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에서 일어난 86세 동갑내기 노부부의 자살이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부부는 60년 전 신혼의 꿈을 키웠던 유서 깊은 호텔에서 함께 죽음을 선택했다. 늦은 아침 종업원이 인기척 없는 방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부부는 얼굴에 비닐봉지를 쓴 채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침대에 누워 숨져있었다. 남편은 경제학자이자 철학자로서 국가적인 석학이었고 부인은 작가 겸 교사였는데 이 지식인 부부는 유서에 “죽음보다도 두려운 것은 남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썼다. 그들은 파리검찰청에게 쓴 또 다른 유서를 통해 “법이 평화로운 죽음을 맞을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며, “평화롭게 삶을 마감하고 싶은 사람이 이런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권리를 누가 갖고 있는가”라고 항변했다.
프랑스에서 안락사는 불법이다. 다만 2005년부터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환자에 한해 본인의 의지에 따라 치료를 중단할 권리는 부여하고 있다.
올랑드 대통령은 안락사 허용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으나 가톨릭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부부의 죽음은 프랑스를 큰 충격에 빠뜨렸고 또다시 격렬한 안락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안락사를 뜻하는 euthanasia는 eu(good)+thanatos'(death)로서 좋은 죽음, 즉 '편안하고 수월한 죽음' 또는 '자비로운 죽음'을 의미한다. 고대에는 안락사가 좋은 죽음으로 여겨졌는데 캐나다의 역사학자 이안 다우비긴은 <<안락사의 역사>>란 저서에서 “사회가 훌륭한 죽음을 어떻게 정의하느냐 하는 문제는 그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이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죄, 고통, 체념, 판단, 참회, 구원 등을 모두 포함하는 전체적인 가치관의 변화와 함께 진행된다”고 말했다.
안락사 하면 인도 영화 <<청원>>을 빼놓을 수 없다. <<청원>>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14년 간을 전신마비 상태로 살아온 마술사 이튼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기에 혼자 힘으로는 죽을 수조차 없는 불행한(?) 인물이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옥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법원에 안락사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한다. 하지만 간절한 청원은 거부당하고 이에 분노한 이튼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청취자들에게 '나의 안락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사람들 역시 살아감에 대한 희망, 명예 등등을 언급해가며 강력한 반대 의사를 밝힌다. 하지만 이것은 용기는커녕 이튼을 오히려 지독한 고립감과 절망에 빠뜨릴 뿐이다. 이 영화에서 이튼의 안락사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그와 가까웠던 지인과 가족뿐이다. 이튼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며 온몸으로 지켜본 이들이다. 삶은 분명 소중한 것이지만 삶보다 죽음이 나은 시점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고통을 겪어본 이들만이 알고 있었다.
행복전도사’로 불리며 ‘자살’ 대신 ‘살자’를 외쳤던 한 여인이 남편과 동반자살 함으로써 우리를 ‘배신’했던 일이 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 없었다”는 유서를 통해 우리는 비로서 그녀가 짊어졌던 육체적 고통의 무게에 대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수많은 말기환자들을 지켜보았던 윤용호 박사(국립암센터)는 바람직한 죽음의 첫 번째 조건 으로 ‘육체적 고통이 없을 것’을 꼽은 반면 사람들은 ‘주변에 부담주지 않을 것’을 첫 번째로 꼽았다.(2012년 서울대 의대. ‘국민 웰다잉에 관한 조사’) 이는 나보다도 뒤에 남을 가족을 염려하는 마음이겠지만 한편으론 ‘나는 그런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아마도 삶의 마지막 필사적인 시간에 손수건 위에 앉아서 심연을 조용히 항해해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진통제 처방에 있어 극히 인색한 우리나라의 실정을 볼 때 언젠가는 통과해야할 나의 고통에 대해서도 준비가 필요할 듯싶다.
안락사니 존엄사니 하는 생명에 관한 가치에 대해 혼란과 이견들이 분분하지만 그에 대한 도덕이나 윤리에 앞서, 스러져가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고통에 대한 연민의 마음부터 필요하지 않을까.
이 겨울 그런 마음들이 더욱 그립다.
<<한국산문>> 201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