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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원 이광수의 문학과 사상 <평론.    
글쓴이 : 박태원    14-02-23 12:17    조회 : 5,338

춘원 이광수의 문학과 사상


     法門 박태원

춘원의 사상적 근저는 톨스토이의 인도주의와 베르그송의 생의 철학 그리고 최제우 선생의 “사람이 곧 하느님이다”에 있다. 톨스토이의 만년 71세의 작품인 “부활”의 주제와 구성은 “無情”의 모델이 되었다. 그러나 26세의 춘원이 그 사상을 체득하여 인생관을 확립한 것은 아니었다.

<하느님은 어디에 있는가? 누구든지 다 자기 영혼만 믿게되면 모두 하나가 된다. 나는 나일 뿐이다.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그냥 사람이라고 하고,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으면 세어 본 적도 없고 셀 수도 없다. 나는 언제나 존재해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니까. 황제는 그 분 자신이 황제고 나는 나 자신이 황제이다….당신은 나한테 수치를 주지 않았다. 또 나에게 수치를 줄 수도 없고…법률? 자기네들이 먼저 사람들의 것을 모두 빼았고는 반항하는 사람들을 모두 죽여 버렸지. 그리고 나서 약탈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 하는 식의 법률을 만든 것이 아닌가? 누구를 벌주고 용서할까 하는 것은 하느님만이 아는 것이지 우리가 알 수는 없는거야…자기가 마음의 평화와 삶의 기쁨을 느꼈을 때는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겸손한 마음을 가졌을 때 뿐이었다. 모든 사람이 무서운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늘 자신을 죄인이라 인식하며 자기에게는 남을 벌 준다든지 고쳐줄만한 힘이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죄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벌주거나 교화시킬 권리를 가진 사람도 없다. 사람은 언제나 다른 사람을 몇 번이라도 끝없이 용서해야만 한다는 그 한가지 권리가 있을 뿐이다. …네흐류도프는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해 주는 것은 남을 재판하고 벌주는 제도가 아니라 부패와 타락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서로를 동정하고 사랑하는 정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너희는 하느님의 왕국과 그 진실을 구하라. 그러면 나머지 것은 모두 너희들에게 돌아 가리니’,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곧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사람의 아들은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톨스토이의 ‘부활’ 중에서)

춘원은 이 ‘속사람’을 깨달았다고 한다.

<형식은 그제야 그 속에 있는 ‘사람’이 눈을 떴다. 그 속눈으로 만물의 속뜻을 보게 되었다. 형식의 ‘속사람’은 이제야 해방되었다. 형식의 한’사람’의 씨되는 ‘속사람’은 이제야 그 껍질을 깨뜨리고 넓은 세상에 우뚝 솟아 햇빛을 받고 이슬을 받아 한없이 생장하게 되었다. 형식의 속사람은 남보다 풍부한 실사회의 경험과 종교와 문학이라는 수분으로 흠뻑 불었다가 선형이라는 처녀와 영채라는 처녀의 봄바람, 봄비에 갑자기 껍질을 깨뜨리고 뛰어난 것이다. 누가 ‘속사람이 무엇이뇨’와 속사람이 어떻게 깨는가’의 질문을 제출하면 그 대답은 이러하리라. ‘생명이란 무엇이뇨’와 생명이 나다 함은 무엇이뇨’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음과 같이 이도 대답할 수 없다고, 오직 이 ‘속사람’이란 것을 알고, ‘속사람이 깬다’는 것을 알 이는 오직 이 ‘속사람’이 깬 사람 뿐이다.>(‘無情’ 중에서)

