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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벳양복의 신사 사티    
글쓴이 : 손동숙    12-05-03 11:26    조회 : 7,141
                                          
                                               벨벳 양복의 신사 사티
                                                                           
  
     에릭 사티의 ‘난 너를 원해(Je Te Veux)’가 호텔의 예식장 홀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사랑의 꿈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두 영혼을 교환할 것이다.”라는 마지막 구절이 신혼부부의 외침처럼 들린다.
    토요일 오후 여고 동창의 아들 결혼식 날, 한 쌍의 부부가 될 그들도 보고 싶지만 음대 교수인 친구가 축가를 어떤 곡들로 채울 것인지 더 궁금했다. 하지만 축가는 피아니스트인 친구의 취향이라기보다는 젊은 연인들이 즐기는 곡이었다. 사티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 서 있는 듯하다. 어딘가 모자라는 듯하고 그런가 하면 아름다운 그의 곡이 영화, 소설, 드라마 그리고 광고에서 자주 쓰이기 때문이리라.
     영화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전지현이 검은 건반은 안 건드린다며 모든 건반을 하얗게 칠해놓고 치던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맨 온 와이어>>에서 필리페 페티가 쌍둥이 빌딩의 북쪽 타워와 남쪽 타워 사이에 연결된 가느다란 줄 위에서 뉴욕의 관객들에게 경이로운 순간을 선물하는 그 순간 ‘짐노페디’가 흐른다. 이렇듯 ‘짐노페디’가 나오는 영화는 많다. <<101번째 프로포즈>>에서 소심하고 숫기 없는 만년 계장 구영섭(문성근)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열심히 연습하던 곡이기도 하고 <<북회귀선(원제: Henry and June)>>과 필립 카우프만 감독의 영화 <<프라하의 봄(원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 외에도 온다 리쿠(恩田陸)의 소설 <<여섯번째 사요코(小夜子)>>에서 클라이맥스인 학교축제에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다 함께 연극을 하는 장면에서 무대의 막이 오르며 조용한 음악 ‘짐노페디’가 흐른다.
 
    사티, 그는 노르망디의 옹프뢰르 출생(1866-1925)으로 교회 오르가니스트인 비노에게 피아노와 그레고리오 성가를 배우고 파리음악원에 입학했으나 아카데미즘에 반감을 느껴 자퇴, 독학으로 작곡을 시작하였다. 그는 정해진 형식이나 조성을 따르지 않고 독창적인 자신만의 방법으로 악보에 일반적인 연주 기호 대신 ‘계란처럼 가볍게’, ‘이가 아픈 꾀꼬리 같이’와 같은 말들을 써놓곤 했다. 만일 깊어가는 가을을 작곡한다면 ‘떨어진 낙엽처럼’이라고 썼을까...하고 잠시 사티의 마음이 되어 본다. 카페 ‘오베르주 뒤 클루’에서 연주할 당시 네 살 위인 드뷔시를 만나게 되고 음악적으론 다르나 25년간 긴 우정을 나누며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음악은 비슷한 분위기로 꿈꾸는 듯 신비롭다. 사티의 작품은 ‘그노시엔느’와 ‘짐노페디’가 많이 알려졌으며 ‘난 너를 원해(Je Te Veux)’도 사랑받는 곡이다.
그의 음악을 듣노라면 귓가에 속삭이는 듯, 계단을 가만 가만 밟고 올라오는 듯, 혹은 얼음이 녹아 물방울로 똑 똑 떨어지는 듯한 소리를 연상하게 한다.
 
  시인 장석남은 ‘음악의 일요일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티의 음악을 들으면 언제나 일요일 같다. 모처럼 화창한 겨울 하루, 마당에 서 있는 나무의 긴 그림자가 오지호의 그림처럼 이편으로 건너와 처마를 거쳐 지붕에 이르는 동안의 그 시간을 묘사한 듯한 그의 음악은 그래서 혼자만의 젖어 있는 시선을 표시하고 안내한다. 커피를 한 잔 놓고,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되는 책을 한 권 손에 쥐고 앉는다. 어두워 가는 창가를 바라보고 있다. 불빛이 돋아오는 창 밖 풍경은 내면으로부터 어떤 음악을 부르는데 그것이 바로 내게는 <세 개의 짐노페디와 피아노 작품>란 앨범이다.”
  
    그가 외형적으로 보기에 말쑥한 신사로 탈바꿈한 시기는 가장 힘들었던 기간으로, 파리 근교 빈민가에 살며 걸어서 몽마르트르에서 일을 하기 위해 출근했다가 다음날 이른 아침에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하면서였다. 언제나 회색 벨벳 양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벨벳 양복의 신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의 표제음악은 <관료적인 소나티네><영웅적인 천국의 문의 전주곡>처럼 붙여진 이름이 아주 해학적이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성으로 스트라빈스키나 존 케이지보다 현대음악의 길을 먼저 열어 갔다. 1차 세계대전 초기에 만난 장 콕토는 사티 음악에 푹 빠져 “군더더기 없이 쇄신된 건강하고 새로운 음악”이라는 찬사를 보내며 자신의 시나리오에 사티의 음악, 피카소의 무대미술, 무용의 디아길레프를 동원하여 전위발레 퍼레이드를 만들어 냈다. 이 공연 후 사티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 후 오랫동안 묻혀 있던 그를 프랑스 영화감독 루이 말이 재발견한다. 1963년 자신의 영화 <도깨비불>의 영화음악으로 사티의 피아노곡을 사용했다. 영화가 개봉되자
“정신이 아찔해질 만큼 아름다운 이 음악은 대체 누가 작곡한 거지?”
“뭐? 사티라고?”
“도대체 그가 누구야?”
하며 모두들 놀랐다고 한다.
 
    사티에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는 수잔 발라동과의 만남이다. 화가 위트릴로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녀와 목가적인 연애를 했다. 파리 몽마르트르로 이사 한 그는 술집에서 피아노를 치며 곤궁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처음 수잔 발라동을 보았을 때 그녀는 술집에서 이미 유명해진 화가 로트렉과 춤을 추고 있었고, 사티와 그녀가 다시 만난 건 그 후 2년 뒤였다. 화가 툴루즈 로트렉과 르누아르의 모델이며 그들의 연인이기도 했던 그녀를 사랑했지만 곧 그녀와 헤어지고 애절하고 슬픈 음악을 한동안 썼다.
   “나는 이 낮고 낮은 땅에, 왜 왔을까. 즐겁기 위해서? 형벌로? 무언가 알 수 없는 임무를 띠고서? 휴식 삼아? 아니면 그냥 우연히? 나는 태어나 얼마 안 된 아이일 때부터 내가 작곡한 음들을 흥얼거리고 노래 불렀지. 그래, 내 모든 불행은 거기서 시작된 거야...”
에릭 사티, 일기 중에서 (영화 '사티와 수잔'의 마지막 대사)
  
    59세가 되던 해 쓸쓸히 홀로 살다가 고독한 삶을 마감한 사티.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비로소 현대음악의 천재적인 작곡가로 인정을 받는다. 빈센트 반 고흐처럼 사후에 그의 가치는 재발견되었고 지금도 파리에는 그가 살던 집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그곳엘 가면 그의 문패가 붙은 집을 꼭 찾아보고 싶다. 가슴 아플 정도로 지독했던 그의 가난과 고독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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