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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정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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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재범 버리기    
글쓴이 : 정지민    13-01-08 13:34    조회 : 4,889
 
 
임재범 버리기
 
4대 성인도 아니고 강한 가르침으로 일깨우는 그 성인들의 어록 또한 아닌데 일개 가수가
단 몇 분 동안 부르는 노래 한 곡 때문에 어제 오늘, 내 가슴속 파장이 제법 크다.
냉정을 찾을 때까지 한 줄의 글도 쓰지 말리라 했으나 결국 참지 못한다.
나는 물론 제 시간에 TV를 통해 그를 본 건 아니었다. 휴일. 꽃잎이 황사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차창 밖으로 바라보며 뭉싯 휘어진 어느 산성 길을 따라 소풍을 나섰기 때문이다.
두물머리 통유리창 널찍한 카페에서 손으로 맥주잔을 이리저리 굴리며 강건너 빨간 벽돌집 마당을 
상상으로 헤집고 있을 때 아마도 이 남자의 절규는 시작되었을 터다.
그건 어쩌면 노래이기 전에 한 생을 마치고 흙으로 귀소하는 봄꽃들의 작별인사일 수도,
꽃이 되려다 말아 후줄근해진 50줄 여자의 깊은 속울음일 수도 있다.
그 무엇이 되었건 나는 이 남자의 무대 영상을 친구 두엇과 어깨를 맞대고 캔맥주를 비워내며
몇 시간 후에야 내 집에서 볼 수 있었다. 아들이 대여해준 인터넷 고음질 사운드와 함께 우리는
가슴으로 듣고 또 들었다.  깊어가는 봄에 숱한 눈물이 뿌려지며 임재범은 이제 평범하고 흔해빠진
가수의 대열에서 훌쩍 이탈했다.  어떻게 사느냐고 묻고 있었다.  선사(禪師)가 퍼붓는 
즉자적(卽自的) 답을 요하는 물음이었다, 까짓 노래 하나가.
어느 몹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던가.  남자는 나이가 들어도 관록이 붙어 멋이 흐르지만
여자는 그저 초라하게 늙어질 뿐이라던 그 말.  사내가 그걸 보여주고 있었다.  나와 내 주변의
많은 여자가  그 뒷말을 입증하고 있는 것처럼.
거짓 없는 사내 눈빛이 좋았다.  노래보다 더 좋았을 것이다.  무릇 모든 예술이나 작품 기저에는
그를 주관하는 '사람'의 영혼이란 게 있을 것이고 그 영혼의 창이 한 개체의 눈빛이란다면 말이다.
남의 감수성을 보려면 나의 감수성이 선행되어져야 한다.  무대라는 제한적 공간 위에서 공간을
초월하여 사람들 가슴속에 감동과 카타르시스의 화살을 날리며 섬섬한 감성을 되살려낸
한 가수에게 오늘은 진정을 다해 존경을 보내니 그대는 받으시라!  
 
윗글은 그러니까 지난 5월 초입, 가수 임재범이 텔레비전에 나온 그 시점의 내 일기다.
어느 프로에 전설의 록보컬리스트로 알려진 그가 나온다는 얘기에 긴가민가하며 외출에서
돌아온 나는 인터넷으로 프로를 다운받아 보게 되었다. 같은 해 3월에 시작된 MBC TV프로
<나는 가수다>는 국내 실력파 가수 일곱 명이 서바이벌 형식의 경연을 벌이며,
선발된 500명의 청중평가단에 의해 각자의 가창실력을 평가 받는 파격적인 무대다.
경연이라는 방송포맷으로 인해 공연을 하는 주체는 탈락자가 되지 않고자 혼신의 힘을 쏟게 되고,
현장의 관객이나 시청자 역시 긴장감을 촉발시키는 분위기에 압도당하며 숨죽인 채 몰입하게 된다.
그날 이 프로를 지켜보면서 다른 가수들의 순서는 그냥저냥 넘기고 맨 마지막 무대에 올라온
임재범을 보자 그 자체만으로도 벌써 심장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데뷔 25년 차 가수지만 TV에서 모습을 잘 볼 수 없었던 투명인간 같은 가수였기 때문이다.
