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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후감]홍루몽    
글쓴이 : 임도순    13-03-15 15:46    조회 : 6,991
 
[독후감] 홍루몽(2009.7.10 초판발행, 나남출판사, 조설근)

  ‘여자는 커가면서 열여덟 번은 변한다.’
  ‘비루먹은 개는 받쳐줘도 담을 넘지 못한다.’
  ‘조롱박이면 다 바가지로 알고 있다.’
  ‘공연히 닭을 가리키며 개를 욕한다.’
  ‘자랑 끝에 불붙는다.’

  중국의 속담들이다. ‘홍루몽’에서 꺼낸 말들인데, 독후감에 넣을까말까 몇 번이고 만지작거리던 웃음꽃들이다. 우리 속담에는 이와 비슷한 말들이 무엇이 있을까? 

  저자 조설근(1715~1763)은 조선 영조시대쯤의 문인으로서 중국 북경의 외곽지대인 향산 아래에서 어렵게 살았다. 남경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초년에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가문이 몰락하는 바람에 불우한 처지로 떨어진 것이다. 과거의 영화를 더듬어 소설로 썼는데, 250년 만에 내 손에 들렸다. 이 소설이 우리나라에 2009년에 완간되어 처음 소개되었다는데, 이미 읽었던 사람들이 있지 않았을까? 나는 2010년4월15일자 초판2쇄본을 2012년 1월 한 달간 입원한 병실에서 읽었다. 불우한 시절에 쓴 소설인지라 불편한 시기에 읽기에 적당했다. 읽다가 잠들고 꿈꾸다 깨어나서 약 먹고 다시 읽고.   

  이런 몽자류 소설이 이미 우리나라에 15세기 김시습의 ‘남염부주지’와 17세기 김만중의 ‘구운몽’이 있었고, 19세기에 남영로의 ‘옥루몽’이 있다. 나도 이런 글 한 편 쓸 수 있을까?  허나 어려울 것 같다. 작가처럼 좋았던 시절이 없다. 좋은 추억이라야 고작 몇 편의 조각들뿐이라 편지 몇 장이면 끝날 것이다. 애시당초 작가처럼 큰 글을 쓰기에 맞지 않다면 책속에서나마 진귀한 술과 음식을 준비하고, 한담을 나누며 웃을 수 있으니 이만한 즐거움도 어디인가.
 
  흔히 중국의 ‘4대 기서’에 이 ‘홍루몽’을 더하여 ‘5대 기서’라 한다. 우리에게도 ‘6대기서’, ‘7대 기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중국에 황하가 있어 고대인류로부터 문명을 일으켰으니 국가의 흥망성쇠와 문화가 여러 차례 변하며 발전을 거듭해 왔을 것이다. 그들의 속담에 다분히 혁명적인 것들이 몇 개 있다. ‘제 한 몸 능지처참 당하는 판이면 황제라도 말에서 끌어 내린다’와 ‘용의 종자도 아홉 가지가 있다’ 등이다. 이것들을 보면 그동안 역성혁명이 얼마나 많았고, 이런 속담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내부로는 일렁이고 있다는 경구이다. 수많은 국가가 탄생하고 소멸하는 사이에 기라성 같은 영웅들이 나오고, 그 만큼 백성들이 도탄에 신음했을 것은 뻔한 이치다. 대부분 남자들은 싸움터에서 일생을 마감하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고난의 역사가 깊을수록 시대를 반성하는 학문이 대두되고, 희망을 전달하는 문학이 그때마다 나타나는 것은 홍루몽을 봐서라도 짐작이 된다. 중국은 땅덩어리가 유럽전체와 비슷한데도 하나의 통일된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의 그리스 등 유럽 국가들의 부도사태를 보면 중국 속담이 생각난다. 오늘날의 중국이 그래도 큰 탈 없이 국가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대국의 면모를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국은 문화 없이 지속될 수 없다. 그리스와 달리 중국은 예전의 문화를 파괴했고 다시 그 터전위에 새로운 문화를 세우고 있다. 문화의 진화를 발견한 것일까? 과거의 화려했던 상류사회의 생활과 밑바닥 인생의 삶을 두루 겪은 작가의 대하소설이 이런 변화를 예감하게 하니 작가의 고난이 예사롭지 않다.     

