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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무장갑 예찬    
글쓴이 : 김보애    13-01-07 22:27    조회 : 4,540
고무장갑 예찬
김 보애
얼마 전 방송된 SBS '1억 퀴즈 쇼(2012, 6.15) ‘ 에는 고무장갑과 관련 문제가 출제되었다. '고무장갑은 왜 빨간색일까? ’ 하는 문제였는데 정답은 김치를 담글 때 장갑에 고춧가루의 붉은 물이 묻어도 표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겨울이면 김장을 하는 우리나라의 문화에서는 그러한 이유가 당연히 공감된다.
나는 고무장갑 예찬론자이다. 고무장갑은 완벽한 도구이다. 아무리 더럽고 기름지고 뜨거운 것도 고무장갑을 끼면 다 만질 수가 있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겨울이 춥게 느껴졌다. 그 당시 우리 집에는 온수 수도꼭지가 없어서 한겨울에도 찬물로 설거지했었다. 요즘처럼 보습제가 잘 나오는 것도 아니고 로션조차도 귀해서 손등은 늘 꺼칠꺼칠하게 갈라져 따가웠었다. 딸 다섯인 우리 집은 위에서부터 세 딸이 번갈아가며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 당번이 걸린 날은 설거지할 생각을 하면 늘 걱정이 되었다. 세제도 잘 녹지 않는 얼음물에 두 손을 담그는 것은 정말 용기가 필요했다.
어느 날, 부엌 싱크대 위에 빨간 고무장갑이 올려져 있었다. 커다란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니 참 신기했다. 손도 덜 시렸고 무엇보다도 거칠거칠했던 손이 보드라워졌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주부습진 때문에 고생했다. 물이나 세제에 닿기만 해도 가렵고 따가워 고생하는데다 손바닥의 피부 껍질이 늘 벗겨져 악수하는 것을 늘 꺼렸다. 그나마 면장갑과 고무장갑을 끼면 보호가 된다고 하니 그분뿐 아니라 이제는 주방 일을 하는 주부들에게 있어서 고무장갑은 정말 필요불가결한 도구가 되었다.
어느 겨울, 눈이 내린 다음 날, 산에 올랐다. 나뭇가지에 남은 하얀 눈이 산꼭대기마다 얼어 햇살에 빛나다가 바람이 불면 마치 누에고치가 껍질을 벗듯 후두두 떨어졌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것은 좋았지만 편안한 부츠 하나로 시작한 산행은 여차하면 떨어질 만큼 위험했다. 산책 삼아 가볍게 나갔다가 잔뜩 고생하여 몸은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저녁 늦게 동네 게르마늄 온천에 가서 온천물에 몸을 담그니 피로가 조금씩 풀렸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빨간 장화를 신은 어떤 아가씨가 큰 밀대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녀는 예닐곱 정도의 사람들이 목욕하고 있는 틈새를 조용히 다니며 씩씩하게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희끄무레한 전등불빛 속에서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일하는 그 모습이 마치 동화 ‘빨간 구두 아가씨’의 주인공 ‘카렌’처럼 보였다. 빨간 고무장갑이 혼자 공중을 날아다니며 너울너울 춤추는 것 같더니 타일 벽과 바닥은 금방 반짝반짝해졌다. 땀에 젖은 그녀의 표정도 그 타일만큼 반짝반짝 활기가 넘쳤다. 지친 몸으로 탕에 몸을 담그고 있던 나에게 그 에너지가 전해져 지친 하루의 무게가 금세 사라졌다. 그 밤, 그 목욕탕에서 열심히 일하던 그녀의 모습은 빨간 고무장갑과 함께 며칠간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2011년 잠깐 전원생활을 해 본 적이 있었다. 겨우내 굳은 땅을 일굴 때 정말 그 고무장갑의 위력을 실감했다. 두꺼운 면장갑으로 일하다 보면 금세 물이 들어와 손이 시리고 눅눅한데 면장갑에 고무를 입힌 장갑은 쉽게 물이 배여 들지 않아 정말 도움이 되었다. 시골의 여름은 뱀들이 많아 밭에 들어가면 뱀에 물리기도 하는데 고무장갑과 장화로 무장하면 어떤 적이 나타나도 상관없었다. 그런 면에서 고무장갑은 편리성을 가진 동시에 거친 것, 위험한 것을 차단하는 방패가 되기도 한다.
