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네.”
“이게 무슨 국인데요?”
국그릇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시어머니. 이윽고 마치 고장 난 레코드처럼 “아휴, 뜨끈하니 맛있네.”라는 말씀을 되풀이하기 시작하셨다.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 질문을 받으시면 엉뚱한 대답을 반복하시곤 했다. 무엇을 모른다는 말씀은 절대 안 하셨다. 망각의 세계가 어머니의 언어를 장악하고 있었다. 사물의 앞에 두고도 그 이름을 모르는 병, 치매. 나는 왜 어머니께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졌던 것일까? 그냥 “미역국 맛있게 드세요.” 하면 되는 것을. 못된 며느리가 따로 없었다.
혹시 “어멈아, 미역국 맛이 제대로구나! 참 잘 끓였다. 꼭 내가 끓인 그 맛이네.”라는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아! 그것은 내가 어머니께 바랐던 최고의 칭찬이기도 했다.
개성으로 시집오셔서 시할머니께 전수받았다던 어머님의 손맛. 유별나게 깔끔하고 담백하며 맛깔스러웠다. 작가 박완서의 소설 《미망(未忘)》에 소개되어 독자들의 시선을 모았던 그 개성 음식들. 그런 밥상을 우리는 누렸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자랑이었고 가족의 행복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독특한 비법을 소상히 알려주시는 일은 없었다. 며느리는 물론 시누이들에게 조차 입을 열지 않으셨다. 칭찬을 독차지하고 싶은 소망이 얼마나 크시기에 그러셨을까? 그 성역에 나는 감히 발도 디밀지 못하고 주위만 뱅뱅 맴돌곤 했었다.
어머니의 낙은 TV에 나오는 요리 프로그램을 시청하시는 것이었다. 직접 새로운 맛과 조리법을 창조하셔서 친척들을 놀라게 하셨다. 어쩌면 그것은 아버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유일한 탈출구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주방에 없을 때 어머니는 후딱 음식을 만드셨다. 그 속도를 이기지 못한 그릇들이 중구난방 조리대에 널브러져 있기 일쑤였다. 소낙비를 만난 듯 어수선한 부엌에서 나는 늘 망연자실했었다. 좀 가르쳐주시면 어때서 이러시는 것인지. 어머님의 정통 전수자는 누가 뭐래도 내가 아닌가?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을 기억한다고 했다. 어머니의 비밀스러운 어깨너머로 조리법을 외우고, 맛을 보고 또 보았으며, 튀김기름에 얼굴을 데어가며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어떡해서든 어머니께 인정받고 싶었다.
가족이 모두 출타한, 결혼 5년 차 즈음의 어느 한적한 점심때였다. 어머니와 나는 달랑 된장찌개 한 냄비를 앞에 놓고 김치도 없이 밥을 먹었다. 한참을 드시더니 “너랑 나랑 만 살면 이렇게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을. 참 맛있고 편하구나.” 하셨다. 순간 머리가 번쩍했다.
음식은 음식일 뿐이었다. 음식에 목숨 걸고 매달리는 것. 어쩌면 부질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요리라는 업보가 어머니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당신의 막내딸이라고 부르곤 하셨던 나에겐 그 마법이 손을 내밀지 않기를 바라셨는지도 모른다. 그해 여름 그 단출했던 소반은 이제 어머니와 나만의 전설이 되었다.
잠깐 틈을 내보이셨던 어머니는 다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셨고 나의 감질나는 종종걸음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익힌 음식들. 그리고 은밀하게 어머니와 나만이 공유했다 믿었던 맛의 세계. 그것은 이제 그 원천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침상에 미역국을 올리려 간을 보니 아! 그 맛이 찾아왔음을 느꼈다. 첫 애 출산 후 어머니가 끓여주셨던 그날의 그 맛! 꿈결처럼 그가 찾아왔다. 달큼하고 구수하며 가슴 속까지 개운했던 그것. 아지랑이처럼 기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느새 마음은 산모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어머니는 큰 솥에 쇠고기 양지머리를 두 근 넣고 푹 삶은 뒤 고기는 건져서 잘게 썰어두셨다. 그 국물의 반을 덜어내고 박박 씻어둔 대각미역을 넣고 집 간장으로 간을 했다. 그것에 참기름을 살짝 첨가하여 달달 볶았다. 어느 정도 미역이 간을 먹으면 나머지 국물을 조금씩 나눠 넣으며 푹 끓였다. 노랗게 국물이 배어 나오면 얼추 다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썰어 놓은 고기를 고명으로 얹었다. 마늘이나 파를 넣지 않아도 시원한 맛이 났었다. 수없이 많은 미역국 조리법이 있지만, 어머니는 늘 이 방법만을 고집하셨다. 단순한 음식일수록 간 맞추는 것이 비법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음식은 장맛이라고 늘 장 담그기와 장독대 관리도 각별하셨던 분이었다.
산모는 하루 7번 먹어야 젖이 잘 돈다고 어머니는 새벽 5시부터 상을 들이미셨다. 나는 졸린 눈을 미역국에 빠뜨려야 했다. 반찬도 없이 밥에 미역국. 게다가 7번이라니. 쉽지 않았다. 그래도 질리지 않았던 것은 그 정성 때문이었으리라. 또한, 우리 아이 먹일 양식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환상의 콤비였다. 어머니는 삼칠일 동안 미역국을 떨어뜨리지 않으셨고 나는 달게 먹었다. 두 번의 산후조리를 남에게 맡기지 않고 당신이 꼭 하겠다고 주장하셨던 것도 다 이 호흡 때문이셨으리라.
이제는 그 맛을 어머니 대신 내가 끓이고 있다. 아무리 흉내 낸다 한들 그분만 같으랴! 지나간 날들이 꿈속처럼 아련하기만 했다. 내 앞에서 달게 드시고 계신 이 어르신이 그날의 그 어머니일까?
내가 한눈파는 사이 어머니는 숟가락으로 드셔야 할 미역국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고 계셨다. 국물이 눈물처럼 뚝뚝 식탁에 떨어졌다. 그날의 그 미역국은 어디로 간 것일까? 맛만 돌아오고 시간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을까? 따뜻했던 그날의 밥상은 기억 속에 정갈하기만 한데. 그 시절 그 총명했던 어머니의 손끝은 어느 안갯속을 헤매고 있는 것일까?
어머니께 “맛있지요?”라고 여쭈니 “이런 것은 처음 먹어봐요. 언니가 한 것은 다 맛있어요. 어디서 배우셨어요?” 하신다. “다 어머니한테 배웠어요. 전에 어머니가 잘하시던 음식이잖아요. 생각나세요?” 라고 하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멀뚱히 나를 바라보셨다.
어머니는 갑자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시더니 “언니는 일등요리사예요. 정말 맛있어요. 어디 가서 이런 음식을 먹어봐요. 정말 최고예요.” 하시며 남은 미역국을 후루룩 마셔버리셨다. 나를 언니라 칭하는 어머니. 어머니는 진심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어쩌면 이렇게 정확히 한꺼번에 쏟아내시는 것일까? 텔레파시가 어머니의 머리가 아닌 가슴과 소통을 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어머니의 음식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미역국이 아닌가. 하지만 그러면 어떠랴.
“정말이세요? 그 말씀 진심이지요?” 하자 어머니는 “아휴! 그럼요 언니. 나는 거짓말 못해요.” 하셨다. 역시 누가 뭐래도 어머니와 나는 환상의 콤비였다. 우리는 함께 마주 보며 한껏 웃었다.
( 2012. 『한국산문』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