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쯤 되면 보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학생들 얼굴만 보아도 어디가 아픈지, 아픈척하는 꾀병인지 거의 한 눈에 보인다. YMCA 청소년상담실의 상담원도 겸했던 나는 꾀병을 부리는 아이들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적당히 받아주고 달래어 교실로 되돌려 보내기도 했지만, 잠시 누워 쉬게 하며 한두 번 속아주는 게 약이 되기도 했다.
아파서 스스로 찾아오는 학생들 외에 각각의 건강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아이들 얼굴을 마주볼 기회가 필요했다. 해마다 신학년도가 되면 나는 전교생 모두를 직접 대면 상담하는 대대적인 작업을 벌였다. 신입생은 더욱 신경을 썼다.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판단된 학생은 정기적인 상담을 하며 계속 관찰했고, 상담일지는 내용이 추가되면서 졸업할 때까지 각자의 건강관리에 참고가 되었다.
사고 후 교내에는 암울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신문기자들이 먹이를 본 독수리처럼 발톱을 세웠고, 엄중한 교육청 감사반도 출동했다. 교무부장이 나를 찾았다. 그는 감사에 대응하기 위해 그 학생, J를 지도한 기록물을 수집하고 있었다. 우울증이 있는 J는 내가 이 년여 지켜보며 특별히 관리했던 학생이었다. 아마 백 번도 더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을 아이. 보건실 상담일지에는 J와 이십여 번의 면담내용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J를 만난 건 신입생 상담 때였다. 또래보다 체격도 좋았고 겉으로는 건강해 보였다. 대뜸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수업시간에 지명되어 책을 읽을 때 말을 더듬는다는 아이. 처음 본 나에게 부끄러운 고백을 털어놓기까지 그동안 J는 얼마나 창피하고 답답했을까.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정의 자녀이었고, 최근에 좋아하고 따르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 말고는 특이한 사항은 발견치 못했다. 여학생 말더듬이는 흔치 않다. 게다가 평소에는 멀쩡하다가 교실에서 대표로 책을 읽을 때만 더듬는 현상은 J에게 내재된 어떤 심리적인 문제가 신체적으로 표출된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정신과 상담을 받아볼만한 이유였다.
마침 서울시교육청에 설치된 학교건강관리소의 정신과에서는 보건교사가 의뢰한 학생에게 무료로 세 번의 인터뷰를 해줬다. 가끔 이용해왔던 그 제도를 활용하기로 했다. J는 기꺼이 정신과전문의와 상담하러 가겠다고 했지만 만만찮은 건 부모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J어머니도 인터뷰를 받아들였다. J가 예쁘고 친절한 여의사선생님과의 면담을 아주 좋아했다는 것도 좋은 징조 같았다. 그러나 J의 상태는 예상 밖으로 심각했다. 의사의 소견은 우울증과 다른 문제도 있어 더 큰 병원의 진료와 입원치료가 필요하다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증상이다. 성인과 마찬가지로 청소년도 좌절, 실망감, 상실감이 크면 우울증이 나타날 수 있다. 가족 간의 갈등, 부모의 죽음이나 이혼, 아동 학대 등이 청소년 우울증의 주된 원인이다. 이 같은 일을 겪은 후 이전과 달리 짜증이 늘거나, 집중력 장애, 학습능력저하와 더불어 복통이나 두통 등을 호소한다면 우울증을 의심해 볼 수 있다. 특히 등교 거부, 친구들과 불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정신과 전문의의 상담이 필요하다. 단 한 번의 전문의 상담만으로도 우울감이 상당 수준 감소하고 자신감을 얻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 경험에 의하면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결과를 불러오는 우울증으로 진단받은 학생이 실제로 전문치료기관에서 치료받은 경우는 드물었다. 우울증이 정신병이라고 보는 부모의 편견 때문이었다.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J의 부모는 여기저기 병원을 알아보고 입원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의 말에만 솔깃해했다. 딸이 정신과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그들은 주위에서 눈치 채지 못하도록 통원치료만을 고집했다. 치료시기를 놓치는 것 같아 걱정스러웠지만 도리가 없었다. 흔히 학부모들은 자녀가 우울증 증상을 보이면 마음이 약하다고 다그치고, 그를 부끄럽게 여겨 숨기려고 하다 결국 더 악화된 후에야 당황하고 후회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학교현장에서 종종 부딪치는 안타까운 현실이 또 나타난 것이다.
J는 조금 나아지다 시나브로 나빠지기를 반복하면서 이학년이 되었다. 아이는 등교하기 위해 매일 육교를 건너와야 했는데 어느 날부터 그곳을 지날 때마다 자꾸 무서운 소리가 들린다했다.
“뛰어내려. 뛰어내려. 떠밀어 버릴 거야.”
환청이었다. 아이는 계속 시달렸다. 너무 두려워 죽어버리고 싶다고도 했다. 제때 제대로 진료를 받았다면 치료될 수도 있었던 아이는 이미 만성화의 길로 들어섰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내가 염려한 것은 J의 집이 아파트 육층이라는 것이었다. 우울증은 증상이 심각할 때보다 호전되면서 자살사고가 일어난다. 부모에게는 아이의 충동적인 투신사고가 우려된다는 주의말씀을 드렸었다. 알고도 모를 것이 부모 마음인지 딸이 삼학년이 되고 상태가 나아지자 좋은 고등학교에 보내겠다는 욕심을 부린 것이다. 과외를 강요받은 아이는 몹시 힘들어했다. 학교에선 사십오 분의 수업을 견디지 못해 하루에 몇 번씩 나를 찾아오기도 했다. 횟수가 잦아졌다. 결국 J는 삼층 밖으로 자신을 내버리는 끔찍한 방법을 선택했다.
진실로 노심초사 잘 자라길 바라며 물을 주던 꽃은 허망하게 지고 말았다. 침통했다. 장례식장에서 눈물범벅이 된 J어머니와 말없이 두 손을 맞잡았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떼었다.
“선생님께는 정말 죄송합니다.”
연민과 분노의 눈물이 내 눈에서도 흘러나왔다. 나도 위로를 받고 싶었다.
J의 부모는 딸의 사망에 대한 어떤 책임이나 보상도 학교에 제기하지 않았다. 교육청감사도 아무 징계 없이 마무리 되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감사에서 모든 문제를 다 덮어 무마한 것은 보건실의 상담일지라고 했다. J를 위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한 것이 인정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학교는 다시 평상으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나는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져 평안치 못했다. 학교에 근무하며 나는 교사로서의 직무에다 직장맘으로서의 안타까운 엄마 마음까지 더해서 당장 내 눈앞의 학생들을 정성을 다해 보살피기로 다짐했었다. 한편으론 다른 다사로운 손길이 내 아이에게도 다가가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J의 자살시도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는데, 진정 J에게 그만큼의 정성을 쏟았는지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아이를 더욱 품어 안았어야 했다는 후회와 자책이 나를 몹시 힘들게 했던 것이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마음의 감기’로 흔들리는 꽃들이 있다.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 왕따 등으로 인한 청소년 자살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청소년이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면 자살 충동이나 생각을 표현한 것이므로 흘려 넘기거나, 사춘기의 일시적인 증상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고 한다. 또, 부모들이 평소에 자녀들이 자신의 기분상태를 잘 표현할 수 있는 가정 분위기를 만들어 자녀와의 대화채널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디 부모뿐이랴.
그들과 공감할 소통채널을 찾아야 할 일은 우리 모두의 숙제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