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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명 : 안정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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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하루만이라도 조르바처럼    
글쓴이 : 안정랑    12-05-02 20:53    조회 : 8,683
 “이런 제기랄. 참한 계집들이 내 죽을 때 따라 죽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죽어가는 데도 화냥년들은 죽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것들은 여전히 뜨끈뜨끈하게 재미보고, 사내들은 그런 것들을 끼고 주물럭거리는데 나는 그것들이 밟고 다닐 흙이 되고 있으니 이게 보통 속상하는 일인가요!”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다가 이 대목에서 뜬금없이 큰오빠 생각이 났다.
평생을 꽁생원 같이 살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나이에 저 세상으로 속절없이 가버린 오빠와 불같은 영혼의 소유자이자 진정한 자유인인 조르바를 견주어보다니,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비어져 나왔다.
 
 날 때부터 그렇게 살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맏이로서 항상 동생들에게 본보기가 되고자 애쓰던, 숨 막히게 답답하던 한 남자가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더없이 평온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이건 아니잖아, 나한테 친정부모 노릇을 좀 더 해 주고 가야지.’ 라고 어깃장을 놓으며 마구 흔들어 깨우고 싶은 욕망을 참느라 눈물도 나오질 않았다. 오빠는 그동안 자신을 옥죄이던 많은 끈들을 죄다 놓아버리고 홀가분했을까.
 
 어릴 적, 밥상 앞에서 내가 아버지보다 먼저 수저를 들고 맛있는 반찬을 집을라치면 엄마, 아버지 심지어 할머니도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유독 큰오빠의 눈초리에 기가 질려 슬그머니 젓가락을 내려놓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부산의 명문고를 다니던 그는 동생들이 공부를 못하거나 안하는 꼴을 그냥 봐 넘기지를 못했다. 시험이 다가오면 예상문제를 내주곤 했는데 만일 그 답이 틀리면 30센티 대나무자로 틀린 개수만큼 손바닥을 때렸다. 철딱서니 없는 막내였던 나는 손바닥 맞을 일이 생기면 종종 아버지께 일러바치곤 했다. 물론 전후사정은 쏙 빼고 “큰오빠가 때려요.” 라고만 얘기했고 오빠는 아버지께 “니 공부나 잘해라”라고 면박을 듣기 일쑤였다. 
 
 사실 큰오빠에 대한 내 기억은 빈약하다. 내가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오빠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고, 내가 중학생이 되어 서울로 왔을 땐 오빠는 결혼하여 부산에서 살고 있었다. 그 후론 나도 가정을 꾸리고 맏며느리로 살다보니 친정나들이가 쉽지 않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날 뿐이었고 따라서 속내를 털어 놓을 만큼 가까워지진 못했다.
 
 어쩌다 만나는 큰오빠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마냥 늘 긴장되어 있었고 함께 하는 자리는 편치가 않았다.
마치 빈틈을 보이면 큰일 날 것처럼 목까지 채워진 셔츠단추와 한 올도 흘러내리지 않고 단정하게 빗질된 숱이 빽빽한 검은 머리, 언제 봐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돈된 책상과 아주 잔 멸치조차도 내장을 제거해야 먹는 까탈스러운 식성, 그리고 항상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다음 시작하는 지극히 장남스런 얘기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그의 위상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남에 대한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은 지 삼 년 만에 아버지의 사업체는 물론이고 자신이 살던 아파트까지 몽땅 날려버리고 60평 아파트에 있던 살림살이를 끌고 엄마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조금씩, 아주 조금씩 고개가 떨구어지고 있었다.
 
  “내가 큰 아를 잘못 키웠다. 땅에 발이 안닿구로 곱게 키웠더만 고마 저래 맥을 못 춘다 아이가.” 엄마가 그렇게 장탄식을 할 때 그 말이 맞다 라고 대꾸하지 못했다. 엄마의 건강도 그전만 못해서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작은오빠들의 원성을 묵살하면서까지 엄마는 경매로 넘어간 공장과 건물을 낙찰 받아 날려버린 재산의 일부를 되찾아주었고, 오빠는 그것을 계기로 다시 일어서려는 몸짓을 보이던 중이었다.
 아버지의 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아버지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기만 하던 그는 서먹했던 부자지간을 회복할 기회를 놓쳐 버리고 엄마에게서나마 장남으로서의 위상을 보여드리려 했건만 엄마는 기다리지 못했다. 엄마가 돌아 가신 후로 눈에 띄게 기력이 없어진 그는 간단한 수술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병원출입을 반복했다.
 
 엄청나게 쏟아지던 비로 서울이 반쯤이나 물에 잠겼던 2010년 8월 어느 날,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서울에 왔다가 난생 처음 막내 동생 집을 방문한 큰오빠는 나를 아직도 손바닥 맞기 싫어 아버지께 쪼르르 달려가던 철부지로 여기고 있었던지, 내가 꾸며 놓은 집안이며 차려 놓은 밥상 하나에도 신기해하며 대견해했다. 올케언니가 옆에서 고모 나이가 몇인데 그런 소릴 하느냐고 지청구를 하자 겸연쩍은 듯 빗줄기가 마구 사선을 긋고 있는 창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흠흠’ 힘없는 헛기침을 두어 차례 내뱉었다.
그해 12월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저 세상으로 훌쩍 가버렸다.
몇 차례의 수술로 허약해진 오빠를 위해 전복죽을 준비했던 것이 내가 그를 위해 마련한 처음이자 마지막 만찬이었다.
 
 만약 큰오빠가 장남, 모범생, 가장, 사장 따위의 거추장스러운 허울을 벗어버리고 단 하루만이라도 조르바처럼 쾌도난마하는 기세로 삶을 살아봤더라면 그렇게 맥없이 이승의 끈을 놓아버릴 수 있었을까.
평생을 샌님처럼 살다가 종국에는 남들이 밟고 다니는 흙이 되고 만다는 사실에 대해 한번쯤은 억울하단 생각을 해봤는지, 아니면 조르바처럼 남의 재산 몽땅 들어먹고도 “주여, 작고하신 우리 사업을 보우하소서. 마침내 거덜 났도다!”라고 외치며 신나게 춤을 출 수 있는 배짱을 부리고 싶지는 않았는지 오빠께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지금 화창한 봄날에 우울한 반성문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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