당시에 조도전 대학 문학부 철학과 학생이었던 춘원은 쇼펜하우어,니체,베르그송으로 대표되는 철학사조인 生의 철학을 연구하였다. 베르그송은 “인간, 생물, 우주 전체의 生은 실증과학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로는 파악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은폐되어 버린다. 존재,인식,행동의 삼위일체의 순수 창조 자체인 형이상학적 실재는 과거 현재 미래의 상호침투에 의한 지고의 시간적 통합으로서 살아있는 영혼과의 합체이며 특권적 개인의 초지성적 직관으로 파악된다. 실재인식 그 자체가 가치론적 행위를 직접적으로 성립시키며,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순수한 시간의 흐름(flux)이며 生의 도약(?lan vital)이다. 이로부터 창조적 진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사람의 생명이 우주의 생명과 같다. 우주가 만물을 포용하는 모양으로 인생도 만물을 포용한다. 사람의 생명은 결코 일 의무와 일 도덕률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요, 인생의 만반 의무와 우주에 대한 만반의 의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명이 충이나 효에 있음이 아니요, 충이나 효가 사람의 생명에서 나옴이다. 생명은 하여(何如)한 도덕 법률보다도 위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절대요, 도덕 법률은 상대니 생명은 무수히 현실의 그것과 상이한 도덕과 법률을 조출(造出)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형식이 배워 얻은 인생관이다. 그리고 엊그제 김장로의 집에서 십자가 달린 예수의 화상을 보고 상상하던 생각이 난다. 다 같은 사람으로서 혹은 춘향이 되고, 혹은 이도령이되고 혹은 남원 부사가 되고, 혹은 사랑하고, 혹은 미워 하고, 혹은 양반이 되고, 선인이 되고 혹은 상놈이 되고 악인이 된다 하더라도 원래는 다 같은 ‘사람’이라 하였다….이 즐거움은 그 어린 기생의 얼굴과 태도와 마음이 아름다움과 아무 수단도 없고 아무 의심도 없고 서로서로의 영과 영이 모든 인위적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적나라하게 융합함에 있다 하며, 또 이렇게 맛보는 즐거움은 하늘이 사람에게 주신 가장 갸륵한 즐거움이라 하였다.>(‘無情’ 중에서)

이러한 춘원의 인도주의적인 인생관과 순수한 사랑관은 그의 모든 소설과 논설 평론에 일관되게 흐른다. 춘원은 동정(同情)이란 글에서,

<동정(同情)이란 나의 몸과 맘을 그 사람의 처지와 경우에 두어 그 사람의 心思와 行爲를 생각하여 줌이니 同情은 정신의 발달에 정비례하나니 정신의 발달은 곧 人道의 發達이다. 同情은 그 容貌를 美하게 하고 , 風彩를 정답게 하며, 그 언어는 一種 不可思議한 마력이 있어 능히 남의 마음을 위로하고 감화하나니라. 要之컨데 동정 많던 이는 정신이 고상한, 즉 君子요 동정이 없는 이는 정신이 비열하니, 즉 小人이니라…. 凡人에는 동정이 없음이 아니로되, 그 범위가 극히 좁고 얕으며, 또 일시적이니 偉人의 동정은 넓고 一國과 世界와 우주만물에 미치되, 범인은 겨우 제게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에만 한하는지라….寬恕는 美德이라 군자에 필요불가결한 미덕이라, 사람이란 완전치 못하여 허물의 絶無는 期치 못할 것을 생각하여 할 수 있는대로 관서함이 군자의 본색일지니라….人道의 기초는 동정이니, 동정없는 인도는 상상키 불능할 바라>

라고 하였다. 이는 쇼펜하우어의 “동정이 도덕 윤리의 근본이며, 동정은 금욕과 무의지에 의한 적정,해탈에서 발현되는 것이며, 자아의 고통에서 벗어 나면서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동정, 同苦가 시작된다”고 하는 사상과도 통하는 것이다.

<형식은 또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내가 옳다 하던 것도 예로부터 그르다 하므로, 또는 남들이 옳지 않다 하므로 더 생각하지도 아니하여 보고 그것을 내어 버렸다. 이것이 잘못이다. 나는 나를 죽이고 나를 버린 것이로다. 자기는 이제야 자기의 생명을 깨달았다. 자기가 있는 줄을 깨달았다. 또 자기는 아무러한 사람과도 똑같지 아니한 知와 意志와 사명과 색채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로서 춘원은 자아를 찾았으며, 자신의 지식과 의지와 정신이 가르키는 바를 좇아 행동하려고 하는 것이다. 춘원은 고아가 된 후 12세부터 동학에 입도하여 문서연락책으로 활동하였다. 그가 처음 일본 유학길에 오른 것도 동학교주인 손병희 선생의 민족보존을 위한 인재양성정책의 혜택을 받은 것이다. 동학도인들은 사람이 곧 하느님이라는 가르침을 받들어 서로 존대하며 誠敬信을 덕목으로 수양하였다. 춘원은 단편 ‘거룩한 이의 죽음’에서 최제우 선생의 높은 뜻과 기상을 묘사하였다.