국내에 록(Rock)이라는 음악장르를 정착시킨 선두주자로서 신이 내린 보컬이라는
선명한 입지를 굳힌 그였으나 대중에게 어필하려는 시도 대신 질서를 깨트리며 은둔과 기행을 일삼았다.
86년 임재범이 시나위 그룹의 초대보컬로 나오기 전까지 국내 락뮤직은 불모의 땅이었으니,
외국 팝에 의존해 오던 소수 마니아들로선 그의 존재가 소중할 뿐만 아니라 늘 갈망의 대상이었다.
발랄한 물고기 같아야 할 내 나이 20대 때 현실은 가없이 눅눅해서 어두운 터널 속에 갇힌 채
그의 초기음악을 고통과 환희라는 상반된 감정 속에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세월이 흐르며 나는 그를 잊었고, 세상도 그를 잊은 듯했다. 그랬던 그가 어슬렁거리며
TV 화면에 나타나서 <너를 위해>라는 예전 히트곡을 불렀던 것이다.
그날의 흥분과 감동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평균 3분 30초라는 노래 한 곡이 사람을 통째로
뒤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걸 처음 경험한 순간이기도 했다. 동료가수는 ‘왕의 귀환’이라고 했고,
한 뮤지션은 ‘나만 가수다’라는 패러디로 그를 정의했다. 두 번째로 그가 무대에 섰을 땐
남진이 불렀던 <빈잔>이라는 노래를 파격적인 편곡과 함께 포효하듯 노래해서
나는 거의 경악에 가까운 충격을 받았다. 세 번째 무대는 <여러분>이라는 노래였다.
말 그대로 절창이었던지 프로가 생긴 후 최초로 현장의 청중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말하지만, 나는 그가 부른 세 곡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매번 주체하기 힘든 격렬한 감흥을 느꼈다.
한번은 임재범 무대가 막 끝남과 동시에 군부대에 있는 큰아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울고 있제?”라고 마치 보는 듯이 말했다. 일요일이라 아들도 부대에서 그 프로를 시청하고
있었으리라. 이 아이는 엄마가 어느 상황에서 우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울고 있었다! 언제 멈출지 모르는 눈물이었다.
내 젊은 시절 그를 천착했을 땐 그의 음악성을 식별해 낼 능력이 없었다. 단지 락(Rock) 이라는 장르가
저항정신과 자유로운 영혼을 추구한다는 점이 내 개인적 반골기질에 부합되어 즐겨 들었을 것이다.
마치 그러려고 나이를 먹은 것처럼 나는 이제 비로소 그의 음악세계를 이해하고 깊숙이 다가가고 있다.
대부분이 그랬듯 나 역시 <나는 가수다> 무대를 보면서 가수 임재범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여러 출연자 중에 유독 그가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과 주목을 받게 된 까닭이 비단 탁월한 가창력에만
있지는 않았다. 한사람이 지나온 삶의 궤적과 인간적 무게감이 고스란히 노래에 녹아들어
체화(體化)되었기에 사람들의 정서를 자극했던 것이다.
그동안 펑크와 잠적으로 일관하며 흥행운이 없던 그에게 1위 소감을 말하라 하자
“(다시는)펑크 안 내겠습니다.”라고 말해서 폭소를 자아냈으나 세 번의 무대공연을 끝으로 하차함으로써
약속과는 달리 결국 펑크를 내야만 했다. 뜻하지 않게 급성맹장염을 앓아 수술을 하게 됨으로써
더는 <나는 가수다> 프로에 설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가 부른 노래는 단 세 곡이었고,
시간을 다 합해도 십여 분일 것이며, 기간이래야 기껏 한 달 사이에 일어난 일에 불과했지만
그 여파는 상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그의 숨소리 하나까지 연일 화제가 될 정도로 세간의 뉴스거리로
부상했다. 심지어 나 같은 사람이 이 나이에 세칭 ‘팬질’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웃지 못 할 하나의
사회현상이 아닐까 싶다.
