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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프카의 족제비    
글쓴이 : 김창식    14-10-12 17:34    조회 : 8,830
카프카의 족제비
 
 
마을로부터 사뭇 떨어진 곳에 농가 몇 채가 자리 잡고 있었다. , 돼지, 염소도 키웠지만 주로 닭을 키우는 양계농가였다. 밤이 이슥하여 한 농가의 닭장 안으로 족제비가 숨어들었다. 철망이 헐거운 탓도 있었지만 조금 찢겨진 부분을 헤집고 또 그 곳 밑바닥의 땅을 파헤쳐 들어내 침입한 것이다.
닭들은 꼬꼬댁댁’, ‘꼬꼬꼬꼬놀라 홰를 치고 닭장 안을 가로세로 어지럽게 날아올랐다. 족제비는 그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크고 심술궂게 생긴 장닭을 한눈에 알아보고 추격하여 순식간에 제압하였다. 그 수탉은 평소 무리들 위에 거만하게 군림하며 으스대었으나 이제 날개조차 제대로 퍼덕거리지 못하고 꾸꾹구슬픈 소리를 내며 닥쳐올 운명에 몸을 내맡긴 천덕꾸러기 신세일 뿐.
다른 닭들은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서자 갑자기 출현한 권력의 횡포에 내심 불만스러웠으나 횡액의 불똥이 언제 자신에게 떨어질지 몰라 감히 내색은 하지 못하고 꾸꾸꾸꾸앓는 소리만을 냈다. 와중에 호기심 많은 하루병아리들은 제 어미닭 품에 파묻혀 뾱뾱뾱뾱천진난만하게 재잘거리며 사태의 진전을 지켜보았다. 그 때 족제비가 조그맣고 영악한 눈동자를 빙그르르 돌려 닭 무리를 일별하고선 입을 열었다.
나는 너희들을 해치려고 온 것이 아니다.”
족제비는 그렇게 말하며 움켜쥐고 있던 장닭의 목울대를 놓아주었다. 거만한 닭은 검붉은 벼슬이 찢겨 피를 흘릴 뿐 큰 상처는 없어 보였는데, 기가 죽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보고 평소에 호시탐탐 우두머리 자리를 노리던 경쟁자들은 한편 고소하게도 생각했다. 그 때 어느 닭들 중 용기 있는 젊은 수탉 한 마리가 족제비에게 물었다.
님이시여, 당신이 정녕 그러한 분인가요? 그런데 어찌하여?”
그 젊은 닭은 족제비의 폭력행사에 대해 항의하려는 것 같았다. 족제비는 젊은 수탉을 눈여겨보아 두었다. 때가 되면 저놈을 제일 먼저 손보리라. 나서지 않아도 좋을 때 나서서 불행을 자초한 것이니 누구를 한탄할 것이냐. 이에 족제비는 한껏 거드름을 피며 그러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희들이 무엇을 의심하느냐? 종국에 의심이 너희를 멸망케 하리라.”
족제비가 계속해 말하길,
나는 너희들을 보호하려 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족제비와 닭들의 결코 어울릴 수 없는 괴이한 혼거(混居)가 시작된 내막이다. 이런 소란을 주인인들 모를 리 없었다. 처음엔 어흥~” 큰 소리 지르며 막대기를 휘두르고 돌멩이를 던져 쫓아내려 했다. 그러나 돌팔매질은 빗겨나기 일 수였고 영활한 족제비는 주인의 체면을 챙겨주는 척 슬쩍 도망갔다가 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반복되는 일과에 주인이라고 별 도리가 있을 리 없었다. 몇날 며칠 밤을 꼬박 샐 수 없을 뿐더러 딱히 닭들의 피해가 없어 이상한 동거를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족제비도 호응했다. 어쩌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꼬리를 내리고 양순한 눈빛을 보여 주인의 환심을 샀다.
족제비는 정말 닭들을 해치지 않았다. 존장인 어른 닭을 예우하고 비슷한 또래들과 는 화평하게 지내며 결코 영계들을 탐하지 않았다. 심지어 개나 고양이 큰 쥐 등 천적으로부터 닭들을 보호하여 주었다. 족제비는 무시로 닭장을 들락거림은 물론 그곳에서 주인인양 낮잠을 즐기기도 했다. 어느덧 닭들은 족제비를 신뢰하기에 이르렀고, 어린 닭들은 옵빠!옵빠!” 하며 족제비를 따랐다. 닭장 안에 평화가 깃들었다. 영구히 계속될 것 같은 평화가.
그것이 족제비의 성정에 비추어 도대체 가당키나 한 일일까? 그렇다. 족제비에게 그 닭들의 운명은 단지 순서의 문제였을 뿐이다. 주인이 쫓으면 족제비는 안전한 옆집의 계사로 피신하곤 했다. 살육자가 등잔 밑에 숨어있음을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한 농가에 일시적인 평화가 둥지를 트는 대가로 다른 농가에서는 닭이 한 마리씩 죽어 나갔고, 마침내 폐사(廢舍)가 되었다.
위 글은 원제가족제비의 선행(善行)으로, 체코 태생의 유대계 독일 작가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짧은 산문작은 우화(Kleine Fabel)를 대학 때 읽고 영감을 받아 연작으로 쓴 서너 편의 글(강안에서쥐는 이렇게 말하였다」「모나리자의 개) 중 한편이다. 그러니까 카프카 주제에 의한 김창식의 변주(變奏)’인 셈이다. 나는 대학시절 카프카에 나포(拿捕)된 후 단언컨대아직 풀려나지 못했다. 작은 우화는 카프카의 산문집 맨 첫머리에 나오는 풍유적 기법의 아포리즘이다
 