<그대는 하느님이요, 천지를 지은 이도 하느님이요, 천지를 다스리는 이도 하느님이니, 하느님은 곧 나요, 그대네요. 아아, 성심 수도하여 도성 덕립하는 날에 모를 일이 무엇이며, 못할 일이 무엇이겠소? 이 일을 알았더면 요만한 나 한 몸이 간다고 무슨 근심이요?...나는 무극대도를 천하에 펴서 창생을 구제하고자 함이니, 이 도가 세상에 난 것은 하늘이 명하신 바요, 또 내가 이 몸을 도를 위하여 죽여 덕을 후천 오만년에 펴게 하는 것도 하늘이 명하신 바니, 공은 맘대로 하오!...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지 무극대도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자기금지 원위대강>

춘원은 앞으로 민족을 위하여 어떤 일을 할 것인가?

<나는 조선의 나갈 길을 분명히 알았거니 하였다. 조선 사람이 품을 이상과, 따라서 교육자의 가질 이상을 확실히 잡았거니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필경은 어린애의 생각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조선의 과거를 모르고 현재를 모른다. 조선의 과거를 알려면 우선 역사 보는 안목을 길러 가지고 조선의 역사를 자세히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조선의 현재를 알려면 우선 현재의 문명을 이해하고 세계의 대세를 살펴서 사회와 문명을 이해할 만한 안식을 기른 뒤에 조선의 현재 상태를 주밀히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더구나 나는 인생을 모른다. 나는 아직 나를 모른다.>(‘無情’ 중에서)

실로 춘원은 무정을 발표한 1917년 이후에 엄청난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게된다.

1918년에는 부인 白惠順과 아들 하나를 남기고 이혼하며, 허영숙과 약혼한다.

1919년에는 동경에서 “조선청년독립선언서(2.8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이를 영역하여 상해에서 해외 要路에 배포한다. “3.1독립선언”의 기사를 ‘차이나 익스프레스’,’데일리 뉴우스’에 보도케 하고, 상해임시정부 조직에 협력한다. 도산 선생을 보좌하여 “조선독립운동方略”을 초안하고 흥사단에 입단한다.

1921년에는 고국에 돌아와 허영숙과 결혼한다. 한때 변절자로 오해받아 비난의 표적이 된다.

1922년에는 논문 “민족개조론” 필화사건으로 한때 문필권에서 제외된다.

1924년에는 논문 “민족적 경륜”이 물의를 일으켜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던 동아일보에서 일시 사퇴한다.

1925년에는 “척추 카리에스”라는 진단을 받고 한쪽 갈빗대를 도려내는 수술을 받는다.

1929년에는 신장결석이라는 진단이 내려져 좌편 신장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는다.

1934년에는 큰아들 봉근(8세)이 패혈병으로 졸지에 사망하여 크게 낙담한다. 이때부터 춘원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홍지동에 산장을 건설하고 불교공부에 매진한다.

1937년에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구속된다.

1938년에는 도산 선생이 서거하시니 춘원은 크게 낙담한다.

1940년에는 춘원의 저작 중 일부가 발매금지를 당한다. 춘원은 이때부터 창씨개명을 하고 친일행위에 가담하게 된다.

1941년에는 전국 각지를 순례하며 친일연설을 한다.

1942년에는 동경에서 조선인 유학생의 학병권유연설을 한다.

1944년에는 춘원의 모든 저작권이 압수되고 작품은 발매금지된다. 홍지동 산장을 팔고 사능으로 이사한다.

1949년에는 反民法에 의하여 구속되었으나 불기소 처분으로 석방된다. 이 당시 사능농민 300여명이 석방을 陳情하였고, 아들 榮根은 혈서탄원을 하였다.

1950년 7월 12일에 공산 괴뢰군에게 피납되어 북한에서 일생을 마치게 된다.

춘원은 1934년 43세에 큰아들 봉근을 잃고 큰 충격을 받는다. 심중에 일어나는 의문들, 사람이 무엇인가? 어찌하여 나는가? 죽음이란 무엇이며, 죽어서는 어찌되는가? 를 풀기위해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염불하면서 불교공부에 매진한다.