  대국의 문학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변화를 두고 말하는 것일까.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 소동파와 도연명, 이백과 두보가 살다 간 나라다웠다. 그들의 고뇌와 한숨으로 얼룩진 일생이 문장과 글자에 신령스러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성인과 문장가들 덕분에 그들의 언어가 더욱 아름답게 연마되었는지 모른다. 이런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언어생활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혜를 누린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따로 학교나 학원에서 배우지 않아도 시인의 자질을 타고 난 것이나 다름없다. 수많은 시인들 중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몇몇 시인의 구절을 외워 응용하기만 하면 시인취급을 받을 수 있고, 핵심적인 글자 몇 자를 붓으로 쓱싹 쓰기만 하면 곧바로 서예가요, 거기에 맞춰 독한 고량주 몇 잔이면 ‘시선詩仙’이 되고, ‘시성詩聖’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의 디지털시대에 소리문자인 한글이 그 뜻을 쉽게 전하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영어의 알파벳보다 모음과 자음 수가 적어 다루기가 훨씬 유리하다고 한다. 하지만 무작정 좋아할 문제가 아니다. 전달하기가 ‘쉽다’, ‘용이하다’는 것은 ‘어떻게’에 해당하는 수단을 강조한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을’에 해당하는 ‘내용’인 것이다. 문화는 ‘내용’이지 ‘수단’이나 ‘속도’가 아니다. 그렇다고 속도가 빠르다는 것도 자랑으로 내세울 게 못된다. 핵심을 향해 소걸음으로 천천히 도달한 것과 ‘우사인볼트’처럼 초스피드로 달릴지라도 목적지를 수정하여 늦게 도달한 것을 비교한다면 무작정 빠르다고 해서 절대 빠른 게 아니다. 속도도 목표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목표 없이 분주하게 왔다갔다하는 것들이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가.    

  우리글이 아름다워지고 사용인구가 많아지면 우리는 교육에 투자할 시간을 그만큼 절약할 수 있다. 한글이 여러 국가에 퍼져나가고, 인터넷으로 쉽게 대화하고, 많은 정보를 교류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간편한 생활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면 우리는 한글의 혜택을 톡톡히 볼 수 있다. 그러면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유학을 가고, 학원을 가면서 허비해야 할 젊고 싱싱한 시간과 경비를 절약할 수 있다. 시민권을 팔아서 국가수입을 늘리고, 한글 수필이 전 세계에 많은 저작권료를 받고 팔리게 될 것이다. 그때가 오면 나는 수필을 팔아 갑부가 될 수 있다. 보트를 장만하고 인도양의 넓은 바다로 나가 비행하는 날치 떼를 만날 수 있다. 어서 한글이 대접받는 시기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에 찬물을 끼얹는 인간들이 꼭 있기 마련이다. 바로 정치인들이다. 그들의 언어는 다분히 직업적이고 일단은 장황하다. 말을 끝까지 들어야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특수한 언어이다. 말의 방향이 언제, 어디쯤에서 바뀔 줄 짐작이 되지 않는다. 말하고 비틀고, 해명하고가 하루의 일과이고 뉴스의 주요메뉴이다.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무성한 말들. 전달력이 약한 말들은 목표 주위를 혼란케 함으로써 ‘불신不信문화의 재창조‘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시킨다. 아마도 티벳인들이 이런 말을 들었다면 분명 혀가 검기 때문일 거라고 단번에 진단을 내릴 것이다. 명상하고 도 닦을 시간도 없는데 말이다.  

  홍루몽의 등장인물은 480명이나 된다. 요샛말로 KBS사극 120회에 해당하는 장편대하드라마쯤 된다. 18세기 중엽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을 총망라 한 이 소설에 대하여 ‘중국전통사회의 백과사전‘이니, ’고금을 망라하고 만상을 포용한 작품‘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하다. 소설의 주제를 놓고 200년째 문인들이 논쟁을 해 오고 있다하니 그들의 엄살 섞인 광고도 그렇지만 이만한 소설을 써낸 저자가 대문호大文豪처럼 느껴졌다. 실제 과거의 귀족들은 모두 이만한 삶들을 살지 않았을까? 중국의 사상가 ‘노신魯迅’은 ‘작품의 주제가 여러 가지지만 뚜렷하게 이거라는 것은 없다’고 했다. 

  이야기는 ‘대관원’이라는 대장원에서 가假씨 삼 대가 살림살이를 펼치면서 생겨나는 세세한 사건들로 구성되어있다. 이 집안의 딸 하나가 황제의 애첩인지라 살림살이라는 게 부富의 극치를 달리는 호화판 생활들로 이뤄져있다. 지방의 소유 토지를 농민에게 소작시켜 얻은 소득과 지방의 희귀한 토산물을 사들여 요리하고 약을 짓는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생각하지도 않은 이름들이라서 신기했다. 여성들의 주령酒令놀이와 시사모임에서는 과연 신선놀음이 따로 없구나할 정도였다. 어찌 이런 놀이들을 상상이나 하여 보았을까? 홍석중의 소설 ‘황진이’에도 문자를 가지고 노는 놀이가 몇 줄 나오긴 한다. ‘상직할멈’과 ‘이금이’가 벌이는 문자 놀이다. 천자문 적은 패쪽을 뒤집어놓고 번갈아가며 하나씩 뽑아, ‘시경’이나 목은의 ‘부벽루’등 유명한 옛 싯구를 맞추는 ‘시패놀이’가 그것이다. 홍석중이 홍루몽을 미리 접해보았거나 아니면 서당훈장이 천자문 교육차원에서 개발한 교육놀이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놀이가 홍루몽에서도 진행된 것이다.

