 긴 머리에 짙은 눈썹과 큰 눈, 조각상 같은 날렵한 콧날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눈에 뛰는 외모였다. 함께 길거리에 나서면 많은 남자들의 시선을 붙잡아두었고 스치듯 지나간 사람들도 돌아와 다시 보곤 했었다. 나는 언니와 단 둘이 외출하는 것을 꺼렸다.
선을 본 후 몇 개월 만에 형부와 결혼식을 올렸다. 언니 나이 24살. 결혼 후 1년도 안되어서 큰 조카가 태어났다. 언니는 아내노릇에 엄마노릇까지 열심히 했다. 생활 속에서 간간히 일어나는 갈등들도 현명하게 잘 대처해 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외아들이며 사람 좋고 효자인 형부는 성실하기는 했지만 시댁과의 갈등을 중재해주지 못했고 그 골은 점점 깊어갔다. 한때 언니는 신경정신과 약으로 힘겹게 버티기도 했으며 고질적인 만성 위염에 결려 약을 달고 살았다. 급기야 사천에서 목욕탕을 운영하시던 시어른이 직장 생활하던 형부와 식구들을 불러들이고 언니에게 목욕탕을 맡겼다. 온 종일 묶여있는 생활 속에서도 언니는 늘 씩씩했다. 삶이 주는 시련의 시간들도 감내하며 작은 행복에 감사하고 살았다. 그러나 시댁 식구에게 보증을 서서 모든 것을 한순간에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먹고 살기 위해서 언니는 식당 일부터 허드렛일까지 몸을 아끼지 않았다. 시어른들의 병수발까지 하며 억척스럽게 생활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만 지내셨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이제는 이혼 할 수 있겠다며 “아버지 그래도 되죠?”라고 영정 사진 앞에서 울고 있는 언니를 보았었다.
언제부터인가 언니는 털을 세운 고슴도치 같았다. 식구들이 함께 모였을 때 말속에 가시를 담고 날카롭게 쏘아대거나 별것 아닌 일에도 목소리가 커지곤 했다. 말 붙이기가 무서울 지경이었다. 내재된 불만을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들에게만 독설로 쏟아 내서 형제간조차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
몇 해 전 시어른들은 다 돌아가셨다. 형부와 언니는 더 성실하게 일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남매는 잘 커줬다. 제대 후 장학금 받으며 학교에 다니는 큰아이는 아르바이트도 열심이다. 둘째는 전공을 살려 유치원 교사로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다. 지난 8월 친정아버지 기일에 본 언니는 이제야 진 빚들을 다 청산하고 저축이라는 것을 하고 산다며 평온하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그 날카롭던 가시들은 솜털처럼 부드럽게 변해있었다. 하지만 불행의 순간에 모퉁이에서 불쑥 튀어나온 행복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내가 시샘할 만큼 예뻤던 모습은 깡마른 몸과 눈 밑에 앉은 짙은 기미, 큰 눈과 높은 코도 너무 말라버린 얼굴에 더 크게만 보여서 고통의 시간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형부를 입원시키고 밤차를 타야했던 시간, 일하면서도 마음은 병원에 두고 있었을 것이고 심각성에 대한 걱정으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으리라. 수술을 보기위해 밤차를 탔을 언니.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언니의 어깨에는 지구라도 얹힌 듯 힘겨워만 보였다.
언니와 그림 속 여인. 여인은 무엇인가 굳은 결심을 하는 듯 했다. 햇볕 속에서 그늘은 더 짙게 느껴진다. 누구나 빛을 향해 선택을 하지만 가보지 않고는 알지 못한다. 그녀도 자신의 인생에 좀 더 밝은 쪽을 향한 빛으로의 선택을 위해 굳은 결심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상의 모든 짐들을 내려놓듯 옷을 벗고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으리라. 언니의 삶속에서 그런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던 시간들. 희망이라는 빛을 향해 달려가지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절망 앞에 눈물 흘리며 늘 선택했을 것이다. 며느리로서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무엇이 최선인지만을 고민하며 그림 속 여자처럼 굳건히 서서 빛을 향해 서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믿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더 강하고 단단해졌으리라. 어쩌면 고통의 가시들을 부드럽게 만들어 버린 것은 언니의 힘겨운 투쟁의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형부의 항암치료와 가장노릇까지 해야 하는 앞으로의 시간들. 다시 언니는 햇볕 속에 서 있다. 선택이나 결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이 역경을 헤쳐 나가려는 굳은 의지의 모습으로. “가족의 울타리에서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보라는 하나님의 뜻인 것 같다. 이렇게 형부를 사랑하는 줄 진작 알았다면 더 잘 해줬을 텐데 너무 늦은 것은 아니겠지?” 언니가 또 웃었다. 마음을 담은 웃음이 옛날 언니의 모습처럼 예쁘게 보였다.
<한국산문 2013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