<나는 이 집(홍지동 산장)을 지은 육년 동안에 법화행자가 되려고 애를 썼소. 나는 민족주의 운동이라는 것이 어떻게 피상적인 것도 알았고 십수년 계속하여 왔다는 도덕적 인격개조운동이란 것이 어떻게 무력한 것임을 깨달았소.-신앙을 떠난 도덕적 수양이란 것이 헛것임을 깨달은 것이오. 내 혼이 죄에서 벗어나기 전에 겉으로 아무리 고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의식에 불과하다고 나는 깨달았소….나는 이 세상이 지극히 공평하다고 믿소. 빈부귀천이 없는 것이 공평이 아니라 있는 것이 공평이란 말이요. 공덕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똑같이 잘나고 똑같이 잘 산대서야 그야말로 불공평이 아니오?....같은 살로 되고 같은 것을 먹고 살지마는 네요 내요 다른 것이 있단 말야. 이것이 하나 속에 여럿이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있다는 것이오. 무차별 속에 차별이 있고 차별 속에 무차별이 있단 말요…..차별 세계에서 적이오 내편이어서 서로 싸우고 죽이지마는 한번 마음을 무차별 세계 속에 달릴 때에 우리는 오직 동포감으로 연민을 느끼는 것이오…..나는 이것을 믿소. 이 중생세계가 사랑의 세계가 될 날을 믿소. 내가 법화경을 날마다 읽는 동안 이 날이 올것을 믿소.>(“육장기” 중에서)

<나라라는 것은 중생-여러 사람이 모여서 되는 것이야. 중생의 업의 힘이라는 것이지. 선한 중생이 사는 곳에 선한 나라가 이루어지고 악한 중생이 사는 곳에 악한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네가 신라라는 나라를 좋게 하려거든 신라의 중생의 마음을 좋게 해야한단 말이다. 이것을 일러서 업력이라는 것이요, 인과응보라는 것이야….신라나라에서 이차돈 하나가 길을 찾은 사람이 될 때에 신라백성은 제도되는 것이다….일심염불,常好坐禪,觀一切法空이라 함은 마음에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고 자비심에 자리를 잡아 흔들리지 말고, 사생이나 고락이나간에 애체하지 말라는 뜻이야. 이 마음으로만 가면 거칠 것도 없고 막힐 것도 없나니라. 내가 허공이거니 무엇에 막힐까 보냐. 이 칼을랑 인욕 못하는 너희들의 마음을 버히기에 먼저 쓰란 말이다. 나무불!....몸에 있는 병-그것은 제 몸의 업보였다. 뜻이 안맞는 신하들-그것은 제 몸의 업보였다. 나라에 오는 기근과 질병과 외국의 침노-그것도 제 몸의 업보였다. 상감은 모든 것을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차돈의 말에 의하면, 이 무서운 업보를 깨뜨리는 길은 오직 참회와 수도가 있을 뿐이었다….아라한의 몸을 태워버린 잿속에도 사랑의 번뇌의 씨는 남느니라. 그것을 마자 소멸하여 버리는 것을 열반이라고 하나니라….우리 신라 사람들은 거짓이 많소. 아첨이 많소. 서로 속이고 서로 속고 부처님은 곧은 마음을 가지라 하였소. 또 서로 미워하오. 저보다 나은 사람은 시기하고 저만 못한 사람은 멸시하고 저와 비슷한 사람은 멀리하오….나 하나가 법을 설하다가 피를 흘리고 죽으면 또 누가 설법을 하느냐고? 아니 아니 ?그것도 다 탐이요 치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모두가 불보살의 원력과 중생의 업력으로 되는 인연임을 믿는 바에 내가 법을 설하다 죽는다면 이 나라에 불연이 있으면 또 다른 사람이 나올 것이오, 또 내가 흘린 피에서 움이 트고 싹이 틀 것이다….삼천대천세계에 겨자씨만한 땅도 보살이 중생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지 아니한 곳이 없다.>(“이차돈의 死” 중에서)

춘원은 민족자각운동이 세월이 흐르면서 힘을 잃고 있으므로 종교와 문학을 통해서 민족을 구제하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공(功)을 들여 선업을 쌓아 자비의 보살행을 하여야 했다. 춘원은 홍지동 산장에서 6~7년간 법화경을 독송하고 염불을 하고 좌선을 하였으나 조사선은 하지 않았다. 한산과 습득을 모르는 것이다.