 "!", 쥐가 말했다. "세상이 날로 좁아지는구나. 처음에는 하도 좁아서 겁이 났는데, 자꾸 달리다 보니 드디어 좌우로 멀리에서 벽이 보여 행복했다. 그러나 이 긴 벽들이 어찌나 빨리 양쪽에서 좁혀드는지 나는 어느새 마지막 방에 와 있고, 저기 저 구석에는 덫이 있어서, 내가 그리로 달려 들어가고 있다"- "너는 달리는 방향만 바꾸면 돼"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었다.
 
  변신(Die Verwandlung)선고(Das Urteil)의 작가 카프카는 철저한 무명이었다. 사후 친구 막스 브로트에 의해 그의 존재가 알려졌고 나중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로 숭앙되었다. 그는 보르헤스, 마르케스, 아스투리아스 등 라틴 아메리카 출신 작가들이 즐겨 사용한 마술적 리얼리즘의 비조(鼻祖)이기도 하다. 가족 부양에 허덕이던 한 평범한 외판사원(그레고르 잠자)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불안한 꿈에서 깨어난 후 벌레로 변하며(변신), 늙어 죽어가는 골방의 아버지는 왜  젊은 아들(게오르크 벤데만)에게 익사형을 선고한단 말인가(선고)! 그보다 우리가 이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도대체?
 카프카는 인간존재의 실존적 체험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그의 작품은 순환구조를 이루며 낯선 일상성(日常性) 위에 어른거리는 공포와 불안, 그러니까 지금, 이곳, 여기, 우리의 모습, 우리가 조우하는 닫힌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존재의 무근저성(無根底性)을 기괴하게 은유한다. 이유도 모른 채 갇혔고 원하지도 않았는데 석방되었으나 본디 출구가 봉쇄된 '중첩된 미로(迷路)'에 갇힌 수인(囚人)의 운명이 이러할까?
 카프카의 인물들은 고독한 어둠의 중심에서 또 다른 어둠의 중심으로 나아간다. 항상 어디론가 떠나지만 도착하는 곳은 언제나 출발지, ()의 근원(根原)’이다. ‘카프카의 작품에는 '엔드 크레딧'이 없다. 방황과 도돌이표만이 있을 뿐. 카프카에게 오늘날의 명성을 안겨준 장편이자 세계현대문학의 높은 봉우리를 점하는 고독의 3부작 (Das Schloss) 소송(Der Prozess)실종자(Der Verschlollene)가 모두 미완성인 채 끝을 맺지 못하였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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