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문학회 >  회원작품 >> 
 

* 작가명 : 김주선
* 작가소개/경력


* 이메일 : jazzpiano63@hanmail.net
* 홈페이지 :
  야광물고기    
글쓴이 : 김주선    26-06-21 15:05    조회 : 17

야광 물고기/김주선


 

현관 입구에 있는 작은방의 문을 열자, 비릿한 어둠이 쏟아졌다. 순간 아쿠아리움 속에 들어선 듯 착각이 들었다. 천정을 장식하는 야광별은 많이 보았어도 물고기 야광 스티커는 처음이었다. 스위치를 더듬던 중개사가 얼른 불을 켰다. 우주의 별처럼 아름답게 빛나던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순식간에 빛을 숨기고 천정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마치 포식자를 속이기 위한 위장술처럼 보였다.

광저우(廣州)로 출장을 간 딸아이를 대신해 발품을 팔았다. 전세 만기가 된 딸애의 집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동대문과 중국을 오가며 의류업을 하는 딸은 결혼하라는 부모의 잔소리를 피해 도망간 삼십 대 후반의 독립군이다. 저녁 해가 일찍 떨어진 퇴근길, 중개업자의 꽁무니를 쫓아 빌라 단지로 들어섰다. 전세 사기 소문 때문에 빌라는 꺼렸지만, 매물도 귀한 터라 속는 셈 치고 한번 따라가 보기로 했다. 24평형, 혼자 살기는 적당했다.

벽지는 군데군데 헤져 있었고, 외계 생물체 같은 물고기 그림이 빈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곳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신비한 세계의 바다였다. 이 방의 주인은 어떤 꿈을 꾸며 자랐을까. 작은 수족관 같은 방에서 스스로 빛을 발하며 컸을까. 수없이 닳았을 야광 색연필처럼 알록달록한 꿈이 헤엄치고 있었다. 

언젠가 모 방송 채널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다룬 적이 있었다. 다양한 관점에서 우리가 몰랐던 세계를 파헤치는 프로그램이었다. 햇빛이 닿지 않는 심연의 그곳은 신비와 공포가 교차하는 어둠의 왕국이었다. 인간은 수백 년을 산다는 심해어, 발광發光하는 생물체에서 생로병사의 비밀을 찾으려 한다. 게다가 해양바이오산업의 보물창고라니 인간의 수명은 대체 얼마나 더 늘어날까.

자체 발광하는 생명체들은 아름답고도 괴이했다. 눈은 퇴화하고, 대신 물결의 떨림과 냄새, 미세한 움직임을 온몸으로 감지했다. 많은 생물이 발광 세균과 공생하거나 효소 반응으로 자신의 몸을 등불 삼았다. 내가 좋아하는 아귀는 머리에 달린 전구로 먹이를 유인하고, 촉수를 채찍처럼 휘두르며 사냥했다. 또 어떤 오징어는 장기까지 빛이 스며 유리병처럼 환히 드러났고, 더러는 먹물 대신 섬광을 흩뿌리며 적을 놀라게 했다. 그 순간만큼은 심해에도 은하수가 흐르는 듯했다. 칠흑의 바다일수록 빛은 더욱 선명했고, 원색의 대비는 차마 손댈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야광 물고기는 꺼진 불빛을 대신해 아이의 밤을 지켜주었으리라. 지금은 비어있는 집. 전에 살았던 모자母子는 바라고 바라던 행복주택으로 이사 갔다고 한다. 새집에 대한 설렘보다는 빈방에 남은 쓸쓸함이 더 짙게 느껴졌다. 물고기 스티커와 낙서는 오래도록 아이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붙잡아 주었을 것이다. 낙서를 지우고 물고기를 떼어 내, 실크벽지로 도배를 해주마업자가 특약을 달았다. 싱크대까지 교체예정이라니 혹하는 마음이 들었다. 밤마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 빛을 내던 작은 생명이었는데, 곧 찢길 벽지라 생각하니 아름다운 동화 한편이 찢기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딸아이의 삶도 그와 닮지 않았을까. 결혼도, 안락한 울타리도 선택하지 않은 채, 홀로 세상 속으로 뛰어든 아이. 불 꺼진 방처럼 때로는 극도의 추위와 비린 어둠이 자신을 가둘지라도, 결국 딸애는 자기만의 야광 물고기를 그려내며 대륙을 건넜으리라. 개체밀도가 낮아 짝을 찾기 어려운 극한의 환경이어도 같은 종끼리 알아보는 모스부호도 있다고 한다. 자동차 깜빡이처럼 신호를 보내 의사소통도 한다니 척박한 환경이라고 왜 뜨거운 사랑이 없을까. 심해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삶에도 용연향을 품고 발광하는 향유고래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낡은 방 안의 물고기들을 오래 바라보다 문을 닫았다. 부모의 마음은 늘 자식 대신 불을 밝혀주고 싶지만, 자기 힘으로 빛나는 법을 터득하는 것 또한 삶이라는 심해를 건너는 방식일지 모른다. 

계단을 내려오자 다시 어둠이 골목을 덮었다.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불이 켜지고, 상점의 네온사인이 반짝이며 길 위에 흩어졌다. 멀리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고, 어디선가 라면 끓는 냄새가 풍겼다. 그 모든 빛과 소리, 냄새가 마치 제각기 다른 색을 품은 야광 물고기 떼처럼 어둠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저마다의 상처와 두려움을 안고도, 보이지 않는 바닷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 헤엄치는 일. 어떤 빛은 화려해 부러움을 사고, 어떤 빛은 희미해 금세 꺼질 듯 보이지만, 그 빛이야말로 각자의 존재를 지탱하는 유일한 증거일 것이다. 인생살이에 더러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더라도, 그 어둠 덕분에 삶은 더 빛나는 법일 테니 말이다.

먹잇감이 적은 해저에서 오히려 장수하고 몸집이 커지는 일부 생물이 있다고 한다. 풍족하지 않은 환경이 오히려 생명을 단련시키는 것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두 눈에 불을 켜고 몸집을 키워가는 딸의 모습이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심해어 닮아있었다. 이처럼 야시장과 새벽시장을 돌며 물건을 떼고, 동종업계와 치열하게 먹이 경쟁을 해야 한다.

나는 집 내부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어때? 이 집 마음에 들어?”

건널목 앞,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듯 답장을 기다렸다. 저 멀리 빌딩 숲 사이로 한 마리 야광 물고기가 등을 깜빡이며, 천천히 유영하고 있었다.


<한국산문> 2026.5월호

 
 

김주선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56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글쓰기 버튼이 보이지 않을 때(회원등급 … 사이버문학부 11-26 112813
공지 ★(공지) 발표된 작품만 올리세요. 사이버문학부 08-01 114500