<나는 요새 선승이라는 이들에게 별로 경의를 가지지 못하였다. 정말 살불살조(殺佛殺祖)하는 무리인 것 같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계도 안 지키고 저도 모르는 소리를 지껄이고, 가장 높은 체하는 무리들로 생각하고 있었다….”불교를 많이 연구하셨다지요?” 선학원의 SS선사는 이렇게 내게 물었다. “법화경을 읽은 지가 육칠년 됩니다.” ”염불경계와 참선경계가 어떠합니까?” ‘같지요. 염불삼매에 들어가면 같지요. 그렇지마는 극락정토가 저 시방십만억토 밖에 있으니 거기 태어 나겠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염불을 하면 틀리지요. 길을 멀리 돌아 간단 말요. 즉 心是佛-이 마음이 곧 부처라 하는 바른 길로 들어가야 하지요” “선사도 불상에 절을 합니까?” “타불타조하는 중에 무시로 시방제불께 절을 하는 것이지요.” “선사도 타력을 믿습니까?” “선정에 들어간 때에 무슨 불이니 보살이니가 있겠어요. 내가 곧 부처여든!” “참선하는 법이 어떠합니까?”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막아버리고 제가 알던 것까지 내던지는 것이요. 그리고 가만히 제 마음을 지켜보노라면 갑자기 환히 깨달아지는 것이지요. …다겁 이래로 끌고 오는 중생의 습기를 벗어 놓기가 참 어렵단 말요. 난중난사요. 일체분별을 다 放下하는 날이 깨닫는 날이요.” “남화경 읽으셨소?” “네, 애독하지요.” “선사대사 독남화경시가 있습니다.” “可惜南華子(가석남화자) 祥麟作孼虎(상린작얼호) 寥寥天地闊(요요천지활) 斜日亂啼烏(사일난제오)-가련하다, 남화자여! /상서로운 기린이 고양이가 되었구나/하늘은 고요하고 땅은 광활한데/석양에 까마귀가 어지럽게 우는도다” “장자가 괜히 말이 많단 말씀이지요.” “고맙습니다.” SS선사는 이 말을 내게 준 것이다. “내야 말로 석양에 지저귀는 까마귀다.”>(“亂啼烏” 중에서)

이것만으로 춘원이 悟道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文은 사람이라 하는데 내가 느끼는 바로는 장편 ”원효대사”에서 그 기미가 보이고, 수필집 “돌베개”에서 도인의 풍모가 느껴진다. 단편 “無明”에서는 춘원이 不動心을 증득한 것으로 느껴진다. 단편 “無明”은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이것은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병감에 수감되어 있을 때의 경험을 작품화 한 것이며, 사기꾼, 방화범, 인장위조범, 공갈취재범의 죄인들이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병든 몸으로 욕심,암투,시기,아첨,이기심,자만심,거짓말등으로 악업을 더하여 인간세계의 암흑에서 번뇌하는 인간군상을 치밀한 구성으로 묘사해 작품성을 높이고 있다.

<”진상!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죽어서 분명히 지옥으로 안가고 극락세계로 가능기요?” 나는 생전에 이렇게 중대한, 이렇게 책임 무거운 질문을 받아 본 일이 없었다. 기실 나 자신도 이 문제에 대하여 확실히 대답할 만한 자신이 없었건마는 이 경우에 나는 비록 거짓말이 되더라도 나 자신이 지옥으로 들어갈 죄인이 되더라도 주저할 수는 없었다. 나는 힘있게 고개를 서너번 끄덕끄덕한 뒤에 “정성으로 염불을 하세요. 부처님의 말씀이 거짓말 될리가 있겠습니까?” 하고 내가 듣기에도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엄청나게 결정적으로 대답을 하였다.>(“無明” 중에서)

춘원은 장편”세조대왕”에서 깊이있는 역사지식과 불교지식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이 소설속에는 춘원이 풀고자 하였던 의문의 답이 있다.-사람이 무엇인가? 어찌하여 나는가? 죽음이란 무엇이며, 죽어서는 어찌되는가?