연민은 사랑의 상위개념일까, 그는 먼저 나에게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 내 젊은 시절 그의 노래에
위로 받으며 빚진 것이 많은데, 오랜만에 대중 앞에 나와서 세파에 물들지 않은 눈빛으로
거침없이 개인사를 얘기할 때의 솔직함에 전율했다. 방송에 나오기 직전까지 6, 7년간 우울증과
조울증을 앓으며 무력감에 빠져 최소한의 저작료로 근근이 살았다는 서글픈 비화, 암 투병 중인
아내와 어린 딸을 위해 출연을 결심했다는 것과 지금껏 자신의 내밀한 얘기를 풀어놓을 친구
하나 없이 처절하게 외로웠다는 고백이 남 얘기 같지 않았다. 마치 그가 내 자신의 상흔을 대신
까발려주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그의 TV 출연 이후 팬카페에 가입하는 등 미디어 뉴스를 통해
행적을 낱낱이 좇으며 대중에게 사랑받는 가수로 거듭나기를 빌었다.
이후로는 그가 몇 년 만에 여는 단독 콘서트에 들뜬 마음으로 달려갔다. 전석 매진된 드넓은 공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하고 호응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비주류 음악을 하며
잊혀져있던 반백 살 비운의 록 가수가 노래 세 곡으로 남녀노소의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음악적 성취를 목도하게 된 것이다. 그는 행복해 보였다.
연말엔, 보호자마냥 콘서트의 성공을 눈으로 확인하며 마음이 놓인 나는 다짐했다. 가창과
인간적 매력에 이끌려 집착했던 ‘팬질’을 이젠 끝내자, 그만 임재범을 버려도 되겠구나 싶었다.
하기는 그를 버리기로 했는데 어쩌면 그때부터가 본게임의 시작이었다. 껍질은 내다버리되
음악은 품을 것이기에. 세상은 다양해서 그에 대한 평가가 양극화로 치달을 수 있으나
나는 그의 음색만큼이나 거칠고 뜨거운 팬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소통할 곳을 찾아 젊은이들이 특정 연예인의 키드(kid)가 되어 열광하는 것도 그렇고,
한때 일본의 중년여인이 자신의 아들뻘인 남자연예인의 극렬팬이다가 한국까지 와서
실종돼버린 일로 인한 전반적 여론은 ‘이해할 수 없다’며 비웃었다. 연예인(예술인)을 좋아하는 일은
하등의 현실적 이해관계가 없는 맹목적 이타적 행위이련만 이를 비웃은 사람 중 하나였던 나는
임재범 일을 기화로 내 생각이 잘못됐음을 인정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하고 숭배할
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대상이 연예인이어도 좋고 인형이어도
좋고 강아지여도 좋을 뿐더러 한 종교의 신이나 경전이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샘솟는 내 안의
사랑을 쏟아내는 일, 그것은 본능 아니겠는가. 본능을 억누를 때 개인의 위악은 물론이고
각종 사회악이 생겨난다. 내 경우에도 이 가수로 인해 두 아들을 한꺼번에 군에 입대시킨 후
보고 싶은 그리움을 견뎌낼 수 있었다.  외롭다고 허접한 모임에 나가 나를 소모하지 않아도 되었다.
득 되지 않을 미래에 대한 불안감 또한 순간순간 잊을 수 있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선량해졌고
희망적인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간의 음악프로라고 해야 거의가 일명 아이돌가수들이 독점하고 있어서 평소엔 TV를 켤 일이
없었던 내가 지금은 곧잘 리모콘을 이리저리 돌리게 되었다. TV에 나오지 않는 음악은
음악이 아닌 것이 되어버린 시대에 새로이 우리 음악의 지평을 열어 보인 임재범 효과다.
감동이 전해지는 건 극히 짧은 순간이지만 그 감동을 만드는 건 무수한 고통과 노력이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가수다>프로에 나와 파워풀한 보이스 이면에 삶의 애환이 실린 독창적인
아름다움으로 기쁨을 주는, 그는 - 가수다!
나의 호들갑이 유별날 수 있겠다. 아니면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 시각에 임재범의 노래를
들으면서 마시던 소주잔에 눈물 한 방울 툭 떨어뜨리진 않으셨는지,
그랬다면 우린 벌써 암묵적인 친구이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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