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처럼 가벼운
이집트를 여행하노라면 오시리스의 깃털 그림을 많이 보게 된다. 파라오 무덤 속 벽화에도, 여의도 면적만큼 거대한 카르낙 신전과 룩소 신전의 벽화에도, 미이라 관 덮개에도 천칭(天秤) 저울에 놓인 죽은 자의 심장과 깃털 그림이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영혼이 깃든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우면 괴물이 심장을 먹어 치우고, 깃털보다 가벼우면 오시리스 신이 다스리는 저승으로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된다고 믿었다. 심장과 깃털의 무게를 다는 것은 영혼의 선악을 판단하는 심판 절차다.
깃털이 추라니…소름끼치는 이야기이다. 얼마나 정결하게 살아야 나의 죄가 깃털보다 가벼울까. 내 죄는 너무 무거워 깃털이 아니라 쇳덩이를 올려놓아야 심장의 무게와 같지 않을까. 어떻게 살면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울 수 있을까.
빈민의 어머니로 살았던 테레사 수녀는 “주께서 제 안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둠, 냉담, 공허의 현실이 너무도 커 제 영혼에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했다. 확고한 믿음으로 살았을 거라 믿었던 그녀에게도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와 번뇌와 갈등이 있었다니 충격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가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래, 우린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니까. 인간이 영혼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오시리스의 깃털 저울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테레사 수녀는 자기 잣대가 너무 높았던 거다. 그래서 갈등도, 고통도, 채찍질도 더 크고 아팠을 터이다. 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캘커타에서 빈민의 어머니로 살다 가지 않았던가. 그녀의 쭈굴쭈굴한 얼굴, 굵은 손마디가 오버랩된다.
나는 때로 인간은 관성에 의해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의 내 모습이 관성이 되어 미래의 내가 되는 것이다. 어떡하든 사람의 눈에 그려진 내 모습 그냥 그대로 앞으로 나가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남들이 나를 그렇게 봐 주면 그것이 내 모습이라고 여기며.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 아닐까.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어 이게 내 모습이 아니라는 불안감이 들어도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춘기를 앓던 시절, 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아니 나라는 인간 자체가 부끄러웠다. 거울로 보이는 내 모습 뿐 아니라 쇼 윈도우에 비치는 내 모습조차도 부끄러웠다. 내 생각과 생활이 고스란히 나타난 내 몸이 부끄러웠다. 나는 흠 없는, 이슬 같은, 코스모스 같은 존재이고 싶었는데…동물의 욕망을 가진 나는 맑고 투명한 영혼을 가질 수 없음에 좌절했다.
거기서 나는 지금 얼마나 멀리 벗어나 있는가. 그 때에 비하면 내 영혼은 덕지덕지 기운 누더기를 걸쳤다. 지금 생각하면 사춘기 시절 내 부끄러움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조차 죄라는 인간의 원죄의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것이 내 삶을 가둘 수는 없다.
영혼의 무게가 궁금하다. 영화 《스모크》에는 담배 연기의 무게를 재는 방법이 나온다. 먼저 안 피운 담배를 저울에 재고, 피우고 난 꽁초와 재를 저울에 달아 처음에 재 놓은 담배 무게에서 뺀다. 어쩌면 이런 식으로 영혼의 무게도 잴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영혼의 질량을 측정함으로써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실험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 정신물리학을 연구하고 1차 세계대전 중에 전쟁신경증 환자를 치료한 맥두걸 박사(1871-1938)는 자신의 실험에 동의한 죽어가는 환자들을 저울 위에 눕혀놓고 임종의 순간에 얼마만큼의 질량이 감소되는가를 측정했다. 그 결과 20-30그램 정도의 질량이 감소되었다고 한다. 한때 마돈나의 남편이었던 숀 팬의 연기가 압권이었던 영화 《21그램》에서는 영혼의 무게가 21그램이라 했다.
심장의 무게는 남성이 280-340그램이고 여성이 230-280그램이라고 하는데 대체 어쩌자고 이집트인은 오시리스 깃털을 추로 달았을까. 우리 인간은 아무도 정결하지 않다는 역설이 아닐까. 그리하여 인간은 아무도 남을 정죄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성경에는 심판에 대해 참으로 무서운 말이 있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 심판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며 너희가 저울질 하는 그 저울질로 너희가 저울질 당할 것이다.”
내 영혼이 진정 맑고 투명하다면 모든 일에 거칠 것이 없을 것이다. 아, 진정 그리할 수 있다면, 그 순간만은, 그렇다, 그 순간만은 내 심장의 무게가 깃털만큼 가벼울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