<”그러면 나는 무엇일까?” 상감은 스스로 숙명과 본원을 생각해 본다….혜각 존자는 손으로 제 가슴을 한번치며, “이것도 허깨비, 이것도 허깨비라 하는 이 마음도 허깨비란 말요.”…”이 무명환화(無明幻華)를 멀리 떠나면 곧 원각이요, 원각이 곧 성불인데, 보현보살의 이환삼매(離幻三昧)를 비롯하여 靜.幻.寂 三淨觀과 二十五輪이 모두 이 무명환화를 떠나는 법이요.”…淸照堂 설잠(김시습)이 법을 설한다. ”離一體相이 是名諸佛이니라. 내가 어떻다 하는 생각을 떠나면 이것이 곧 부처라. 내라 하는 생각을 떠나면 그 찰나에 나는 곧 중생이 아니요 부처라 그 말씀이오….내라 하는 생각을 뚝 떼어버린 때에 삼아승기겁이 일념에 空이로구나 거침없는 허공이어니 魔와 佛이 모두 발붙일 곳이 없으려든 인과응보가 올 곳이 어디랴. 발을 붙이기는커녕 마와 불이 나를 볼 수도 없으려든, 인과에 떨어질 곳이 있으랴. 허공이 칼을 두르니 소리도 없고 피도 없도다.” …(능엄경) 밝음의 허망이란 다름이 아니라 밝다고 깨달음이 허물이니 허망된 객관이 생기면 벌써 밝음이 넘나들지 못하여 이러한 인연으로 듣는 것은 소리 밖에를 못나고 보는 것은 빛 밖에를 못넘어 빛과 냄새와 맛과 닿는 것 여섯 허망이 일우나니… 업이 같은 자끼리 언제까지나 서로 얽히어 붙었다 떨어졌다 하므로 중생의 변화 생기는 것이니라. 보는 것이 밝으면 색이 발하고 밝히 보면 생각이 되나니, 보는 것이 다르면 미움이 되고 생각하는 것이 같으면 사랑이 되어 사랑을 부어 씨를 만들고 생각을 받아 태를 만들어 서로 어울어져서 아기를 낳나니 업 같은 이를 끌므로 인연이란 것이 있나니라…..만일 생하고 멸하는 것을 버리고 참되고 떳떳한 것을 지키면 떳떳한 빛이 앞에 나타나 根(보는 힘), 塵(보이는 것), 識(분별)이 고대 스러지리라. 생각하는 모양(相)이 티끌이 되고 아는(識) 정이 때가 되나니 두가지를 다 멀리 떠나면 네 法眼(참이치를 보는 눈)이 고대 밝게 열리리니 어찌 無上知覺을 이루지 못하랴….아난아, 內分이란 곧 중생 안의 일이니 사랑이란 생각이 나면 부질없이 정이 일어나고, 정이 자꾸 쌓여 사랑의 물이 나나니라….아난아, 外分이라 함은 중생 밖의 일이니 믿고 바라는 마음이 빈 생각을 발명하나니 생각이 쌓이기를 쉬지 아니하면 좋은 기운을 생하니라….목숨이 그치려 할 때, 따뜻함이 채 떠나지 아니하여서 일생에 한 선과 악이 한꺼번에 갑자기 나타나서 죽는 거스름과 나는 순함이 서로 만나나니, 순수한 생각은 곧 날아 반드시 하늘 위에 나리라. 만일 날으는 마음이 복과 혜와 맑은 원을 겸하였을진댄 자연히 마음이 열려 시방불께 뵈와 모든 정토에 원대로 가서 나리라….情이 적고 想이 많으면 가벼이 오름이 멀지 아니하여 나는 신선이나 큰 힘이 있는 귀왕과 나는 야차와 땅에 다니는 나찰이 되어 네 하늘에 노닐대 가는 바에 걸림이 없나니라….여래는 흐름을 거슬러 오셔서 이 같으시고 보살은 흐름을 따라가서 깨달음의 즈음에 이르러 만나는 것을 등각(等覺)이라 하나니라….아아 모두 제불보살의 위신력이셨다. 하시고 상감은 가만히 합장하셨다….돈오(頓悟)라 하옴은 내가 곧 불이로구나 하는 믿음을 얻는다는 말이요 이 믿음을 얻는 날이 곧 부처의 집에 나는 날이니, 마치 임금의 집에 난 애기와 같소. 그 애기가 자라면 임금이 되려니와 그 애기가 아직 임금이 아니요…..상감은 단운구장(短韻九章)에 和하기를 명하였다.

제1장 마음으로 제마음을 알고/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아니/아는 마음과 제 마음, 남의 마음이/어느 것이 참마음인고 //제2장 仁이 중한가 義가 중한가/禮가 중한가 知가 중한가/넷이 본래 한 근원이니/어느 것은 중치 아니하랴 //제9장 진실을 알직시면/사방이 훤출히 뵈이도다/三界에 一物이 없거니/世는 무엇이며 出世는 무어랴….공민왕 때에 명태조가 새로 등극하여서 사신을 고려에 보내어 正朔을 받으라 하였을 때 신돈은 明使를 베기를 주장하였다. 이것이 불교의 국수주의와 유교도의 拜華주의의 최후요, 최고의 충돌이었다. 유신들은 이 자립 자존 사상을 타파하고 중국의 존의, 노예주의를 건설하기 위하여 처음에는 신돈을 공격하고 다음에는 왕실까지도 배반하였다.>(“세조대왕” 중에서)

