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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이대 나온 여자야! <2025 성동문학>    
글쓴이 : 박병률    25-12-04 11:18    조회 : 12

, 이대 나온 여자야!

 

, 이대 나온 여자야!”

분홍 모자를 쓴 할머니가 고층 건물을 바라보고 소리쳤다. 신축 중인 청년주택 16층 건물로 창문이 많았고, 인부 3명이 외벽에서 밧줄을 타고 페인트칠하고 있었다.

2월의 끝자락, 바람 끝이 매서웠다. 한 청년이 할머니를 보고도 못 본 척,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하고 골목을 돌아서는데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외할머니가 요양병원에 있는데 치매가 심해졌는지 시도 때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 청년은 외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가던 길을 돌아섰다. 허공에 대고 말을 거는 할머니한테 다가갔다.

할머니, 추운데 집은 어디세요?”

몰러.”

자식들 전화번호 아세요?”

몰러.”

할아버지 계세요?”

영감탱이는 깨 팔러 갔당게.”

할아버지가 깨 팔러 갔다는 말은 죽었다는 말로 들렸다. 할머니 말투나 행동으로 봐서 정상이 아닌 듯싶었다. 청년은 할머니 손을 만져봤다. 손이 얼음장 같았다. 손바닥을 펴서 할머니 손등에 마사지하듯 문질렀다. 할머니는 마음이 안정됐는지 어릴 적을 떠올렸다.

내가 큰딸인디 아래로 남동생 셋이 있었지 집이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어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학교도 안 보냈어 또래들이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갈 때 나는 동생을 업고 있었어 대문 뒤에 숨어서 친구들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당게, 열여섯 되던 해 보따리를 싸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지 옷 만드는 공장에 취직했어 월급을 타면 생활비를 뺀 나머지를 집으로 보냈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녔당게 나, 이대 나온 여자야!’

할머니 이야기는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졌다. 할머니의 허기진 가슴에 바람이, 구름이, 안개가 자욱하듯 온기를 품었던 자리마다 허물어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기억과 망각 사이에 중심을 못 잡고 서성거리는데 뿌리칠 수 없었다.

청년은 할머니 손을 붙들고 찻집에 갔다. 쌍화차 두 잔을 시켰다. 차가 나오자마자 할머니가 찻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 따숩다하시며 쌍화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물었다.

총각은 뉘 집 아들이여?”

동네 살아요, 뜨거우니까 천천히 드세요.”

청년은 외할머니와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 경찰서에 연락해서 집을 찾아드릴게요.”

경찰서에 신고하려던 참이었다. 때마침 휴대전화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안전 안내 문자였다.

 

강남구 주민인 최분녀 씨(, 79)를 찾습니다. 키가 159센티에 몸무게는 62킬로그램이고 검정 패딩에 빨간 줄무늬 바지를 입고 분홍 모자를 썼습니다. 비닐가방을 어깨에 메고 있는데 치매가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제보를 기다리겠습니다.’

 

, 분홍 모자 이 할머니잖아! 강남에 사는 할머니가 어떻게 의정부까지 왔을까?”

청년이 경찰서에 신고하려고 휴대폰을 들었다.

경찰서지요?”

(……)

청년은 경찰서에 전화하면서 할머니를 바라봤다. 할머니 모습에서 요양병원에 3년째 입원하고 있는 외할머니가 보이고, 고층 건물에서 줄을 타고 페인트칠하는 사람이 겹쳤다. 청년의 외할머니도 치매를 앓고 있었으므로, 길에서 만난 할머니처럼 힘들었던 시절은 잊어버리지 않고 레코드판 돌아가듯 했다. 먹을 것이 부족해서 배곯았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가 하면 금방 알려줬던 말도 까먹고 다시 물었다. 길 잃은 할머니도, 외할머니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니 삶이란, 허공에 매달려 줄을 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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