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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김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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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당 넓은 집    
글쓴이 : 김미원    13-01-29 23:49    조회 : 4,980
 
마당 넓은 집

김미원

 내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살던 우리집은 이층집으로 불렸다. 그러나 나는 쌀가게 주인이나 미장원 아줌마가 우리집을 이층집으로 부를 때마다 부끄러웠다. 일층과 이층의 면적을 같게 올린 정식 이층집이 아니라 대문과 가까운 별채만 이층으로 지은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담쟁이 넝쿨이 운치 있게 휘감아 올라갔던 부잣집 냄새가 나는 그 이층은 주로 세를 주어 정작 주인인 우리는 그 곳에 살아보지 못했다. 하여튼 동네에서 이층집이라 불린 그 집에는 기역자로 안채에 연결된 방이 3개, 부엌 딸린 방이 2개, 별채 방 2개까지 모두 7개의 방에 네 가구가 모여 살았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본채 마루 중앙에 피아노와 냉장고가 보였다. 그 동네에 냉장고 있는 집은 조금 있었지만 피아노 있는 집은 거의 없어 대문을 열고 집을 들어갈 때면 나는 기분이 좋았다. 피아노에 재능이 없어 겨우 체르니 100번을 마친 정도인 나에 비해 아버지는 ‘울밑에 선 봉선화’나 ‘운다고 옛사랑’이 같은 노래를 피아노를 치시면서 부르셨다. 한창 흥이 오르면 멋을 부리느라 바이브레이션을 넣어가면서 노래를 하시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게 나는 좋았다.
 사춘기를 보낸 그 집을 생각하면 참기름과 새우젓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 고소한 냄새가 나는 듯하다. 내 방 옆에 살던 새댁은 결혼 전 은행에 다녔다는 제법 똑똑한 여자였다. 얼굴이 크고 허연 그 여자는 남편이 출근하면 하루 종일 잠을 자다 오후 5시쯤 저녁을 짓기 위해 남산만한 무거운 배를 내밀고 마당 펌프가로 나왔다. 날이 갈수록 보름달처럼 더 커진 그녀의 얼굴과 배를 보며 나는 결혼은 똑똑한 여자를 바보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남긴 최고의 레시피는 죽을 만들 때 불린 쌀을 참기름에 볶다가 새우젓으로 간을 하는 거다. 그녀가 아기 이유식을 만들 때 맛있는 냄새가 진동해 나는 어린 아가가 부럽기까지 했다.
 대문에서 제일 가까운 방에는 노총각인 백정아들과 노모가 오순도순 살았다. 엄마는 그 아들이 마장동에서 소를 잡는다며 칼을 다루는 무서운 사람이라고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퇴근 때면 소고기 등속을 들고 들어오던 효심 깊은 아들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층집에는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집에서 노는 큰 언니, 고등학생, 중학생 딸 셋을 둔 장사를 하는 중년부부가 살았다. 어느 날 엄마가 부침개를 갖다 주라고 해서 무심코 방문을 열었는데 얼굴이 이쁜 큰 언니가 남자랑 있다 무척 당황한 얼굴빛을 보였다. 발개진 언니의 얼굴을 보며 뭘 잘못한 거 같아 문을 후딱 닫았지만 조악한 극장 간판을 보며 한글을 깨우쳤던 나는 그 순간 내가 모르는 달뜬 세계를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큰 언니는 결혼을 했다.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나오고 실내에 화장실이 있는 가끔 놀러가던 친구네 마포 아파트가 신기했지만 나는 마당 넓은 우리집이 더 좋았다. 그래도 싱크대가 있던 부엌은 부러웠다. 나는 지금도 밥짓는 일이 힘들 때면 무거운 밥상을 들고 미닫이문을 열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고 또 올라가야 했던 식모라는 이름의 언니들을 떠올린다. 지금 생각하면 사춘기를 갓 벗어난 겨우 열여섯이나 열일곱 살쯤 먹은, 월급 조금 주고 시집갈 때까지 데리고 있다가 혼수라도 해 보내는 식구 같은 언니들이었다. 그 시절은 밥만 먹여주면 되는 시골에서 올라온 언니들이 많았던 때라 우리집에는 한 번도 식모가 없던 적이 없었고, 때론 두 명의 언니가 있기도 했다.
 한 언니는 남진과 나훈아를 무척 좋아해 고 곽규석 씨가 진행하는 쇼 프로그램이 방영되는 토요일 저녁이면 주인 눈치도 아랑곳하지 않고 TV 앞에 바싹 앉아 남진이나 나훈아 노래에 빠져들었다. 그 무렵 송대관의 ‘해뜰날’이란 노래가 유행했는데 그녀가 해뜰날이란 노래를 힘차게 부를 때면 나는 한글도 모르는 그 언니가 정말 해뜰날을 맞이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 시절 겨울은 얼마나 추웠는지 웃풍이 너무 세 아랫목과 윗목의 온도차이가 컸다. 윗목이불장에서 나프탈렌 냄새가 나는 뻣뻣하고 차가운 하얀 옥양목 요와 이불을 펄펄 끓는 아랫목에 폈을 때 우리 형제들은 서로 먼저 들어가지 않으려고 싱갱이를 벌이기도 했다. 꾹 참고 한 번에 이불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형제들과 체온으로 몸을 녹이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면 온기가 올라 어느덧 잠이 들었다.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는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어둑해져서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를 때에야 마지못해 친구들과 헤어졌다. 하루는 집 앞 골목에서 놀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역사 선생님이 지나가셨다. 놀던 것을 집어치우고 선생님 뒤를 따랐는데, 선생님은 고개를 몇 구비나 넘어 비탈길에 있는 조그만 집으로 들어가셨다. 돌아오는 길, 우리나라 역사와 세계사의 사건과 연도를 줄줄 외는 서울대 사학과를 나온 선생님이 이런 허름한 곳에 사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나중에 선생님은 내가 뒤를 밟은 것을 아셨는지, “너 몰래 나 따라왔지?”라며 두꺼운 검은 뿔테 안경 속으로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셨다. 선생님은 왜 아는 체를 하시지 않았을까, 그 먼 길을 따라갔는데 집으로 데리고 가 과일이라도 주실 수 있지 않았을까.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그 시절 기억들이 넝쿨에 달려 나오는 고구마처럼 이어져 나온다. 후각, 청각, 시각까지 내 감각기관이 다 열린 듯하다. 경보극장 앞 굴다리 좌판의 해삼, 멍게 냄새도 나는 듯 하고, 백정아들과 같이 살았던 노모의 허스키 목소리도 들리는 듯 하고, 피아노를 치시던 아버지 뒷모습도, 이층집 큰 언니 얼굴도 보이는 듯하다.
 마당 넓은 집의 생생한 기억들이 어제일인 듯 바로 손에 잡힐 듯한데 세월이 까마득히 흘렀다는 사실이 나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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