춘원은 조선의 유교도가 중국에 사대하고 小中華로 자처하며, 노예근성을 가지고 있음을 비판하였다. 그러나 일본도 이것을 이용하여 청일전쟁을 일으켰고, 대신들을 협박 회유하여조선을 병합하였다. 조선의 대신들은 합방조약에 도장을 찍고 일본으로부터 귀족의 작위와 거액의 돈을 받고 일본 천황의 신민이 되었으니, 나라가 망하기 전에는 청나라의 신하요, 나라가 망하고 나서는 일본의 신하가 됨이라. 나라를 팔아 먹은 매국노들은 모두 어디에 있느뇨!

춘원은 장편 ”원효대사”에서 우리나라의 古神道를 설명하고 신라의 국선도의 수련 과정을 묘사하였다. 단군조선에는 造化經, 敎化經, 治化經의 삼대 경전이 있었으니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이 그것이다.

< 天 符 經 천부경

一 始 無 始 一 (일시무시일)이니 析 三 極 無 盡 本(석삼극 무진본)이고 天 一 一 地 一 二 人 一 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이라 一 積 十 鉅 無 櫃 化 三(일적십거 무궤화삼)이니라 天 二 三 地 二 三 人 二 三(천이삼 지이삼 인이삼)이니 大 三 合 六 生 七 八 九(대삼합육 생칠팔구)하고 運 三 四 成 環 五 七(운삼사성 환오칠)하니 一 妙 衍 萬 往 萬 來(일묘행 만왕만래)라用 變 不 動 本(용변 부동본)이요 本 心 本 太 陽(본심 본태양)이니 昻 明 人 中 天 地一 (앙명인중천지일)할지니 一 終 無 終 一 (일종무종일)이니라

삼일신고 (三一神誥)

1. 천훈(天訓)제왈이오가중(帝曰爾五加衆)아/창창(蒼蒼)이비천(非天)이며현현(玄玄)이비천(非天)이라/천(天)은무형질(無形質)하며무단예(無端倪)하며무상하사방(無上下四方)하고/허허공공(虛虛空空)하야무부재(無不在)하며 무불용(無不容)이니라/

2. 신훈(神訓) 신(神)은재무상일위(在無上一位)하사유대덕대혜대력(有大德大慧大力)하사생천(生天)하시며주무수세계(主無數世界)하시고조신신물(造신신(生+生)物)하시니섬진무루(纖塵無漏)하시며 소소영영(昭昭靈靈)하야 불감명량(不敢名量)이라성기원도(聲氣願禱)하면 절친견(絶親見)이니 자성구자(自性求子)하라 강재이뇌(降在爾腦)시니라

3. 천궁훈(天宮訓) 천(天)은 신국(神國)이라 유천궁(有天宮)하야 계만선(階萬善)하며 문만덕(門萬德)하니 일신수거(一神攸居)오 군령제철(群靈諸哲)이 호시(護侍)하니 대길상대광명처(大吉祥 大光明處)라 유 성통공완자(唯 性通功完者)라야 조(朝)하야 영득쾌락(永得快樂)이니라

4. 세계훈(世界訓) 이관삼열성신(爾觀森列星辰)하라 수무진(數無盡)하고 대소 명암 고락(大小 明暗 苦樂)이 부동(不同)하니,일신(一神)이 조군세계(造群世界)하시고 신(神)이칙일세계사자(勅日世界使者)하사할칠백세계(轄七百世界)하시니이지자대(爾地自大)나 일환세계(一丸世界)니라 중화진탕(中火震蕩)하야 해환육천(海幻陸遷)하야 내성견상(乃成見像)하니라 신(神)가기포저(呵氣包底)하시고후일색열(煦日色熱)하시니 행저화유재물(行(者+羽)化游裁物)이 번식(繁殖)하니라