  대관원에 모인 젊은 청춘 남녀들이 ‘아호짓기’와 서화첩을 만드는 등 ‘시사모임’을 하는데 꿈같은 나날들이다. 젊은 남녀 쌍쌍이 모여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별명을 부르며 깔깔거리고, 벌주를 내리면 눈을 흘기며 마시고, 누각의 밖은 따스하고 복숭아꽃은 익어 얼굴을 붉히는 봄날이다. ‘시제’를 정하고 문자와 함께 놀면서 초하객蕉下客, 소상비자瀟湘妃子(소상강의 어여쁜 여자), 형무군?蕪君(거친 족두리풀 쓴 낭군), 무사망無事忙(하는 일없이 바쁘다), 강동화주絳洞花主(붉은 동굴의 꽃주인) 등의 ‘아호’를 부르는 그네들이 정답기 그지없다.   

  국화도 화려하게 피어 서화첩의 소재가 되었다. ‘억국億菊(기억하다), 방국訪菊(찾아가다), 종국種菊(찾아가서 얻어 심다), 대국對菊(꽃을 심어 만개하면 이를 마주 대하고 감상하다), 공국供菊(마주하다 흥이 남으면 꺾어다 병에 넣고 즐기다), 영국詠菊(병에 꽂아 올려놓고 읊어보지 않으면 국화가 무색해지다), 화국畵菊(노래에 실리면 필묵에 싣지 않을 수 없으니 이를 그린다), 문국問菊(국화를 위해 이처럼 수고하면서 국화의 아름다움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어 묻는다), 잠국簪菊(국화가 능히 말을 할 줄 안다면 사람을 미칠 듯 기쁘게 한다), 국몽菊夢(모든 사연이 다 끝나다), 국영菊影(아직도 노래할 것이 남았다), 잔국殘菊(성대함을 그린다)’이 열두 편의 시가 되어 서화첩으로 남게 되었다. 후세사람들은 오늘의 이 놀이를 기억하며 그윽한 묵향과 국향을 다시 노래할 것이 분명하리라.      

  작가는 은연중에 부귀가문의 몰락을 얘기하였다 ‘다리 백 개 달린 지네는 죽어서도 꿈틀거린다.’는 격언을 빌어 ‘세상의 대갓집이란 밖에서 공격을 가해서는 절대로 일시에 망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반드시 내부로부터 망해 들어가야 비로소 완전하게 대갓집이 몰락하는 법이라 한다. 마치 작가 집안의 내막을 고발한 듯하지만, 결코 작가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홍루몽 작가는 일약 국가적인 거장이 되었다. 작가는 이 사실을 모른 채 48세의 나이에 홍루몽의 태허진경으로 들어갔지만 그의 작품이 세계적인 명품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권문세가의 저택이 불타고 남은 폐허에 새로운 꽃들이 피어난 것이다. 몰락과 파괴는 새로운 환경을 가꾸기 위한 쟁기질과 씨뿌리기일까. 명예를 탐하고 지위를 탐하는 것은 다 멀리 돌아가는 길이다. 하지만 멀리 돌아가면서도 이런저런 쓸데없는 것들을 구경하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게 인간 ‘오딧세이’의 여정이라고 찬탄한다면, 홍루몽이 그 여정을 여실히 보여 준 것이나 다름없다.   

  홍루몽! 

  책을 옆에 두고 두고두고 읽으면서 가끔은 한가로운 단꿈도 꾸고 싶다. 꿈속에서 손님을 만나 차릴 식단을 여러 곳에서 찾아 챙겼다. ‘찻물에 말은 밥’, ‘만염동배주萬艶同杯酒’, 신선들이 먹는 ‘해상海上’알약, ‘꿩고기장조림’, ‘메추리고기 튀김’, ‘가지절임’, ‘미당’서정주의 시 한 편. 그리고 중국속담 하나.

  ‘떠도는 부평초라도 만날 날이 있다.’   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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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레시피
(1)매설차: 매화꽃송이 위의 눈을 모아 끓인 차
(2)만염동배주: 백종의 꽃수술, 만종의 나무진, 기린의 골수, 봉황의 젖으로 빚음
(3)해상처방: 봄에 피는 흰 모란의 꽃술 12냥, 여름에 피는 흰 연꽃의 꽃술 12냥, 가을에 피는 흰 부용의 꽃술 12냥, 겨울에 피는 흰 매화 꽃술12냥을 다음해 춘분 날 볕에 말려서 (약의 효험을 일으키도록 도와주는 약물이나 가루약과) 갈아서 우수에 내리는 빗물 12전, 백로에 내리는 이슬 12전, 상강에 내리는 서리 12전, 소설에 내리는 눈 12전을 넣어 약을 만들어, 벌꿀 12전과 백설탕 12전을 넣어 용안크기만한 환약을 지어 오래된 도자기 단지에 넣어 꽃나무 아래 묻어두고 아플 때마다 꺼내어 12푼의 황백 삶은 물로 복용 한다 
(4) 가지절임: 방금 따낸 가지의 껍질을 벗기고 속살을 실같이 썰어 닭기름에 튀긴 다음. 닭 가슴살, 표고버섯, 죽순, 목이버섯, 오향을 넣어 말린 두부, 각종 말린 과일 등을 가늘게 썰어 닭 국물에 졸인 후 말린 다음 참기름을 치고, 향유를 무쳐 사기항아리에 넣어 봉해두었다가 먹을 때 볶은 닭고기와 버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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