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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유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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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드는 일    
글쓴이 : 유시경    13-02-15 02:45    조회 : 6,380

길드는 일
 
 동네 아주머니가 강아지들을 분양한다고 하여 그 중 한 마리를 이십만 원의 거금과 맞바꾸었다. 불과 1.4킬로그램의 체중에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애프리코트(Apricot)’종의 암캉아지였다.
 갈색 애프리 푸들은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빨려들 것만 같은 새까만 눈동자가 유리알을 박아놓은 듯했고, 곱슬곱슬하며 윤기 나는 털은 코코아로 만든 진한 초콜릿 범벅과도 같았다. 이름이 ‘쿠키(Cooky)’라고 하였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애완견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며 나는 꾸준히 쿠키를 길들여나갔다. 한 해가 지나자 쿠키는 소녀로부터 처녀로 상승되었다. 사람들은 애완견을 깨끗하게 키우려면 우선 중성화수술을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시끄러운 게 싫다면 성대제거수술까지 해 주는 게 좋다고들 하였다. 큰 수술을 경험한 적이 있는 나는 2킬로그램도 안 되는 어린 개에게 칼을 대는 것이 가혹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여 그 어떤 수술도 쿠키에게 해주지 않았다. 다행히 그것이 영특해서인지 제가 해야 할 몫을 잘 알고 있었다. 일 년에 두 번씩 보름이라는 기간 ‘정체성’의 시기를 겪을 때마다 제 집에서 나오질 않았다. 입맛도 없는지 먹이도 잘 먹지 않고 의기소침해 있었다.
 예방접종이니 구충이니 미용이니 하는 부수적인 비용들을 합하면 실로 아기 하나를 더 키우는 셈이 되었다. 배변습관과 먹이조절 법, 사람에 대한 예의나 서열 등을 가르치는 것 모두 내 몫이 되었다. 키운 지 두 해가 지나가는데도 몸무게는 좀처럼 늘지가 않았다. 먹이를 주고 많이 쓰다듬어주는 게 최고라 인식한 쿠키는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내 품에 안겼다. 가족 가운데 서열 일 위가 된 셈이다. 누군가와 심하게 다투고 난 뒤 눈물을 흘리고 앉아있으면 앞으로 다가와 내 눈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정말 좋은 것은 애완동물의 따스한 체온이었다. 모두가 잠든 밤 책상 앞에 앉으면 쿠키는 어슬렁어슬렁 기어와 의자의 뒤편에 올라가 얌전히 엎드렸다. 삐걱거리고 틀어지는 내 허리 밑을 따뜻하게 받쳐주었던 것이다. 손발이 유난히 찬 나로서는 한겨울에 애완견의 체온은 그 어떤 치료기보다도 더 훌륭한 것이었다.
 
 온가족이 바깥일에 매달리는 까닭에 쿠키는 애물단지가 되어갔다. 사랑을 절실히 원하는 것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다 나가버리고 난 뒤 그 어린 암캐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으슥한 밤 현관에 들어서기도 전에 유리문을 박박 긁어대며 “흐응흐응”거리는 그 몸짓을 보면 알 수 있다. 문을 열기가 무섭게 가슴에 안기는 쿠키의 따스함이 위안이 됐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본능이란 그 누구도 어쩔 수가 없는 것. 나는 이제 쿠키를 놔줘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더 깊은 정이 들기 전에 그 여성성과 야성의 본질을 찾아 내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결국 고철을 수집하는 남편의 고향친구에게 쿠키를 떠맡기다시피 넘겨버렸다. 쿠키는 자신을 안고 있는 내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그의 손등을 물고 말았다. 고물을 한 차 실은 트럭의 조수석, 고물장수의 아내 품에 안겨 다시는 만나지 못할 곳으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쿠키는 잊힌 듯하였다. 의자에 앉으면 엉덩이 뒤편에서 작은 몸뚱어리가 꿈틀거리는 것만 같았다. 따뜻했던 쿠키의 체온을 견딜 수 없던 나는 그 자리에 강아지만한 팥 주머니를 만들어 뜨겁게 달궈놓았다.
 ‘나는 날마다 똑같은 생활을 하고 있어. 나는 병아리를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지. 병아리들은 모두 똑같이 생겼고 사람들도 다 똑같이 생겼지. 그래서 난 좀 지겨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내 삶은 환하게 밝아질 거야.’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하는 말이다. 왕자가 자신을 길들인다면 밀밭을 볼 때마다 어린 왕자의 머리칼을 떠올리게 되며, 밀밭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조차 사랑하게 되리라는.
 
 지금 내 곁에는 쿠키가 없다. 한 달이 지나고 두 해가 지나고 어언 삼 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으나 나는 여전히 달콤했던 애완견과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다. 코코아와 초콜릿 과자, 갈색 스웨터나 가을 낙엽들과 같이 촉촉하고 진한 갈빛의 물건을 대할 때마다 나의 쿠키가 생각난다. 누군가에게 정을 준다는 것은 행복한 길들임이지만, 주었던 정을 잊는 ‘길’처럼 괴로운 것도 없다. 상처와 연민 그리고 향수(鄕愁)처럼, 그 어린 개 한 마리가 내 기억의 한구석에 떡하니 자리 잡고 앉아있는 한 나는 더 이상 다른 동물에게 정을 주기가 힘들 것 같다.
 초콜릿 덩어리처럼 생긴 쿠키가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알고 싶지 않다. 고물수집상 마당 한쪽에 묶여 다른 개들과 피를 섞고 새끼를 몇 차례 낳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애프리 푸들’이라는 사실을, 집 밖에 나가본 적 없는 애완견이었다는 사실을, 어느 집 의자 뒤편에 얌전히 엎드려 주인의 허리를 데워주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을지도 모른다. 동네 수캐들이 냄새를 맡을 때 돌아서 짖으며 한때나마 개가 아닌 인간으로 살았다는 착각에서 비로소 벗어났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당당히 그들과 함께 호흡하며 자신이 애완견이 아닌, 그저 한 마리 평범한 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길들고 있을 것이다.
 
- 2012 <군포시민문학> 겨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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