5. 진리훈(眞理訓) 인물(人物)이 동수삼진(同受三眞)하니 왈성명정(曰性命精)이라 인(人)은 전지(全之)하고 물(物)은 편지(偏之)니라 진성(眞性)은 무선악(無善惡)하니 상철(上哲)이 통(通)하고진명(眞命)은 무청탁(無淸濁)하니 중철(中哲)이지(知)하고진정(眞精)은 무후박(無厚薄)하니 하철(下哲)이보(保)하나니반진(返眞)하야 일신(一神)이니라유중(惟衆)은 미지(迷地)에 삼망(三妄)이 착근(着根)하니 왈심기신(曰心氣身)이라심(心)은 의성(依性)하야 유선악(有善惡)하니 선복악화(善福惡禍)하고기(氣)는 의명(依命)하야 유청탁(有淸濁)하니 청수탁요(淸壽濁夭)하고신(身)은 의정(依精)하야 유후박(有厚薄)하니 후귀박천(厚貴薄賤)하니라진망(眞妄)이 대작삼도(對作三途)하니 왈감식촉(曰感息觸)이라전성십팔경(轉成十八境)하니감(感)엔희구애노탐염(喜懼哀怒貪厭)이오식(息)엔 분란한열진습(芬瀾寒熱震濕)이오촉(觸)엔 색성취미음저(聲色臭味淫抵)니라중(衆)은 선악청탁후박(善惡淸濁厚薄)을 상잡(相雜)하야종경도임주(從境途任走)하야 타생장소병몰(墮生長肖病歿)의 고(苦)하고철(哲)은지감(止感)하며조식(調息)하여금촉(禁觸)하야일의화행(一意化行)하야 반망즉진(返妄卽眞)하야 발대신기(發大神機)하나니 성통공완(性通功完)이 시(是)니라>

“원효대사”말미에 원효대사가 바람이란 도적떼의 두목을 제압하고 제자로 삼게 되는데, 이는 일본 천황이 역사적으로 조선의 혈통을 이어받고 있지만 조선을 강취한 도적이므로 바람에 비유하여 망국의 울분을 표출한 것이다.

<아.비.라.훔./諸法本不生/本性離言說/淸淨無染垢/因業等虛空>(“원효대사”중에서)

춘원은 1943년에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리 520번지에 農屋을 짓고 농사를 지으면서 수필집 “돌베개”를 草하였다.춘원의 관찰력은 예리하며 법안이 열린 것 같다. 수필 “제비집”에서는 마치 춘원이 제비가 된 것 같고, 수필 “여름의 유모어”에서는 마치 춘원이 소가 된 것 같다. 수필 “人生과 自然”에서는 춘원의 인생관, 철학 종교 사상,한국의 역사관을 총집약 결산하여 독창적인 사상을 이룩한다.

<행복은 맑은 감정에서 온다….자유를 속박하는 것은 국가요, 평등을 유린하는 것은 계급이다….우리가 요구하는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최소 한도로 밖에 제한하지 아니하는 나라다. 남에게 해가 되거나 공안을 상하지 않는 한 개인이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일을 다하고 나이와 덕과 학문 외에는 사람보다 높은 사람은 없고 사람보다 낮은 사람도 없는 나라다. 공원과 같이 아무 압력도 느끼지 않는 나라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존경함으로 질서가 유지되는 나라다. 이러한 나라는 사람이 제 꾀에 대한 교만을 버리고 우주가 저보다 먼저 난 것을 깨닫는 날에야 온다….사람이 제 이성이란 것을 과신하여 하나님을 책망하고 그가 하여 놓은 일을 뜯어 고친다고 외람된 반역을 하는 동안 그에게는 오직 불행이 있을 것이다….우주는 나보다 크고, 하나님은 나보다 더 아신다….정치는 인성-특히 본능과 인정을 표준으로 하고 좀 꾀 부리기를 그치라….아아 자유롭고 평등하고 서로 사랑하는 세상아 오라!>(“인생과 자연” 중에서)

춘원의 문학은 박학한 지식과 정연한 논리로 감정과 사상을 묘사하고 서술하였다. 多作을 하여 신문지상에 연재한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작품의 초반부에는 구성이 치밀하고 긴장감과 박력이 있으나 후반으로 가면 작품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예술적인 심미감이 작품 전반에 걸쳐 부족한 느낌이 있다.그래서 깊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 불교 관련 소설은 교학적인 이해의 폭이 넓으나 방하착하는 깊고 힘있는 사자후를 느끼지는 못하였다. 일제 총독부의 검열을 의식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춘원의 작품은 대부분 자전적인 주제와 내용을 소재로 채택하여 솔직하고 소탈한 그의 성격과 사상을 파악하는 것이 용이하였다. 춘원은 우리민족을 사랑하였으며, 정신적으로 向上一路를 걸어왔다. 그의 同情과 寬恕의 사상은 심히 공감하는 바이다. 좋은 세상에 다시 오셔서 더욱 훌륭한 작품을 남기시길 바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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