고무장갑은 설거지나 생선을 손질할 때나 집 안 청소를 할 때도 많은 도움을 주지만 어쩌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남편이 친정어머니가 만든 추어탕을 좋아해서 나도 한번 맘먹고 시도를 해 본적이 있었다. 추어탕 끓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친정어머니는 미꾸라지를 갈아 채소를 넣어 소금과 조선간장만으로 간을 하여 담백하게 끓이신다. 거기에 다진 마늘과 다진 고추, 산초를 넣어 먹는데 맛이 아주 깔끔하다. 요는 미꾸라지의 잔뼈 처리인데 그렇게 하려니 여간 손이 가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우선 재래시장에 가서 노르스름한 토종 미꾸라지를 사와 굵은 소금을 뿌려 두었다. 한참을 삶의 투혼을 하던 미꾸라지들을 모질게 바라보면서 ‘주부란 참 모질기도 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꿈틀거리던 미꾸라지들이 일단 잠잠해지자 얼른 고무장갑을 꼈다. 거친 호박잎을 한 움큼 잡고 빡빡 문지르는 일이 다소 잔인했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다. 맨손으로는 어림도 나지 않을 일들이었지만 고무장갑을 끼니 거칠 게 없었다. 한참을 비비니 미끌미끌한 거품이 빠져나왔다. 한소끔 끓여 물컹물컹해진 미꾸라지들을 훑어 굵직한 뼈는 더듬어 발라내고 잔뼈는 촘촘한 소쿠리로 다시 훑어 내렸다. 호박과 얼갈이배추를 넣어 푹 끓이니 그런대로 어머니가 끓여준 추어탕과 비슷한 맛이 되었다. 끓이는 과정이 여간 성가시지 않았지만, 고무장갑이 없으면 엄두가 나지 않을 일들이었다.
고무장갑은 ‘손을 덮는 의복’으로 일컬어진다. 장갑을 착용하는 주목적은 손의 보호. 더위나 추위로부터 손을 지키며 맨손으로 만질 수 없는 위험한 화학물질이나 바이러스로부터 손을 보호하며 감염성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최초의 고무장갑은 외과 수술용 장갑으로, 1884년 ‘레지던트의 제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스튜어트 홀스테드(William Stewart Halsted 1852-1952)가 개발했다고 한다.(www.ja.wikipedia.org)
당시에는 수술할 때 소독액에 손을 담그며 수술을 해야 했는데 간호사였던 그의 연인 케롤라인 햄프턴은 늘 소독약 때문에 손이 거칠어 있었다. 홀스테드는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고무장갑을 고안했고 두 사람은 이것을 계기로 결혼하게 된다. 홀스테드가 발명한 고무장갑은 살균성에서도 당시 행하던 소독액에 손을 담그는 것보다도 강력했기 때문에 주문이 쇄도하여 전 세계의 수술현장에서 보급되었다.
어쨌건 사랑하는 사람의 거친 손을 위해 만들어진 의료용 고무장갑은 일반 현장에서도 확대되어 보급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1976년 주식회사 태화에서 처음 생산이 되었다. 이름이 ’마미손‘ 이라는 장갑은 이미지 그대로 고무장갑이 ’용감하고 씩씩한 엄마‘를 떠올린다.
좋은 연장이 있으면 힘든 일도 그리 두렵지 않은 법이다. 나는 부지런한 편이 못되어서 일을 쌓아두었다가 한꺼번에 하는 편인데 부엌 싱크대에 걸쳐져 있는 빨간 고무장갑을 보면 갑자기 일할 마음이 생긴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젼을 보며 축 처져 있던 내가 벌떡 일어나 고무장갑을 끼면 우리 아이들은 드디어 엄마가 일을 시작한다는 것을 눈치챈다. 고무장갑을 끼면 나는 ‘스위치 온’ 상태가 된다. ‘나 가수’가 아니라 ‘나는 대한민국 주부다!’ 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앞치마는 갑옷이 되고 고무장갑은 무기가 되어 마치 전장(戰場)에 나간 여전사처럼 거친 일, 귀찮은 일을 척척 해내니 어찌 그를 예찬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20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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