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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터 ( 미주 문협 겨울호)    
글쓴이 : 국화리    24-12-16 06:55    조회 : 1,162


                                                                                         빨래터
                                                                                                                                                           국화 리
 
      빨래터에 자본주의가 들어왔다.
      빨래터 온도가 뚝 떨어졌다.
 
  나의 은퇴자 아파트는 60년산으로 공동 빨래터가 있다. 나이 지긋한 입주자들에게 옛 생각을 불러오는 곳이다. 빨래터는 내 아파트의   남서쪽 부속 빌딩과 붙어있다. 세탁기 두 대와 건조대 두 대씩 두 건물에 나누어져 있다. 중간 공터에는 하늘 보는 다섯 개의 빨랫줄이 팽팽하다.
  운동하고 벗어놓은 속옷가지를 나는 비눗물에 담가 놓는다. 아침에 손으로 빨아 빨랫줄에다 말린다. 하루에 한두 번 걸레도 빤다. 수시로 쌓이는 마룻바닥의 먼지를 닦으며 몸을 움직이니 운동도 된다. 일거양득이 아니라 몇 득을 보는 기분이다. 빨래터 사람들과 나누는 이야기 재미도 쏠쏠하다. 웬 빨래터냐? 시골에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나, 물을 것이다.
  내가 사는 12단지는 세탁기 사용이 무료라 사람과 기계 소리가 쉴 틈이 없었다. 30여 가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공동세탁기와 수돗가를 이용한다.
  뒷집에 사는 글로리아 할머니와는 새벽에 주로 만났다. 산타모니카에서 살다가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이곳에 왔다는 그녀는 잠옷 바람인 채로 새벽에 빨래터 주위를 빗자루로 쓸었다. “God bless you”로 아침 인사를 연다. 20년 전 그녀는 클럽하우스 모임에서 지금 남편을 만나 90대가 되었다고 했다. 일본계 앤도 내가 살던 동네에서 왔다고 자신을 길게 소개했다. 그녀는 80대인데 깔끔한 아내인지 빨래를 자주 했다. 허리가 반으로 접힌 90대 제인 할머니는 걸레와 헌 옷 몇 가지를 담은 바구니를 끌고 매일 빨래를 하러 왔다. 그녀는 빨랫줄 아래에 있는 야외 의자에 앉아 빨래가 건조기에서 마르길 기다렸다. 한 줌 같은 마른 몸과 그녀 표정은 무심해 보인다. 모든 것을 비워 버렸는지 어디론가 곧 날아갈 것 같았다.

  옛 화가가 화폭에 담은 빨래터 풍경이 재미있다. 김홍도는 흐르는 개울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을 그렸다. 젖통을 열어 보채는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젊은 아낙을 갓 쓴 사내가 바위 틈새로 훔쳐보고 있다. 신윤복의 빨래터도 외설스러운 느낌이 있다. 허벅지를 드러내고 빨래하는 여인을 침을 삼키며 훔쳐보는 사내 얼굴이 뻘겋게 보인다. 내 마음을 잡는 그림은 근대화가 박수근의 빨래터다. 시냇가에서 아낙 여섯이 줄지어 빨래를 하고 있다. 어두운 색조의 화강암 질감에서 돌에 새기는 여인네들의 한이 서럽게 스며든다. 오래전에 수십억 원에 낙찰됐다는 그림이다.
  남정네들이 사랑방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노닥거릴 때 옛 아낙들의 사랑방은 빨래터였다. 쌓였던 그녀들의 화기를 시냇물에 띄워 먼 곳으로 보냈을 것이다. 그녀들은 방망이 소리로 심기를 표현했을까. 통통 튀는 야무진 소리는 시어머니의 잔소리에 또박또박 말대답하고 있는 며느리 목소리이며, 펑펑 울음소리가 난다면 술통에 빠져 계집질하는 남편의 등을 두들겨 패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가끔 이웃집 사내와 연분이 난 처녀는 가슴에 콩닥거리는 소리를 개울물에 감췄을 것이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여인들은 맑은 빨래를 이고 집으로 가며 ‘오늘도 견뎠노라.’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내가 빨래터에 자주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 사태가 터진 때였다. 불안함과 무료함으로 시들어갈 때 나는 출구가 없다고 여기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새파랗고 냉랭한 얼굴로 살아왔던 원인이 내 고향 북녘 땅 때문이라 생각했다. 얼굴도 기억에 없는 내 아버지의 땅이다. 박수근의 그림 속 ‘나목’이 군데군데 서 있는 것 같은, 한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글이 막히는 지점에서 나는 마루에 걸레질을 했다. 대구로 피난을 갔을 때 신은 왜 아버지가 아닌 삼촌을 우리 가족에게 보냈을까. 왜 그를 우리 가족의 가장으로 만들었을까를 거듭 생각했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인데 그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시에 찔린다.
내 엄마는 세상 뜨는 날까지 긴 세월을 어떻게 참아 냈을까. 그녀도 마음속에 빨랫방망이를 두들기면서 한을 풀어왔을까.
 
  어느 날부터 빨래터의 세탁기 소리가 뚝 끊겼다. 세탁기는 회사의 것으로 교체되어 동전을 넣어야 돌아갔다. 웬일인가 하여 관리실에 알아보았다. 그동안 세탁실 사용에 문제가 많았다는 것이다. 간병인들도 개인 빨래를 한다는 것이다. 세탁기 사용이 갈수록 늘어나니 세탁기고장으로  빨래터가 멈추었다. 수돗물 사용이 과다한것도 문제였다. 몇 십 년 무료로 사용하던 빨래터를 유로로 할 수밖에 답이 없단다.
  글로리아는 보이지 않아 알아보니 병원에 있다 하고 매일 출근하던 제인 할머니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매일 6개의 동전이 부담되었을 것인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가끔 앤이 머리가 하얗게 변해서 나타난다. 몇 번을 쓰러져서 병원을 들락거렸다고 한다.
자본주의에 길들지 못한 빨래터 노인들의 수난이다. 그들은 힐링 장소를 빼앗겼다. 글로리아가 없는 빨래터에 낙엽이 뒹군다.

  앞집 여자는 세탁기로 빨고 건조기 대신 빨랫줄을 이용한다. 전기도 아끼고 동전 3개도 벌었다. 빨래터가 조용해질수록 전기와 수도요금이 내려가고 기계수명이 길어진다. 자본주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동전 넣는 빨래터의 온도는 영하로 내려갔다.
  손빨래해서 볕에 말린 속옷과 양말을 신고 나는 마음을 달랜다. 그들의 쌓여가는 사연들은 허공에 맴돈다. 제인 할머니가 출근을 멈춘 빨래터에서 나는 매일 걸레를 빤다. 내 글에 출구가 생기는 날 나도 빨래터 가는 날이 줄어들 것이다. 

 냉랭한 빨래터를 한동안 나만이 매일 지킬 것 같다.
 
   2023년 10월 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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