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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독의 시간    
글쓴이 : 김주선    26-04-15 14:18    조회 : 69

패독의 시간 / 김주선

 

해마를 몰고 오는 적토마의 붉은 갈기처럼, 동해의 일출은 장엄하다. 독감에 걸려 이불 속에 누운 채, 아들이 전송해 준 붉은 해의 영상을 보며 새해를 맞았다. 말 한 마리가 태양을 뚫고 달려올 것만 같았다. 수많은 이들이 써온 파도의 비유를 해마(海馬)로 다시 써먹는 일이 식상하다는 걸 알면서도, 달리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올해가 병오년, 붉은 말의 해라니 더 그런가 보다.

왜 말은 늘 질주하는 모습으로만 그려질까. 헬스장 광고판에도, 투자 전망 보고서에도 적토마가 등장한다. 도약, 질주, 가속 같은 단어들이 말굽 소리처럼 심장을 두드린다. 아직 출발선에 서 보지도 않았는데 이미 숨이 가쁘다. 한 해를 살아보기도 전에 뒤처질까 염려하는 마음이 먼저 앞선다. 말은 달려야 제 몫을 다하는 존재가 되고, 해는 떠오르는 순간부터 이글거려야 한다. 삶 역시 그래야만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경마장에 간 적이 있다. 친구의 남편이 기수였고, 그의 결혼식은 과천경마장 인공폭포 앞에서 열렸다. 작은 체구였지만 말 위에 올라타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말과 한 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때 처음 실감했다. 성적표보다 먼저 마구간을 본다는 말이 있다. 경주 직전, 말들이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도는 공간이 패독(Paddock)이다. 경주마들은 곧장 트랙으로 나가지 않는다. 워밍업 링에서 걸음을 고르고, 숨을 가다듬는다. 질주하기 전 마지막 관찰의 장소인데 베터들은 그 짧은 시간을 놓치지 않는다. 화려한 질주보다 더 많은 정보가 준비하는 과정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귀의 움직임, 걸음의 탄력, 눈빛의 깊이나 털의 윤기마저도 중요한 정보로 읽힌다. 좋은 말은 조급하지 않다. 서 있는 자세부터 다르다. 괜히 발을 구르지 않고, 호흡이 고르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본 장면이 떠오른다. 경주 중 다리 골절을 입은 말은 회복이 어려워 안락사를 선택받기도 했다. 가혹하지만, 오래 누워 있으면 폐와 장기에 치명적 부담이 되어 통증과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이란다. 달리기를 숙명처럼 요구받는 존재에게 멈춤은 곧 생존의 문제였다. 

먼 친척 중에 아재뻘 되는 분이 말산업으로 융성하는 나라(김문영, 2015)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신문기자였던 그는 뚝섬경마장을 취재하며 말과 인연을 맺었고, 그 기록을 한 권의 책으로 남겼다. 말산업의 방향을 짚은 전문서였지만, 그 속에는 말에 대한 애정과 관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를 통해 나는 말이 얼마나 예민한 동물인지 알게 되었다. 억지로 끌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지만, 신뢰가 쌓이면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여 스스로 몸을 내어준다. 아무리 기술과 시스템이 발달해도, 말과 사람 사이는 관계라는 말이 오래 남았다. 그가 자주 하던 말이 있다. 좋은 말일수록 더 조심해서 다뤄야 한다는 것. 성적이 좋다고 마구 달리게 두지 않는다. 오히려 쉬게 하고, 몸 상태부터 살핀다.

말이 서서 잔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다리의 인대와 관절이 잠금장치처럼 버텨주는 정지 장치(stay apparatus)’ 덕분에 얕은 잠은 서서 잔다. 포식자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화된 생존 방식이지만, 그 모습은 긴장을 풀지 않는 삶의 태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깊은 잠은 반드시 누워서 잔다. 완전히 몸을 내려놓는 순간은 아주 안전하다고 느낄 때만 허락된다. 나는 아직 단 한 번도 누워 있는 말을 본 적이 없다. 쉬고 있으되, 언제든 달릴 수 있는 자세. 그 긴장 태세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내가 말하는 패독은, 어쩌면 경마장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우승을 점치는 원이 아니라, 트랙에 나서기 전 스스로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에 가깝다. 원고를 곧장 세상으로 밀어내지 않고, 찬찬히 살펴보는 자리랄까. 내게는 문우들과 나누는 합평이 그렇다. 글쓴이의 마구간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그동안 나는 너무 자주 트랙으로 필마(筆馬)를 몰아세웠다. 마감과 성과를 채찍처럼 휘두르며, 숨 고를 틈도 주지 않았다. 늘 헐떡였고, 나는 자주 주저앉았다. 글이 나를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글을 끌고 가는 날들이었다.

글에도 컨디션이 있다는 것을 안다. 억지로 뛰게 하면 끝내 오래가지 못한다. 병오년의 다짐은 그래서 단순하다. 더 빨리 달리고 더 잘 쓰겠다는 욕심 대신 내 필마의 상태를 먼저 살피는 일이다. 치명적인 골절이 아닌 이상, 마음에 금이 간 상처라면 재활의 시간도 필요하리라. 이름 없는 변방의 말일지라도 다치지 않고, 자기 리듬을 잃지 않으면 된다. 나이가 들어도 갈기가 일어나는 순간을 기다리고, 숨이 가라앉을 때까지 고삐를 늦춰보는 것도 좋겠다. 

동해의 아침 파도는 여전히 붉은 갈기를 휘날리며 몰려온다. 모두가 육지에 닿지는 않는다. 어떤 파도는 부서지고, 어떤 파도는 되돌아간다. 그러나 바다는 개의치 않는다. 물러날 줄 알기에 천군만마를 끌고 다시 온다.

이불 속에서 맞은 새해였지만, 붉은 해는 분명 내 안에도 떠올랐다. 또다시 고삐를 잡는다. 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패독에 세워두기 위해서다. 털갈이를 하고, 고개를 떨군 채 뚜벅뚜벅 돌더라도 괜찮다. 봄이 오는 너른 들판을 꿈꿀 테니까.


『수필과 비평』2026.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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